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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룰때 Mar 27. 2020

스테비아 토마토와 물 한 방울

컵 안에 가득 차있는 물. 

이 물이 컵 밖으로 왈칵 흘러넘치는데는 더도 말고 딱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 

그 사소한 한 방울이 무려 컵 밖으로 물이 쏟아지게 한다.

오늘 그 한 방울의 물이 내 컵에도 떨어졌다.


그제 방울토마토를 샀다. 한 유명인이 다이어트 성공하는 데 효자노릇 했다고 유명세를 얻은 스테비아 토마토. 설탕에 절여놓은 듯 하도 달아서 일명 단마토라 불리우는...맛이 좀 유별나나 하는 기대로 1킬로에 2만 원을 주고 샀다. 근데 이 녀석이 뭐 그리 힘든 일이 있었는지 하루 만에 팍 쉬었다. 


그냥 버리자 싶다가,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어 몇 마디 하자며 문자를 썼다. 그의 전화가 오고 죄송하긴 하나 우린 신선한 제품만 보내는 가게이니 분명 보낸 제품에는 문제없었을 것이고 보관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며, 문제가 있음 당일날 얘기하지 왜 이제야 이런 얘기하느냐 등등 구구절절 얘기하는 그의 얘기를 듣자 하니 그는 잘못이 없고 이런 얘기를 하는 나는 상식에 벗어난 사람이고, 그러니 환불은 어렵다는 얘기였다. 듣고 있자니 부아가 치밀었다. 


사소한 한 방울이 오늘까지 내 맘에 쌓여있던 부정적인 감정의 물길을 터트렸다. 옆에서 울던 애도 내팽개쳐놓고 분노의 문자질을 했다. 되돌아오는 그의 문자, 다시 나의 문자가 가고, 다시 또 그의 문자가 온다. 주거니 받거니. 평행선만 그리는. 상대에게 이해를 구하는 척하지만 사실은 서로에게 감정의 오물을 배설해대고 있었다. 


감정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감정이라는 녀석을 앞세우게 되면 이 녀석은 나를 넘어 지가 대장 노릇을 하려 한다. 감정의 고삐를 놓친 나는 이 녀석이 어디로 튀어갈지 예측조차 할 수 없게 된다. 한 녀석이 튀어나오면 덩달아 잠자던 옛 녀석들도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감정이 설쳐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된다. 낮잠에서 일어나 엄마 찾아 우는 애 얼굴도, 저녁거리 만들려 끓이고 있던 멸치육수도, 멀리 타지에서 가족의 안부를 묻는 남편의 문자도. 다 새까맣게 블라인드 처리해버린다. 


토마토는 2만 원. 

오늘 그는 과일을 배달하는 내내 씩씩 거렸을 것이고, 오늘 나는 하루치의 힘을 단 세 시간에 다다 써버렸다. 2만 원 그냥 조용히 버리는 게 나을 뻔했다. 둘 다 더 큰 손해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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