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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작 유 Sep 24. 2021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

3의 법칙 - 세 번째 이야기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세 가지 질문’에는 한 왕이 등장하는데 그는 언제 시작할 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면, 가장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다면,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성공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자신에게 알려주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릴 것이라 선포하였다. 수많은 백성들과 신하들이 왕에게 각각의 답을 알려주었지만 왕은 흡족해하지 않았다. 왕은 나라에서 가장 지혜롭다고 알려진 숲 속의 현인을 만나러 갔다. 현인은 암자 앞에서 묵묵히 땅을 파고 있었다. “지혜로운 현인이여,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합니다. 올바른 일을 가장 적절한 때에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제가 가장 주목해야할 사람은 누구인가요? 제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요?” 현인은 아무런 말대꾸도 하지 않고 계속 묵묵히 삽으로 땅을 파고 있었다. 그러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그들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배를 움켜잡고 있었고 그 밑으로는 비가 흥건했다. 그가 기절하자 왕은 즉시 지혈을 시작했고 여러번 붕대를 갈아주면서 그를 정성껏 간호했다. 지쳐버린 왕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너무나 피곤했는지 밤 동안 한 번도 깨지도 않을 정도였다. 그 다음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왕 앞에 그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저를 용서하소서!” 그 남자는 왕 앞에 간곡하게 말을 했다. 알고보니 그의 형은 왕에 의해 사형을 당했고 자신의 재산 또한 몰수당했다. 그래서 그는 왕을 자신의 원수로 여기고 있었고 전날 왕이 현자를 만나러 숲에 간다는 정보를 듣고 왕을 죽일 계획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의 호위대에 발각되어 호위대의 창에 찔린채 도망쳤고 왕 앞에서 기절했던 것이다. “허락하신다면 평생 왕의 충실한 종으로 살겠습니다.” 이렇게 왕은 충실한 종을 얻었다. 그리고 왕은 다시 현자에게 다가갔다. “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주시오.” 왕은 물었다. “당신은 이미 답을 알고 있소.” 현자는 말했다. “무슨 말이오?” 왕은 의아해했다. “남자가 우리에게 왔을 때 가장 중요한 순간은 당신이 남자를 돌봐준 때였소. 당신이 상처에 붕대를 감아 지혈해주지 않았다면 그 남자는 당신과 화해도 하지 못한 채 벌써 죽었을 것이오. 그러므로 그 때 가장 중요한 사람은 그 남자였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일은 당신이 그 남자에게 해 준 일이었소.”


톨스토이는 우리에게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은 언제인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톨스토이의 답은 매우 간단하다. 가장 중요한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바로 지금만이 우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에 말이다. 가장 소중한 사람은 "바로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이다. 그 누구도 앞으로 다른 누군가와 어떤 관계를 맺을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바로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을 위한 선한 일"이다. 톨스토이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인간이 이 세상에 온 단 하나의 목적이기에 말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살아간다. 혼자서만은 세상을 살아갈 수 없으며 어느 정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야만 한다. 그런데 법화경의 ‘회자정리 거자필반 (會者定離 會者定離)’이란 말 대로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헤어진 사람은 때가 되면 다시 만나는 법이다. 나의 경우, 대학교 때 매일같이 동거동락하며 함께 놀았던 친구들이 있었다. 졸업 후에도 정말 자주 만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각자 사회 생활 하느라 바빠 연락이 뜸해지더니 결혼 또는 장례와 같은 경조사가 아니면 만나기가 어려웠다. 한편 대학원 때 친하지 않았고 대학원 졸업 후에도 서로 연락을 전혀 하지 않았던 후배가 있는데 나중에 같은 직장에 다니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매주 만날 정도로 친해지는 경우도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이런 비슷한 경험을 많이 했고, 그 결과 인간 관계 즉, 인연이란 개인의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인연은 만들어나가는 것보다 주어지는 것에 더 가깝다고 믿는다. 이런 점에서 나는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이 정말로 현명한 지혜라고 생각했고 이를 인간 관계에 대한 세 가지 원칙으로 삼았다.


