잘 가지 않는 길

아이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선택

by 나침반


아이를 키우며 가장 자주 들었던 말은

“그렇게 키우면 아이가 더 예민해진다”는 말이었다.

친정어머니도, 시어머니도

내가 아이에게 사과하는 모습을 못마땅해하셨다.


부모가 아이에게 고개를 숙이는 장면이

그분들의 눈에는 한심하게 보였나 보다.


세대 차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도 있겠다.


자식이 집안의 일꾼이던 시절

부모의 말이 곧 권위였을 것이다.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당연한 듯 그냥 넘어가던,

그런 시대를 살아온 분들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보며

조용히 마음의 문을 닫아갔다.


그래서 아이에게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실언을 하여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했다고 느낄 때,

엄마도 실수할 수 있음을 알리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그 태도가

아이의 예민함을 부추긴다고 보는 시선도 있었다.

허용적이고 관용적인 양육이 문제라는 말이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쪽이

오히려 아이의 타고난 기질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공감해주었다.


한편,

전혀 다른 위치에서 건네진 조언도 있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는

가정에서도 일정 수준의 규칙과 제한,

아이에게 맡길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이 지나치게 자유롭고 안락하면

불편하고 불안한 학교와의 간극이 커지고,

그 차이를 아이가 더 힘들어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나는 그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충실히 행동에 옮겼다.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한 후

쉬운 집안일을 돕게 했고,

영상 시청과 게임 시간을 제한하고

자는 시간도 지키게 해보았다.


효과는 없지 않지만 아주 미미했다.

그 정도의 개입으로는

학교와 집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저학년 때는 그나마 괜찮았으나

하지만 고학년이 되며 상황은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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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변화와 사춘기,

점점 버거워지는 학업까지 겹치면서

아이의 피로도는 눈에 띄게 높아졌다.


하교 후에는

씻고 쉬는 데에만도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 상태에서 규칙과 제한을 들이밀면

그건 훈육이 아니라 잔소리가 될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절망스러웠다.

내 의지만으로는

아이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선명해서.


그러다 생각을 조금 바꿨다.

이 모든 걸

‘흘러가는 과정의 일부’라고 보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창백하고 무표정하던 아이가

푹 쉬고 나서 잠깐이라도 웃어주면

그것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내가 아이의 인생을

내 손으로 조정하려 애쓰고 있었다는 걸.


이렇게 놓아버리는 결정으로

아이의 인생이 달라진다 해도,

그건 내가 책임지지 못한 실패가 아니라

아이의 삶 안에 포함된 한 흐름일지도 모른다고.


그동안 나는

도움이 될 법한 육아서도 사들이고

관련된 육아 강의도 찾아 듣고,

믿는 종교에 의지도 해보고, 부모 상담도 받았다.


고민하고 참아내며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해보았다.


그 결과가 지금이라면,

이 또한 아이의 삶에서

지나가야 할 구간일 수 있다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선택 이후

아이의 표정은 더 부드러워졌고,

예민함도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물론

학교로 인한 스트레스와

신체적 증상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나와 아이가 함께 버텨갈 수 있는

생활 법칙과 루틴을 잡을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전보다 훨씬 편해졌다.


내 역할은,

아이의 인생을 이끄는 항해사가 아니라

지도를 함께 들여다보고

혹여 앞에 암초가 보일 때

조용히 뱃머리를 돌려주는 사람정도면

충분해 보였다.


아이가 느끼는

학교에 대한 공포와 불안은

에너지를 뺏기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잠식하는 수준이라는 걸

이미 충분히 보아왔다.


상담과 약물은

간신히 밧줄을 놓지 않게 도와줄 뿐,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는 않았다.


적어도 내 아이에게는 그랬다.


학교가 트라우마로 자리잡힌 아이를

사회성, 대학, 외부의 시선 때문에

억지로 다니게 하는게 맞는가


이 명제는 늘 내 마음을 짖누르던 고민거리였으나

그간의 고민과 분투 속에서 더욱 명징해졌다.


나는 아이의 한계를 인정한다.

동시에, 우수한 자질 또한 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잘 닦여진 길은

내 아이에게 맞지 않는 길이라는 걸.


남들이 잘 가지 않는 좁은 길을 걷더라도

훨씬 더 자유롭고 넓게 날 수 있다면

그것이 내 아이에게 맞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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