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민낯을 짐작해 보는 기행
살면서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니, 개인적으로는 절대로 하지 않을 일들을 종종 하게 된다. 올해의 첫 Family Service로서 이뤄진 이러한 익숙하지 않은 기행은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강제로 시간을 빼서 가족 휴가로 일본 여행을 가는 것으로, 그것도 5살 난 아들을 위해서 도쿄 디즈니 랜드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나리타 공항에 내려서 다시 공항에서 디즈니랜드 직항 버스를 타고 우라야스시의 마이하마 역 근처에 내렸다. 그리고 거기서 다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미리 숙소에 짐을 풀고 나니 어스름 이른 저녁을 먹을 시간. 숙소 근처에서 식사를 하고 근처 마트에 들러서 다음날 디즈니랜드에서 먹을 부식을 산다음 돌아와서 일찍 잠을 청했다. 우라야스시가 한국에서 어느 도시와 비슷한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다닥다닥 좁은 집들의 베란다마다 바람에 빨래가 흩날리는 한적한 풍경가운데 저마다 일상을 살아가며 바쁘게 지나가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일본의 민낯을 조금이나마 살펴보려 했던 것 같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대세가 되어가는 개인화된 생활 문화의 원조가 일본인만큼, 다채롭게 구비된 편의점과 마트 도시락이 눈에 들어왔다. 장기간 유지된 디플레이션으로 민간 소비가 줄다 보니 식빵은 4~5쪽 단위로 나눠 팔고 고기도 몇 점 단위로 팔았다. 심지어 딸기 한 알에 300엔에 파는 경우도 있었다. 자전거를 사용해서 출퇴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 운전자 앞뒤자리에 아이를 태우는 의자와 바람막이 비닐을 설치해서 애 둘을 데리고 자전거로 출퇴근길을 가는 젊은 여성도 보며, 결코 싸지 않은 대중교통비용의 여파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침 9시 오픈런으로 들어가 저녁까지 지내다 나온 도쿄 디즈니랜드에서는 몇 가지가 눈에 띄었다. 우선 일본인들의 높은 준법 질서 의식이었다. 내가 있는 시간 동안 총 3번의 대형 퍼레이드가 있었고, 그때마다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메인 거리로 나와서 자리를 잡았다. 우선은 반듯하게 오와 열을 맞춰 자리를 잡은 돗자리들이 눈에 들어왔고, 퍼레이드 중간 혹은 끝난 후 직원들의 안내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질서 정연하게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심지어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중간중간에 퍼레이드 차량을 다소 멀게 배치해서 그 잠깐 사이에 필요한 사람들이 퍼레이드로 막힌 행진 거리를 통과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부분은 한국이라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섬나라 특유의 문화로 인한 다테마에(겉마음)의 흔적일지는 모르겠으나,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로 눈에 들어온 것은 일본인 특유의 꼼꼼함과 철두철미 함이었다. 야외 테마파크의 각종 벽면이나 바닥 구석구석은 필연적으로 먼지가 쌓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온갖 곳을 훑고 다닌 5살 아들의 손을 여러 차례 닦아주면서 눈에 띈 점은, 아들 손에 이렇다 할 먼지나 더러움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국이라면 절대로 청소하지 않을 온갖 곳들을 쓸고 닦은 것이다. 이 점은 라이드 내 관람 구간에서의 청결함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었다. 비슷한 콘셉트의 라이드로 롯데월드의 신밧드의 모험이 생각나는데, 작년에 방문했을 당시 낡고 먼지 쌓인 내부로 인해 우중충하다는 느낌을 받았더랬다.
