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연일지

PART-1

by issac park

나는 아직도 1960년 대의 서울 변두리 풍경 속에 남아 있다

참으로 살기 어려운 시대의 마지막 세대로써 그때를 잊지않고 가슴에 기록해 두고있다 세월은 갔지만 그리움은 흘러가지 않는 부표처럼 기억과 추억의 물결에 흔들리고 있다 어떤 것일까 기억속에 추억은 ..어쩌면 유년의 꿈 또는 아픔이 아니였을까


내가 살던 동네는 서울 변두리 답십리 100번지였다

마장동 목재상가로 내려가는 우마차 길과 전농천과 청계천 방죽에 둘러쌓인 저지대였다

여름 장마철이면 뚝이 무너지는 걱정과 겨울이면 청계천 뚝방에 빽빽히 들어선 하꼬방의 화재로 인심이 흉흉한 빈촌였으나 지금의 제기동 미도파 백화점 자리에 있던 성동역과 청량리 역이 멀지않아 지방장사를 다니시던 아버님의 입장에서는 살기 좋은 곳이 였다



그 어느해 겨울저녘

식구들을 모아놓고 이사를 해야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풍년초를 말아 불을 붙이셨다

당시 경제개발에 닿을 올린 제3공화국의 정책에 따라 상습 침수지역의 주민들을 거여동이나 성남으로 이주시킨다는 이야기였다

아버님은 사업상 지방으로 이사를 할수없으니 가까운 근처에 집을 알아보겠다는 아버님의 결정에 식구들의 어깨가 축 처지는 분위기를 나는 감지하였다 통장님의 이야기 였다는 것이 였다

그 당시 통장남의 권위는 대단하였다 밀가루 배급 취로사업 문서발급에 까지 통장님 도장이 찍혀야 했던 시절였으니 누가 이사실을 의심할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결국 통장님의 말씀도 소문였지만 그소문에 당위성을 제시하면서 많은 동네사람들이 이사를 준비하였고 아버님도 소문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집을 정리하고 이사를 하고 말았다

그리고 몇해후 용답동 저지대 채소밭이 매립되고 군자동을 지나 천호동까지 길이 뚫린다는 상전벽해같은 소문이 들리면서 이곳 저곳이 변하더니 1970년이 들어서 청개천에 다리가 놓이고 전농천이 복개되고 지하철까지 생겼으니 아버님의 피해와 후회가 얼마나 깊었겠는가 아버님은 그 뒤로 한동안 옛 살던 동리를 찾아가 골목길과 옛집을 어루만지는 아쉬움을 보이셨다


이렇듯 소문은 환경과 처지가 불인 할 때 공감을 느끼게하며 피해를 주는 것이다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묻고 들은 것이 오해를 퍼트리고 생각하며 대답하여도 시간이 가면서 다같이 소문을 전달하는 과정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과테말라 교민사회의 괴소문이 날때마다 연말연시의 사고처리처럼 사실를 빠르게 발표해 준다면 생활을 위축시키고 두려움을 갖게하고 타인의 인격과 생업에 지장을 주었던 소문들이 오늘날에까지 뿌리를 내리고 우리를 괴롭히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반이 약한 이민사회에서 불길한 소문과 구설수는 관심을 받는다

추측과 염려에 대비하는 조심성이 도리어 현실로 인식되기가 쉽다 출처를 규명하기보다는 사실을 바르게 전달하는 것이 뿌리를 자르는 현명한 대처일 것이다

과거의 아버님처럼 소문에 신중하였던 것이 마음을 떠나보내고 이사가 아닌 이주를 하지 않았던가

교민사회에 확실치않은 소문이 들릴때마다 나는 나의 아버님의 회한이 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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