현재의 관계에 집중하기

첫째, 현재의 관계에 집중한다. 나는 과거의 관계를 과거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쓰곤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소중한 자산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했다. 틈틈히 연락을 해서 안부를 전하고 경조사가 있으면 대부분 참석하는 등 정말로 많은 노력을 했다. 이십대 시절에는 이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내가 삽십대가 되고 나와 내 지인들이 한창 바쁘게 사회생활을 하고 가정을 이루며 사는 때가 되자 과거의 관계를 동일하게 유지한다는 것을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비유하자면 내가 아는 사람 열 사람이 있었는데 여덟 사람은 먼 거리에 살아 만나기가 어려웠고 연락도 서로 하지 않게 되면서 특별한 계기가 있지 않는한 서로 신경쓰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 나머지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어 충분히 만날 수도 있었지만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만나지 않으면서 서로 신경쓰지 않는 관계가 되었다. 나머지 한 사람만이 틈틈히 안부를 전하고 일 년에 네 번 정도 만나는 관계가 되었다. 이와 같이 나는 과거의 관계를 동일하게 유지하는데 실패했다.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내가 친했던 사람들을 내 삶에서 떠나보낸만큼 그 빈자리가 현재 내게 주어진 소중한 사람들로 채워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 (아내와 두 자녀), 서로 배우고 인정하고 잘 되기를 응원해 주는 직장 동료들, 같은 직장을 다니는 소중한 내 후배들, 매주 동네에서 같이 테니스 치고 국밥 먹으러 가는 동네 사람들, 딸이 어린이집에서 제일 친한 친구의 부모, 내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의 삶을 틈틈히 메일로 공유해주시는 독자님들, 틈틈히 안부를 전하고 내가 집필하는 활동을 공유드릴 수 있는 출판사 선생님들 등등 그 때 그 때마다 내게 꼭 필요하고 소중한 사람들이 내게 찾아왔다. 나는 우리가 과거의 관계에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관계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수에 집착하지 않기

둘째, 사람들의 수에 집착하지 않는다. 과거 나는 내 주변에 사람들이 많을 수록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자존감 지수는 내가 얻은 사람들의 수에 비례했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정말 지루할 틈새 없이 살아갈 때면 나의 자존감은 하늘을 찔렀고 내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면 나는 외롭고 쓸쓸했고 혹시 내가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며 우울했었다.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을 얻기 위해서 그들에게 좋은 인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얻는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내가 사회 생활을 하면 할 수록 사람들의 수는 진정한 인간 관계와 삶의 행복에 있어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가장 쉬운 예로, 내 핸드폰 카톡에 저장된 사람들의 수는 1,021명이고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는 899명이며, 카카오 브런치 구독자수는 3,598명이다. 다합치면 5,518명이다. 그런데 이 중에서 99%는 단순 아는 사람 또는 모르는 사람의 피상적 관계일 뿐이고 1%도 안되는 30~40명만이 현재 나에게 매우 소중한 관계이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얻으려는 노력의 함정은 99%의 피상적 관계를 유지하는데 에너지와 시간을 쏟느라 정작 최선의 관심을 기울여야할 1%의 소중한 관계에 소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연이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지는 것이라고 믿을 때 우리는 사람들의 수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나는 신이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의 사람들만을 그 때 그 때 우리에게 주신다고 믿는다. 때때로 신은 내게 아무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나를 외롭게 했을 때도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 때에 신은 내가 고독이란 녀석을 즐기고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내는 훈련을 하길 원했던 것 같다. 그 외에 신은 언제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내게 주셨다. 그리고 나는 그 때 그 때 내게 주어진 그 소수의 사람들에 최선을 다해 집중했다. 그 결과 내 곁에는 늘 인격적으로 관계를 맺는 소중한 사람들이 존재했고 이들로 인해 인생의 행복이라는 것을 발견하며 살아갈 수 있었다.