이러한 꼼꼼함과 철두철미함은 다른 면에서도 드러났는데, 대기시간을 줄이고 지루함을 줄이기 위하여 대기구간에 설치된 다양한 장치들과 놀이기구 탑승로에 설치된 무빙워크였다. 디즈니랜드는 8세 이하 아이들을 주 타깃으로 설정한 곳이고, 대부분의 놀이기구가 스릴보다는 디즈니의 각종 테마 콘텐츠 체험에 초점을 맞춘 테마파크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라이드는 콘텐츠와 테마 체험에 유리한 다크라이드(탈것을 타고 세트장이 꾸며진 실내를 누비는 형식의 놀이기구)로 되어있다. 도쿄 디즈니랜드는 이점을 극한으로 이용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우선은 각종 테마를 체험할 수 있는 수단들 (영상, 조형물 등)을 대기구간에 배치하고, 적정 수준의 대기구간은 놀이기구를 탑승하는 건물 내부에 배치하는 등 대기 구간 동선상의 환경을 자주 바꾸어서 대기 시간을 덜 지루하게 만들었다. 이에 더해서 1회 체험 시간이 고정되어 있고 탈것의 이동속도가 느린 다크라이드의 특성을 활용하여 회전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대기 시간을 줄였는데, 놀이기구 탈 것이 기존 승객을 내리고 새 승객을 태워서 출발하면 곧바로 다음 탈것이 들어오도록 빡빡하게 배차를 했다. 덕분에 대기자들은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없이 계속해서 느리게나마 움직이게 되어 덜 지루해진다.
여기에 더해서 특정 라이드는 승하차 구간을 길게 만들고 탈것과 속도가 동일한 무빙워크를 설치해서 탈것이 운행속도를 유지하는 가운데 승객이 탈것을 내리고 탑승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적인 라이드들의 경우 승하차 구간에서 탈것이 멈추고 기존 승객이 내리고, 새 승객이 타는 승하차 시간 동안 서비스가 멈추게 되는데, 무빙워크를 통해서 탈것의 정차 없이 승객들이 승하차를 하도록 하여 승하차하는 시간마저 없애버린 거다. (생산관리 전공자로서 이 대목에서 탄성을 금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극한의 최적화 결과, 이용객 입장에서는 줄이 길어도 지루하지 않게 금방 빠진다는 느낌을 받고, 안내된 대기시간보다 덜 기다린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물론 시간을 실제로 재보면 정확하게 안내된 대기 시간만큼 소요된다.)
마지막으로 어스름 해가 지고 나서 불꽃놀이와 함께 진행되는 신데렐라성을 보면서 느낀 감상은 도쿄디즈니랜드가 1980년대 초까지 이어진 일본의 경제적 최전성기의 마지막 산물이라는 점이다. 도쿄 디즈니랜드는 일본의 장기불황의 서막을 알린 플라자합의가 이뤄진 1985년 직전인 1983년에 개장했다. 미국 본토가 아닌 지역에서 개장한 첫 번째 디즈니 랜드로서 본토의 디즈니 랜드를 최대한 그대로 가져오는 한편, 로컬라이제이션에도 충실해서 모든 라이드와 체험에서 전부 일본어로 더빙되어 있다. 이렇듯 디즈니랜드는 그 자체로 개원 당시 세계 시총 상위 20개 기업 중 70%가 일본기업이었던 당시 일본 경제 최전성기의 위상을 짐작하게 하지만, 쇼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다시금 마주하는 한산하고 느린 우라야스시의 풍경으로부터 30년간 장기불황 이후 현재의 일본을 더욱 부각하는 역할을 했다.
그간 25개가 넘는 국가를 여행해 본 입장에서, 관광지는 방문하는 국가나 도시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라는 생각을 한다. 반대로 사람들의 일상이 드러나는 방문지의 민낯을 보고 싶을 때, 나는 거주 지역의 재래시장이나 동네 마트를 찾아간다. 산업구조와 특산품, 소비문화와 물가를 통해 경제 구조까지 살펴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종일 있었던 디즈니 랜드에서 받았던 소감과, 다 합쳐도 세 시간이 못 되는 우라야스 시내 마실 중에 느꼈던 소감은 분명 다른데, 과연 어느 쪽이 더 마음깊이 오래도록 남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