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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룰때 Jan 14. 2021

꿈과 반대로 살고 있다.

꿈처럼 살고 싶어 우리는 꿈을 꾼다. 그러나 우습게도 현실 속에서는 꿈과는 정반대로 살고 있다. 꿈은 태생부터가 현실과는 친하지 않다. 이 현실이 싫어, 현실에 벗어나고 싶어 현실과는 다른 꿈을 마음에 품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비록 현실이 미워 그것과 다른 꿈을 품었다 하더라도 그 꿈을 품고 나서부터는 얘기가 달라져야 한다. 꿈을 꾼다면 꿈대로 사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우리는 꿈과 정반대로 살고 있다.

“넌 밥 먹을 자격도 없어! 그렇게 반찬 투정할 거면 밥 먹지 마!”
어느 주말 아침, 갓 7살 된 큰 애에게 뱉어낸 말이다. 뱉자마자 아차 싶었다. 저 말을 과연 아이 보고 들으라고 한 말일까? 갓 7살 된 아이가 ‘자격’을 알리 만무했고 일곱 해 평생 노동이라는 것을 안 해봤으니 노동의 대가로 얻는 밥상의 의미를 이해할리 없었다. ‘아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이건 그저 나의 분풀이였구나!’ 아이를 대하는 내 모습을 들여다볼 때면 나는 실감한다. 나는 꿈과는 정반대로 살아가고 있구나.

나의 꿈은 우아하게, 여유롭게 사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인 여유도 필요하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으로는 생활의 여유, 일상의 여유를 좇는다. 아이들에게도 여유를 부리며 살고 싶다.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여유, 차근차근 아이에게 일러줄 여유, 아기가 이해하고 받아주길 기다려주는 여유. 그러나 오늘 나는 아이에게 참으로 여유 없이 굴었다. 아니 오늘만이 아닐 것이다. 어제도 그제도 그랬을 것이다. 아이에게 “빨리해! 이거 해! 저거 해! 이건 하지 마! 저것도 하지 마!”하며 여유란 1도 없이 참으로 야박하게 굴었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 앞에 여유로우려면 인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 인내를 지금은 감당하기 싫은 것이다. 조금 더 내 감정에 편하고 싶은 것이다. 조금 더 나 편한 대로 아이들을 통제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편하고 싶어 여유롭게 살자는 꿈을 미뤄둔다. 우리 집 생기고 나면, 둘째가 다섯 살쯤 되면, 돈을 좀 더 모으면, 퇴직하고 시간이 생기면, 그땐 여유가 내 삶에 알아서 찾아오겠지.  여유가 찾아올 그 “언젠가는”을 떠올리다 깨달았다. 그 “언젠가는”이 드디어 왔을 때, 그때가 오면 아이들은 이미 다 커버렸다는 것을. 아이들은 내 손을 떠나 더 큰 세상을 만나니 더는 내 품에서 아이들에게 여유롭게 대할 이유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아! 여유는 지금 부려야 하는구나. 부족하다 싶어도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어린 지금 여유롭게 살아야 하는구나.’

더 이상 변명 않기로 했다. “언젠가는”에 숨어 나 편한 대로가 아닌 지금이라도 꿈대로 노력하며 살기로 했다. 내가 아이들에게 여유 없이 대한 건 아이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이 부족해서다. 사람을 향한 인내는 상대를 향한 존중의 마음이 있다면 그다지 힘들지 않다. 나는 내 아이들을 지금부터라도 존중하기로 한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어른의 영역을 존중하도록 가르치기로 했다. 내가 억지로 통제하지 않게, 아이들이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도록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여유를 갖고 가르쳐 보겠다. 스스로 먹고, 스스로 씻고, 스스로 정리하고... 나나 아이들은 전보다 더 여유로워질 것이다. 꿈과 반대로가 아니라 꿈대로 살 것이다.

기약 없는 미래의 거창한 꿈보다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꿈을 지금 바로 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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