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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림 Nov 06. 2018

쓰레기의 연구

적당포럼 (비전화카페, 더피커, 보틀팩토리)

0의 연구 | 영의 연구

삶의 연구자로서 0(ZERO)에서부터 연구하고, 그것들을 기록합니다.

 혁신파크 정문 옆에 1년 동안 카페를 짓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저걸 언제 짓나 싶었는데 거의 다 지어서 11월 18일에는 오픈 파티도 한단다. 꾸준한 건 따라갈 수가 없나. 1년 동안 난 뭘했나 생각도 잠깐 들었다.

이번에 '적당포럼'이라는 이름으로 시월 말에는 '냉장고 없는 카페를 운영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꽃비원, 수카라를 초청해서 이야기를 나눴나보다. 나는 오랜만에 페이스북에 들어갔더니 이 포스터가 있어서 당일에 현장을 방문했다. 오늘의 주제는 '쓰레기 안나오는 공간이 가능할까?'였다. 비전화공방이 주최하고 성수동의 '더피커', 연희동의 '보틀팩토리' 대표가 자리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쓰레기에 참 관심 많은 여인되겠다. 2013년인가 해외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비존슨의 블로그를 발견했다. 'Zero Waste Home'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제로 웨이스트 무브먼트가 들어오기 훠얼-씬 전이었고 나는 이 혁명적인 문화에 매료됐다. 4인 가정에서 일년에 나오는 쓰레기가 유리컵 하나라니! 이후에 비존슨의 책이 한국어 판으로도 나오고, '미니멀리즘'도 유행하고, 일회용품을 보증금을 받고 빌려주는 마르쉐마켓도 한몫하고, 최근에는 일회용품 대란도 일어나면서 드디어 한국에서도 제로 웨이스트 무브먼트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잘 안착해야할텐데.. 여튼,


비존슨이 생활에서 실천했던 방법들을 나도 해봤다. 가족들과 함께 살았던 때라 참 마음대로 안됐다. 엄마는 엄마스타일의 살림 방법이 있었다. 그래서 가진 돈을 털어 독립을 감행했다. 2015년 여름이었다. 아주 기억에 남을 삶의 한 페이지다. 지렁이도 키우고 화분 난로도 만들고 면생리대를 쓰고 베이킹소다로만 설거지를 하는 등 젊을 때 아니면 안할 고생을 사서 했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얻은 한 문장, '적당히 하자'.




오늘 포럼에서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대표들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성수동의 '더피커'는 약 3년이 되었고, 연희동의 '보틀팩토리'는 아직 몇 개월이 안되었다고 한다. 더피커는 식당을 겸하면서 벌크마켓을 운영한다. 보틀팩토리는 카페인데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다. 포럼에서 오고간 이야기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더피커는 원래 한국형 벌크마켓으로 오픈을 했다. 그런데 한국 소비자의 까다로운 특성상, 재고가 많이 남게 되어 그것들을 활용할 수 있는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버려지는 식자재가 80%이상 줄었다고. 식자재를 최대한 버리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토마토의 경우, '엉덩이 부분'은 샌드위치 등에 넣을 때 식감이 좋지 않아서 보통 쓰지 않는다. 그걸 따로 모아서 과카몰리나 스프로 활용. 바나나 껍질은 근처 성수동 가죽공방에 보낸다. 가죽을 윤이 나게 할 때 바나나껍질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 밖에 양파껍질은 채수를 내거나 차로 이용한다. 한국의 식품위생법상 액체를 팔려면 개별 포장이 되어야 하고 겉에 용량과 성분을 표시해야 하기 때문에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포장을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보류. 지금 현재는 곡식류, 과일류를 판다. 


보틀팩토리는 '동네 보틀 세척소'를 지향한다. 처음에는 일일이 소비자에게 '빨대가 필요한지'를 물어봤었는데 스텝들의 온도차가 커서 소통 과정에서 오해를 살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티매트에 자수로 문구를 제작했다. '빨대 없이 음료를 드셔보시는 건 어떨까요? 필요하시다면 매장 내에 다회용 빨대를 준비해놓았습니다^^'와 같은. 그 이후 오히려 소통이 원활해졌고 다회용 빨대(스텐레스나 대나무 같은 빨대)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하루에 한 두명 있을까 말까 했다고 한다. 매번 묻는 것도, 매번 듣는 것도 서로 힘든데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이 들었다. 


