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룰때 Jun 13. 2022

지옥에 사는 짐승

 친구가 추천해준  가정 심리학자 강의에서 이런 내용이 나온다.

사람은 상처를 받으면 짐승으로 산다고... 자신의 상처가 너무 아프다보니 그저 상처만 돌보고 살아간다는 거다. 그것이 사람답지 못하고 짐승의 삶이라며.

그렇게 과거의 상처에 갇혀 사는 사람은 매일이 새로운 현재가 아니라 매일이 상처의 과거가 되풀이되는, 마치 과거에 갇힌 시지프스처럼 지옥 속에 사는 삶이라 했다.


그렇다면 분명 나는 지금 지옥에서 짐승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 하루 일상의 3~40%의 시간은 온전히 내 아픔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그 시간은 철저히 과거에 갇힌 시간이다. 2년 전 암 선고를 받던 그 순간을 영원처럼 반복하며 산다. 하루 석 잔의 차를 마시고, 매일 1시간을 걷고, 매일 아침저녁 약을 먹고... 지나친 걸 하지 않는다. 지나친 열심과 지나친 열정을 매일 경계한다. 수없이 저울에 달아보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만을 취한다. 2년 전 기억은 매일의 겁쟁이로 살게 하고 있다.


2년 전 나는 세상 앞에 자신이 넘쳤다. 이루지 못한 거대한 꿈들도 언젠가는 이뤄낼 것이라 그 뜨거운 꿈들을 그대로 마음에 품고 살았다. 지금은 그 거대한 꿈들의 대부분이 차갑게 식었다. 그러나 아직 여전히 그 꿈들의 찌꺼기들은 마음속에 남아있다. 그 꿈을 품었던 나도 ‘나’였으니. 가끔 나는 나를 추억하듯 까맣게 시체가 된 꿈들을 들여다본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세상을 너무 쫄보로 살고 있는 건 아닌가. 마치 세상에 중심에 살고 있는 착각으로 내 생각과 내 말이 세상 중요하다 살았던 그때의 나의 비해 지금은 세상 앞에 초라하기 그지없다. 마치 장거리 뛰기에서 결승전에도 도달하지 못한 낙오자처럼 42살에 삶에 뒤켠에 앉아 그저 열심히 바삐 사는 사람들을 관조하는 42살에 60살이 되어버린 나. 그 심리학자의 말에 의하면 나는 지옥에 갇힌 짐승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인간이 짐승의 삶보다 낫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살피는 짐승은 지나침이 없다. 적절히 자신의 배만 부르면 더는 바라지 않는다. 가끔 볕 드는 바위 위에서 한숨 늘어져 자는 낮잠 정도나 바랄까? 그러나 사람은 지나침에 그 한계가 없다. 한계 없는 욕심이 한계 없는 꿈이 얼마나 스스로를 불행에 빠뜨릴 수 있는지. 나는 그러한 것이 없는 지금 짐승의 삶이 비록 남보기에 뽀대 나지 않아도 더 행복하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멋지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지금은 괜찮다. 예전처럼 타인의 인정에 이제는 더는 갈증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짐승이 타인의 인정을 바라지 않듯이.


사람의 생각은 가만히 내버려 두면 세상 무서운 지 모르고 날뛴다. 나는 2년 전 그날 종잡을 수 없이 커져버린 내 자아가 한번 호되게 혼났다고 생각한다. 너무 혼나서 무섭긴 하지만 무서운 게 있어 겸손해질 수 있었다. 남보기에 소심한 쫄보라고 해도 나름의 방식으로 인생을 찐으로 즐기며 산다.


쓰다 보니 알겠구나. 과거의 갇혀 살고 있다 생각한 나의 지금이 과거의 지옥 속에 살고 있는 것을 아님을. 나는 매일 2  과거에 살지만  2 전이 내가 새롭게 태어난 순간이었음을...   살고 있다. 앞으로도 나는 그렇게 2년 전  순간과 함께  살아낼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오래 걸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