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3개월

3개월. 아르바이트. 그냥 딱 3개월은 아니었나 보다.

by Isaac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였다. 다음 계획까지 약 3개월의 기간을 갖게 되었다. 풀타임을 하기엔 짧고 그렇다고 배달 같이 단순히 돈을 위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지 않았기에, 경험치를 늘릴 겸 내가 목표로 삼았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는 일본 바이어를 상대로 하는 조그만 의류수출회사에 이력서를 보냈다.


면접을 보러 갔다. 회사는 아파트 상가에 있었다. 바닥장판은 군데군데 뜯어져 있었고 창고(라고 불리는 곳)는 대충 커튼으로 둘러메어져 있었으며, 면접 보는 테이블에서는 방금 직원들이 뭘 시켜먹었는지 음식 냄새가 테이블 상판을 타고 의자에 앉은 나에게까지 전해졌다.


몇 십분 얘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다. 언제부터 출근이 가능하냐는 질문과 함께, 나의 공식적이면서도 비공식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내 일은 간단했다. 의류 개별 폴리백 포장이었다. 거래하는 공장 중 하나가 인력이 달려 포장 업무를 하지 못하는데 그것을 우리 회사에서 해냄으로서 공임을 낮추는 게 포장 업무의 이유이자 내가 고용된 이유였으며, 내가 면접을 봤던 -나중에 알았지만 점심밥 식탁도 겸했던- 그 테이블에서 여성용 티셔츠를 접어 비닐백에 하나하나 넣는 것이었다.


며칠이 지났다. 이상하게도 난 동대문으로 보내졌다. 근무시간 내내 포장을 해야 할 티셔츠들이 오는 것은 아니었기에, 나는 동대문으로 가서 원부자재를 구입한 다음, 그 원부자재를 대봉에 담아 들쳐 멘 후, 버스를 타고 약 4~8명의 미싱사들이 있는 면목동 공장으로 배달했다.


그때는 몰랐다. 나는 셔틀이었던 거다. 나중에 보다 큰 필드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것이었지만, 나는 퀵 오토바이임과 동시에 용달 트럭이었고, 컨테이너 박스임과 동시에 바다를 건너는 선박이기도 했고, 때로는 값비싼 에어카고이기도 했다.


거기서 세상을 배웠다. 지금 생각하면 고맙다. 동대문 레이스 가게에서 내가 분명히 먼저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더량이 조금이라는 이유로 나보다 늦게 온 조금 큰 업체 디자이너들에 순위가 밀려 레이스 13마 구입을 위해 30분이고 1시간이고 기다리며, 역시 사람이건 회사건 간에 파워가 있어야 하는구나라고 깨달았다.


그것만이 아니다. 현장의 최전선도 경험했다. 단추 가게에서는 목이 긴 장화를 신은 아저씨가 소위 말하는 다라이(?)에 후각을 마비시킬 듯한 염료를 부어놓고 내가 가져온 100여 개의 단추를 쏟아 넣어 마치 김치 속을 버물이는 듯한 액션으로 단추를 염색시키는 것을 지키고 보고 있어야 했다.


다른 날도 있었다. 이번엔 종로 5가였다. 유명한 약국 사이의 골목길을 지나 깊숙이 들어가면 나오는 음침한 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인사 후 건네는 주름 가공 의뢰 또한 내 일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왜 인지 모르겠다. 나는 파트타임 알바였는데. 오전에는 동대문에서 종로, 종로에서 면목동을 오가다가 저녁에는 폴리백 포장 알바를 하며 중간중간에 히스테리컬 한 실장한테 5만 가지의 욕을 얻어먹어가면서, -당시에는 너무나도 당연했지만- 토요일에까지도 일했던 이유를 모르겠다.


65만 원 남짓이었던 것 같다. 그게 내 월급이었다. 그래도 꼴에 월급이라고 처음 받았을 때 부모님께 내복까지 선물했던 기억이 나는데, 선물을 받았을 때의 부모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걸로 봐선 그 선물이 당신들에겐 그다지 인상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그 길을 요새 지나다닌다. 거의 매일 지나간다. 아직 그 회사가 그 자리에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 더 솔직히 말하면 있으나 없으나 이제 별 상관없지만 13년 전 고작 3개월 알바로 일한 회사생활의 거의 모든 것이 아직도 그 길을 지나갈 때마다 번쩍번쩍 떠오르는 걸 보면, 그 고작의 3개월이 단순한 3개월은 아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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