두 대표 모두 영수증이 쓰레기로 나오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보틀팩토리 대표는 영수증을 선택적으로 출력할 수 있는 포스기를 찾아냈고 더피커는 법이 바뀌기 이전에 가게를 오픈했기 때문에(작년까지만 해도 영수증을 필수로 출력했어야 했단다.) 영수증이 나오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또 같이 고민한 흔적은 '음식물 쓰레기'에서도 나왔다. 그런데 도시의 특성상 대량의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은 쉽지 않다. 나도 지렁이를 키워봤지만 집에서 키울 만큼의 지렁이는 '애완용'에 지나지 않는다. 대지가 있는 시골이라면 땅에 묻어서 퇴비화를 하거나 닭장을 만들어 닭들에게 의존하는 방법이 있다. 닭은 정말 음식물 쓰레기를 잘 먹는다. 그 밖에도 탄산수를 낱개로 포장된 패트병을 쓰다가 탄산수 제조기를 쓴다던지, 커피콩 포장지를 줄이기 위해서 동네의 소규모 로스터리 카페와 논의 중에 있다던지, 자몽이나 오렌지 껍질을 가지고 천연세제를 만들어 쓴다던지 등의 작은 실천들을 한걸음한걸음 하고 있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큰 그림이었다. 개인이 해나갈 수 있는 부분은 매우 적다. 예전에 아현시장을 배경으로 '쓰레기 없이 장보는 모임'을 한 적이 있었는데 몇 가지를 성공적이었지만 (빵, 새우, 양파, 사과, 두부 등) 습관적으로 비닐에 채소류를 담아서 무게를 재려고 하는 상인들 때문에 설명하는 것에 애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재미있었지만. 낱개로 멀쩡히 디피가 되어있는 시장에서도 이렇게 힘든데 (최근에는 망원시장에서 쓰레기 없이 장을 보는 무브먼트를 진행중) 마트는 어떠하리. 두 대표들도 '소비자에게 제안하는 일은 오히려 쉬운데 수급하는 것이 훨씬 어렵다'고 토로했다. 특히 대량으로 생산하고 있는 곳에서 재료를 수급할 때는 '우리 가게만' 신경써서 포장없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그래서 우리 동네에 소규모 생산자들이 늘어나야 한다고 했다. 완전 동의!


옛날을 생각해보면 쉽다. 유통망이 확장되지 않았던 때에는 근거리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방앗간, 유리병에 담은 우유를 배달해주는 사람, 시장 상인들.. 지금은 큰 마트 하나에 모여있느라 개별체들은 사라지고 있다. 쓰레기 없이 사고 싶은데 사회가 그렇게 되어있지 않으니 활동가들은 곤혹스럽다. 바리바리 싸 들고 다니면서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사회. 독일만 하더라도 Original Unverpackt에서는 다양한 생필품들을 쓰레기 없이 살 수 있는 마켓들이 여러 군데 있다. 내 주변에 말이다. 지금 한국에서 쓰레기 없이 장을 보기 위해서 망원시장을 가고 성수동을 가야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한국의 법 제도가 따라오기만을 기다릴 수 없다면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1/n'도 괜찮은 방법 같다. 동네에서 대량으로 싸게 감자를 사와서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는 방식이다. 인터넷으로 뭐 살 때 같이 사는 방법과 같겠다. 샴푸도 동네에서 다 같이 만들어서 각자가 가져온 병에 나눠가지고, 고추가루도 방앗간에서 대량으로 빻아와서 무게 달아서 나누고. 제대로 이름 걸고 장사를 하는 게 아니라 '마을 기반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마을 공동체. 내가 살았던 검암의 우동사에서는 종종 그런 글들이 올라왔다. 그런데 언제든지 필요할 때 슬리퍼 끌고 가서 살 수 있는 구조는 아니었다. 배송비 줄이는 수준이랄까. 그런게 가능하려면 관계와 마을 공간이 필요할 터.


비닐과 플라스틱. 극도의 편리함으로 대표되는 재료지만 생각해보면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다. 집으로 가져올 때는 편하다. 그런데 집으로 가져와서는 하나하나 포장을 뜯고 분류해서 재활용 날에 맞춰 집 밖으로 내다놓아야 한다. 어쨋든 존재하는 불편함을 소비 과정의 뒤가 아니라 앞으로 가져오는 것이라고 더피커 대표는 말한다.




이번 포럼을 듣고 '마을'이 살아나야 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느꼈다. 상상은 마음껏해도 공짜다. 이미 그렇게 된 것처럼 상상하고 그 방향으로 살아가다보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와서는 빵반죽을 했다. 다음에 노오븐으로 만드는 빵에 대한 이야기도 올려볼게요.



+비전화카페에서는 커피를 직접 로스팅하고 사이폰으로 추출한다는데... 비전화카페도 너무 애쓰지말고 적당히 살펴나가면서 해나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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