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이해하는 힘이 지성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와의 대화

by 루니
"지성인이라면 적을 사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친구를 미워할 수도 있어야 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친구를 미워해도 괜찮을까?

왜 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서 가장 큰 실망을 느낄까?

작년 가을, 10년 지기 입사 동기이자 친구를 만나 말했다.

"미안한데요, 앞으로 모임에 나를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괜한 생각일 수 있지만 제가 좀 불편해서요"


그렇게 말하는 순간,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녀는 N사로 이직 후 만난 동기이자, 친구였다.

처음 친해지기 된 계기는 그 친구가 회사에서 곤란한 상황을 겪었을 때 이를 해결해준 계기로 가까워졌고, 그렇게 10년을 이어왔다.

업무는 달랐지만, 서로 모르는 부분을 알려주고 토론한 회사 동기이자, 사적으로 회사의 불만을 토론할 만큼 진짜 친한 친구였다.

그런데 내가 중소기업으로 이직한 순간부터 뭔가 달라졌다.

모임에 초대는 됐지만, 이상하게 모임에서 무시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 내가 다시 대기업으로 돌아가자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내가 다니는 회사라는 후광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더 힘들었던 건 그 다음이었다.

'그래도 10년 친구인데 미워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하는 죄책감.

그리고 혹시나 다시 연락이 올까 하는 기대감과 실망감이 반복되면서, 내가 먼저 선을 그었으니까.

화내면 안 된다고 기대하면 안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그러다 보니 미움은 더 깊어졌고, 나는 더 괴로웠다.


니체와의 만남

그 감정을 숨기고 지내던 어느 날, 니체의 이 말을 만났다.

"친구를 미워하는 건 나쁜 거 아닐까?"
니체의 대꾸: "지성인이라면 친구를 미워할 수도 있어야 한다. 감정을 부정하지 말고 이해하는 거야."

순간 이해했다. 문제는 미움 자체가 아니라, 미움을 느끼면 안 된다고 억압하는 것이었다. 친구라고 해서 항상 사랑해야 하는 건 아니다. 실망할 수도, 화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다. 그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진짜 지성이었다.

게임 캐릭터의 감정 시스템처럼

게임을 기획할 때 NPC의 감정 시스템을 설계한다.

플레이어 행동에 따라 호감도가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좋은 NPC라고 해서 항상 호감만 표현하면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때로는 실망하고, 화내고, 관계가 멀어지는 것까지 구현해야 진짜 같은 관계가 된다. 감정의 복잡함이 관계를 현실로 만든다.

지성이란 감정을 이해하는 힘

니체의 말을 곱씹으며 깨달은 것이 있다.

감정을 억압할 때:

"친구니까 화내면 안 돼"

"좋은 사람이면 이해해야지"

"미워하는 내가 나쁜 거야"

→ 감정이 쌓이고, 관계는 거짓이 된다


감정을 이해할 때:

"지금 나는 실망했구나"

"무시당한다고 느낀 이유가 있었구나"

"이 감정도 나의 일부야"

→ 감정이 흐르고, 나를 이해하게 된다


지성은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힘이었다.


감정을 관찰하는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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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부터 나만의 '감정 관찰 루틴'을 만들었다.

매일 저녁: 감정 기록

- "오늘 느낀 불편한 감정은?" 솔직하게 적기

예: "친구에게 실망했다"


이유 탐색

- "왜 그 감정을 느꼈을까?" 판단 없이 관찰하기

예: "회사 후광으로만 나를 대해서"


이해의 씨앗

- "이 감정이 나에게 알려주는 건 뭘까?"

예: "나는 진실한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


처음엔 어려웠다.

부정적 감정을 인정하는 게 나쁜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계속하다 보니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니 오히려 빨리 흘러갔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나에 대해 많은 걸 알려주었다. 내가 진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어떤 관계를 원하는지.


복잡한 감정을 품는 지성

"친한 사람에게 화내면 안 될 것 같아요."
니체의 대꾸: "진짜 지성은 모든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거야. 사랑도, 미움도."

그 친구와는 결국 거리를 두게 되었다.

하지만 더 이상 죄책감은 없다. 나는 나의 감정을 이해했고, 그것을 존중했다. 친구를 미워할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진짜 성숙이었다.

니체의 말처럼, 지성인이라면 적을 사랑할 수도, 친구를 미워할 수도 있어야 한다. 감정은 좋고 나쁜 게 아니라, 나를 이해하는 단서다. 복잡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품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나를 알게 된다.

감정을 이해하는 힘이 지성이다. 사랑만 느끼라는 게 아니라, 모든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



당신도 가까운 사람에게 불편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나요? 그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댓글로 나눠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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