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견디는 아이를 바라보다
겉으로 보면, 정말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아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 때 종종 웃었고,
공부나 수행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날도 있었다.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고, 반 아이들로부터 인정받았다는 말도 했다.
그럴 때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놓였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닐까.’
나는 그 긍정적인 순간들이
아이 안에 쌓인 불안을 조금씩 밀어내주기를 바랐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했다.
학용품을 꼼꼼히 챙기고,
필요한 준비물을 미리 준비하며,
선을 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려 애썼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더 불안했다.
아이의 하루가 늘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집에 오자마자 쉬지 않고 부정적인 경험을 쏟아냈다.
같은 일을 여러 각도에서 설명하고,
조금 다른 해석을 제안하기도 했다.
친구의 의도가 꼭 나쁘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말,
선생님의 말 속 다른 뉘앙스를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까지.
그 대화는 거의 매일 반복되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의 분노가 점점 커지더니,
그 화살이 어느 순간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아이에게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 훈수만 두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내 말이 소용없다는 느낌에 점점 잠식되었고
내 역할은 조언자가 아닌,
그저 감정을 받아내는 그릇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애써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 앞에서
막연함과 불안, 슬픔이 차올랐다.
주변에서는 비슷한 말을 반복해 들려주었다.
아이가 스스로 하도록 두라는 말,
그 정도는 아닐 거라는 말,
엄마가 너무 걱정하는 건 아니냐는 말.
위로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내 마음에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혹시 정말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내가 부족해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자연스레 따라왔다.
주변에 같은 경험을 나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더 조용하게 만들었다.
모두가 같은 말을 하니
그게 맞는 기준인 것처럼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아이의 구체적인 행동 하나하나가 아니라
그 행동을 감당해야 하는 내 상태였다.
아이를 정상 궤도로 올려놓으면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 믿었기에,
나는 더욱 애썼다.
노력하면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건 한 가정의 노력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학교와 사회는 생각보다 획일적이었다.
조금 다른 결을 가진 아이와 부모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다수의 기준 안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 바깥에 서자 선명해졌다.
그 무렵 나는
무리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계속 애쓰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나 자신에게서만 찾고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더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기의 나를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이렇다.
'진심으로 바라고, 애쓰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이 장을 읽는 사람이
무언가를 결심하거나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그때의 나처럼
이해받지 못한 채 애쓰고 있음에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다독여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