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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작 유 Mar 21. 2022

'위기'라는 이름의 안경을 써보자

나는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잠시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 내일 회사 가기 싫을 때,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 나는 집 근처에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보고 만족과 기쁨을 잔뜩 안고 집에 오곤 한다. 영화를 많이 보면서, 영화를 볼 때 꼭 확인하는 습관 하나가 생겼다.


그것은 대부분의 영화가 시작한 지 20분 정도에 영화의 핵심 사건이 발생하고 영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데, 초반 15분 정도의 이야기와 복선을 가지고 그 핵심 사건을 맞추는 것이다. 내 경험상 영화 시작 20분 정도에 발생하는 핵심 사건은 여느 때와 같이 살아가는 ‘정’ 주인공을 위기에 빠뜨렸고 ‘반’, 정과 반의 긴장이 긴박하거나 신선할수록 영화의 재미와 몰입도는 증가했다. 예를 들어, 영화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에서 대머리 외모의 평범한 남자 프랑수아는 460만 유로(원화 60억 이상)의 복권에 당첨됐고, 홍등가에 가서 즉흥적인 사랑에 대한 가격 흥정을 한다. 그곳에서 프랑수아는 모든 남성들의 선망의 대상인 다니엘라(모니카 벨루치)를 만나게 되고 한 달에 10만 유로를 주는 대신 복권 당첨금이 다 떨어질 때까지 같이 살자는 제안을 한다. 그리고 다니엘라는 프랑수아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말이다. 프랑수아는 어려서 달리기조차 못할 정도로 선척적으로 심장이 약한 남자였다. 그는 다니엘라와 자신의 집에 가는 계단에서 주저앉아 가슴을 부여잡고 있을 정도였다. 누구보다도 치명적 매력을 소유한 여자와 누구보다도 심장이 약한 남자의 관계 설정에서 나는 묘한 긴장과 위기를 느꼈고, “우와! 감독이 진짜 천재이다!”라고 외쳤다. 나는 이 영화를 시작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즐겼다.


영화 <사랑도 흥정이 되나요> 원 포스터


내가 본 영화에는 위기가 없는 영웅이 없었고, 위기가 없는 명작이 없었다. 가장 치명적이고 재미있는 위기 설정 속에서 우리는 가장 긴장되고,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나는 ‘위기’라는 안경을 통해 현실에서 기회를 창조해낼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 생각을 ‘위기라는 이름의 안경을 쓴다’라고 표현한다. 위기의 안경을 쓸 때, 위기는 곧 기회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치열한 현실에는 정말로 많은 위기들이 발생한다.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상황인데 이를 방해하는 위기의 사건들은 꼭 발생하곤 한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조직의 경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여러 과제들을 담당하고 있는데, 위기가 없는 과제는 없을 정도로 과제의 난이도가 높다.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예상치 못한 제품 불량 이슈가 발생한다든지, 전체의 목표 달성을 위해 오히려 내 조직의 목표를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든지, 제품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 기존의 방법으로는 원하는 결과를 얻기 힘든 경우가 발생한다든지, 정말로 극복하기 어려운 위기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이때마다 나는 위기의 안경을 적극적으로 쓰려고 노력한다. 좋은 모습, 흠 없이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어려운 위기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다.


예를 들어, 내가 담당하는 과제 현황을 보고해야 할 때, “그동안 잘해왔다 - 하지만 앞으로는 이러이러한 위기 때문에 힘들겠다 - 하지만 이러이러한 노력과 혁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겠다”의 논조로 현황 보고를 하려고 노력하며, 위기를 극복하는 이야기를 통해 더욱더 설득력 있는 보고가 될 수 있음을 많이 경험하였다. 위기를 감싸 안고 이를 극복해나갈 때, 우리는 더욱 진보와 혁신을 경험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위기는 위기로 끝나지 않으며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만들어낸다.


정치, 국방, 외교, 문화, 과학, 기술, 사회, 예술 등 모든 분야에 있어 최고의 업적을 일궈낸 성군 세종대왕의 곁에는 회의 때마다 참석하여 늘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여 문제의 취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허조가 있었다고 한다(그는 예조판서,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 좌의정의 관직을 맡았다). 세종 스스로도 허조를 향해 ‘고집불통’이라고 할 정도로, 꼬장꼬장한 허조는 세종의 정책의 문제와 시시비비를 깐깐하게 따졌고 충언을 삼가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 허조의 이름이 총 1,021번이나 등장하는데, 대부분 왕이 주관하는 어전회의에서 ‘신 허조 아룁니다’로 시작하여 제안된 정책이 잘못될 소지를 지적하고 시정이나 중단을 요구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절대 왕정의 시대에 목숨을 내걸고 정책의 위기를 드러냈던 허조. 그의 위기 리더십이 있었기에 세종대왕이 올바른 정책을 펼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리더십에는 언제나 세 가지가 있다: 잘못 되었을 때를 인식하는 능력, 잘못으로부터 배우려는 의지, 변화하고자 하는 열망.  - 제프리 프라이 -



유인성 작가 신간 <셋으로 된 모든 것은 완벽하다> p270-273 중에서


아이작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23년 10월 31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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