먼저 내어주기

셋째, 그들이 내게 해줄 것을 기대하기 보다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도모한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들에 대해서 사랑의 마음이 없다면,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절대로 남에게 주지 않을 것이고 남에게서 빼앗기지 않으려할 것이다. 나는 사랑이란 말을 고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조사한 적이 있다. 여러 해석들 중에서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것은 고대 히브리 사람들의 해석이다. 히브리어로 사랑이란 ‘아하바’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의 뿌리어는 ‘아브’이며 ‘주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고대 히브리사람들은 사랑의 핵심을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남에게 내어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해석의 가장 큰 장점은 사랑을 정량적으로 측정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대상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그 대상에게 내가 무엇을 주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만약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데, 나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 않고, 돈을 쓰려고 하지 않고, 기회를 만들어주지 않으려 한다면, 내 사랑은 식었거나 없어졌거나 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에게 소중한 것을 주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소중한 것을 받는 사랑하는 이가 감사해하고 행복해하는 것을 보며 더 큰 감사와 행복을 느낀다.  행복은 당신이 사랑하는 이의 행복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당신이 사랑하는 이가 행복하지 않으면 당신은 행복할 수 없다. 물론 그 반대로도 마찬가지이다. 당신이 사랑하는 소중한 이는 누구인가? 그 사람이 필요로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은 무엇을 내어줄 수 있는가? 이것이 사랑의 기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주는 만큼 돌려받는다라는 말이 있다. 경험적으로 이 말은 진짜 사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이 말이 너무 계산적인 듯한 어감으로 들려 말을 좀 순화하여 이렇게 부른다. “사랑한만큼 사랑받는다.” 우리는 사랑한만큼 사랑 받는다. 운이 좋으면 사랑한만큼보다 더 많은 사랑을 받는 경우도 있다. 나는 직장에서 가능한 내어주려고 노력하며 내가 알고 있는 좋은 것들을 가능한 나누려고 노력한다.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한정된 고과를 두고 경쟁을 해야하는 직장 환경 속에서 나에게 각별한 사이가 아닌 자들에게도 내것을 내어주려는 것이 본능적으로 꺼려질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세 가지 이성적 사고를 통해서 내 것을 내어주려고 했다. 첫째, 사랑한만큼 사랑받는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진리에 매우 가까운 명제이다. 따라서 나는 이 말을 믿고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이성적 판단으로 나의 본능을 억누르며 사람들에게 내것을 내어주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단 내어주기 시작하면 계산적인 이성적 사고를 다 녹여버리며 사람들에게 더 좋은 것을 주고 사람들을 도우려는 착한 마음이 생겼다. 둘째, 리더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내 것을 내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때때로 “나만 알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나만 잘되면 되지 않을까?” “나만 더 돋보이면 되지 않을까?” “나만 더 성장해도 되지 않을까?” “내가 가진 능력을 나누는 것이 내 실력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내 경험 상 그 반대가 훨씬 더 효과적임을 잘 알고 있기에 나는 이러한 생각들을 바로 물리쳤다. 나는 내가 잘 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사람들을 성장시킬 때, 나에게 돌아오는 공을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사람들에게 더 많은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음을 경험했다. 또한 내 능력을 내어줄 때,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신선한 아이디어 공유를 통해서 내 능력이 더 크게 발전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그리고 내 실력을 내어줄 때, 나의 일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협업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실력은 물과 같아서 흐르지 않고 고이면 썩는다. 실력은 나누어야만 더욱 더 발전할 수 있다. 셋째, 회사는 내 것이 아니다. 회사는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고 언젠가 내가 회사를 그만들 때에도 내 것이 아니다. 공수레 공수거! 내가 이 조직에 빈손으로 왔고 빈손으로 돌아갈테니 나는 미련 없이, 집착 없이, 내게 주어진 소중한 사람들에게 가능한 많은 것을 내어주려고 할 것이다.



이제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을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해서 이번 장을 짧게 마무리하고자 한다.

바로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사람을 위해서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인성

글보다 삶을 쓰려는 작가 



아이작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23년 10월 3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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