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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룰때 May 12. 2022

오래 걸렸다

Photo by Andriyko Podilnyk on Unsplash


참으로 오래 걸렸다. 다시 펜을 쥐기까지..


그간의 공백동안 글로는 손을 쓰지 않았다. 때론 머리가 저 혼자 이런 저런 글감을 떠올리곤 했지만 그 뿐이었다. 손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간 펜을 놓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이 너무나 편안했기 때문이다. 도통 글로 옮길게 없는 그런 삶이었다. 그저 먹고, 자고, 싸고, 또는 먹이고, 재우고, 뒷처리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글을 쓰지 않으니 내일도 의미 없었고 어제는 더더욱 의미 없었다. 오로지 오늘만, 지금만 존재하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평온했다. 다른 말로 행복했다. 그렇게 보잘 것 없는 일상이 행복이라는 것을 제대로 배운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지금 어쩌자고 다시 펜을 쥐었을까? 메아리도 없는 혼잣말을 나는 왜 또 하려는 것일까?


생각해보건데 그건 헬륨풍선 때문일 것이다. 


얼마전 둘째가 우연히 헬륨풍선을 받았다. 날개도 없는 것이 하늘에 동동 떠있는 것이 신기한지 한동안 집에서도 밖에서도 들고 다녔다. 하루는 자전거에 매달고 달리고 싶다 해서 손잡이 부분에 풍선의 실을 묶어다 주었다. 아이는 자전거에 매달려 있는 풍선과 함께 신나게 달렸다. 기분껏 다 논 아이를 이끌고 나는 아파트 현관에 자전거를 대고 있었다. 아이에게 풍선 실을 절대로 놓지 말라고 당부하면서 말이다. 아,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우리 둘째는 나의 당부의 말에는 정확히 그 반대로 하는 것이 재미진 아이임을… 풍선은 이미 아이의 손을 떠나 위로위로 올라가 아파트 필로티 천장에 머물고 있었다. 3층 필로티였다. 아이는 재밌다는 듯 깔깔 웃고는 천연덕스럽게 나에게 말한다.


 “엄마~ 이제 풍선 내려줘.”


이후의 전개는 지겹도록 뻔하다. 3분 내로 아이는 바닥에 주저앉아 서럽게 울 것이다. 


“풍선이 너무 높이 올라가서 엄마가 못 내려줘. 그래서 엄마가 풍선실 놓지 말라고 했잖아.”

“내려줘! 내려줘! 어떠케!!!~ 어떠케!!! 풍선 어떠케!!!!”


엄마와 생이별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이는 동네가 떠나가라 서럽게 울어댄다. 나는 천장을 올려다 본다. 저 놈의 헬륨풍선은 어쩌자고 저기까지 갔을까…. 천장에서 갈 길을 잃고 바람 결에 파르르 떨고 있는 저 풍선에서 나는 우습지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도대체 얼마동안이나 마음의 실을 놓고 있었던 것일까? 현실이 무겁고 고단한 마음에 그저 한없이 가벼워지고 싶었다. 처음에는 그 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한달이 되고 1년이 되고 2년이 되자, 예전의 "나"라는 이는 한때 내가 알고 지냈던 타인처럼 느껴졌다. 때때로 떠오르는 부끄러운 과거의 기억이 그것이 타인이 아닌 내 자신의 모습이었음을 상기시켜주곤 했다. 이제는 저 헬륨풍선을 붙잡아두고 싶어졌다. 그만 떠돌아다니고 이제 너 자신과 마주하라고. 두려워하지 말고. 설사 시련을 만나더라도 그렇더라도 너는 전보다 더 시련에 단단해졌을테니.... 글 쓸 용기가 생겨났다. 다시 나를 마주할 용기를 얻자 글이 쓰고 싶어졌다. 


다음날 나는 풍선가게에서 멋들어진 오토바이 모양의 헬륨풍선을 샀다. 녀석의 언짢은 기분을 풀어줄 귀한 녀석이니 행여 날아가버릴까 풍선 실을 손에 힘껏 쥔 채 집으로 가져간다. 소녀에서 숙녀가 되고 엄마가 되기까지 지금껏 지켜온 너 자신 그대로 앞으로 살아도 괜찮을꺼라고,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그렇게 나는 마음의 실을 붙잡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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