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공의 무거운 도복을 입는 연습

by 아이작 유

초등학생 시절 드래곤볼은 나에게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주었다. 드래곤볼 주인공인 손오공의 말들을 셀 수 없이 곱씹었고 손오공의 포기를 모르는 성격, 정의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며 싸우는 영웅의 모습은 나의 롤모델 그 자체였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축구부 선수였는데 손오공이 훈련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해보기도 했다. 손오공은 수련을 위해서 일부로 무거운 특수 복장을 착용했다. 손목끈, 신발 한 켤레, 반팔티, 바지는 각각 20 kg의 무게였고 다합쳐서 100 kg의 무게나 나갔다. 평소에도 엄청난 무게를 이기며 수련한 손오공은 천하제일무도회에서 천진반과 싸울 때 무거운 도복을 벗어 버리고 천진반의 눈으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놀라운 스피드로 천진반을 제압했다. 손오공을 따라하고 싶은 나는 바로 모래주머니 두 개를 샀고 매일 그것을 착용한채 축구 훈련을 했다. 마치 나 자신이 손오공이 된 듯한 느낌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우스광스럽지만 그 당시의 나는 내가 정말로 진지했고 나 자신이 정말로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모래 주머니를 차며 생활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근처 학교의 축구부와 친선 시합이 잡혔다. 나는 드디어 모래 주머니를 벗을 때가 왔다고 생각했고 내 심장은 두근 두근 설레였다. 경기 시합전 모래 주머니를 벗어 던지자 나는 하늘을 날 수 있을 것 같은 가벼운 몸 상태를 느꼈고 최전방 공격수로서 경기 내내 상대편에게 위협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 우리팀은 삼 대 일로 상대팀을 이겼고 나는 헤딩으로 한 골을 넣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정말로 강렬한 인상이 주었다. 뭔가 훈련의 단계에서 이미 정해진 기준보다 스스로 좀 더 높은 기준으로 수련을 하게 되면 실전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는 레슨을 얻었다. 이후 나는 어떠한 훈련을 할 때 나만의 제한을 걸어두며 하곤 했다. 나는 뭔가 새롭고 재미있는 것들을 해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뭔가를 연습할 때 이 조건 저 조건의 나만의 제한을 두면서 연습하면 더 재미있다고 느꼈다.


내가 대학원생이었던 시절, 나는 이 단체 저 단체 활동의 연줄을 끊지 못하고 연구보다는 외부 활동을 많이 하는 그런 학생이었다. 대학원 3년차가 시작되기 직전, 교수님께서 학교에서 나의 활동들을 누군가로부터 들으셨고, 나에게 진지하게 물으셨다.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면 연구가 나의 적성이 아니라고 교수님은 진지하게 말하셨다. 그리고 일주일 고민할 시간을 주셨다. 나는 진지하게 고민한 뒤, 달라진 모습으로 연구를 할지 아니면 연구실을 나가고 다른 길을 가야할지를 고민해야했다. 일주일 동안 연구실 동기들 후배들의 모습을 보았다. 진지함과 열정을 가지고 연구를 하는 나에게는 없는 모습을 보고 나는 충격을 먹었다. 나는 내가 왜 연구의 길을 선택했는지 첫 동기를 떠올렸다. 내 연구실은 자연모방연구를 했다. 나는 자연 속에서 존재하는 신기한 현상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를 설명하거나 활용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고는 교수님께 찾아갔었다. 그런데 거의 이 년 정도를 허송세월한 것이었다. 나는 교수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고 앞으로는 대부분의 활동들을 정리하고 연구에 최우선순위를 두어 새로운 마음으로 정진해보겠다고 그리고 다시 한 번 지켜봐 달라고 말씀드렸다.


나는 정확히 삼 년 뒤 박사 최종 심사에서 멋진 모습으로 발표하게될 내 모습을 목표로 삼았다. 첫 이 년을 대충 살았으니 남은 삼 년은 빡세게 연구를 해야했다. 당시 나는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뭔가를 읽고 이해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시간이 나기만 하면 연구와 관련된 모든 논문들을 샅샅이 뒤지며 닥치고 논문 읽기를 시작했다. 빡센 논문 읽기는 손오공의 무거운 도복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지만 매일 수많은 논문을 읽는 것이 삶의 일부로 느껴질 정도로 나는 계속 읽고 또 읽었다. 일 년 반 정도가 지나고 나니, 교수님이 읽은 논문은 나도 이미 읽은 수준이 되었다. 그리고 바쁘신 교수님과 동료들에게 최신 논문들을 업데이트 해주기도 했다. 동료들과 후배들은 나 없을 때 교수님에게 내가 개과천선하고 있다고 칭찬을 했고 교수님은 이에 흐뭇해하셨다고 한다. 빡센 논문 읽기를 하다보니 연구 관련 사람들의 질문에 대부분 잘 대답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 또한 내가 연구하는 바닥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논문들을 읽다보니 사람들이 아직 답을 하지 못한 것이 많다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했고 그것이 내 박사 연구 주제들이 되었다. 동료들과 잘 협업한 덕분에 나는 삼 년 동안 열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었고 열 편의 논문과 여덟 편의 특허 그리고 훌륭한 부사수 두 명을 남기고 박사 학위를 땄다. 이제 학계가 아닌 메모리반도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나는 지금도 내가 하는 일 관련하여 전세계에서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니터링을 하고 이를 동료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아직도 나는 손오공의 무거운 도복을 입는 연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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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지능><노트지능><걱정마 시간이 해결해줄거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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