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습관이 있다. 그것은 노트에 나의 생각을 옮겨 적는 것이다. 책상에 앉아 펜을 잡고 때로는 글로 때로는 그림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렇게 적어온 나의 꿈들이 하나씩 하나씩 현실화되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스케치 노트 쓰기Sketch Note Writing’는 말 그대로 이미지, 곧 그림을 활용한 노트 쓰기 기술이다. 스케치 노트 쓰기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가 본능적으로 해왔던 기술이다.
문자가 없었던 선사 시대에 사람들은 동굴 벽이나 바위에 그림을 그려서 자기 생각과 아이디어를 표현하였다. 가령, 석탄으로 동굴 벽에 황소의 그림을 그리며 사냥의 성공과 풍요를 기원하였고, 이 그림에 화살과 창을 던져 사냥을 연습하기도 하였다. 이집트 문명에서는 그림 자체가 문자가 되었다. 이집트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그림들(유치원생이 그린것 같은 단순한 그림들), 예를 들어 옆에서 보았을 때의 독수리, 참새, 사자, 뱀, 사람, 심장 등의 그림들을 표준화하였고 여기에 뜻과 음을 넣어서 생각을 표현하였다. 당시 흉조로 여겼던 참새 그림을 포함하는 단어들은 ‘나쁘다’는 의미를 가졌고, 심장 그림이 포함된 단어들은 ‘아름답다’를 의미했다.
오늘날 스케치 노트 쓰기는 효과적으로 자기 생각을 전달하고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한 정말로 중요한 기술로 자리 잡았다. 이제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들은 텍스트만으로 보고서를 만들지 않고 수많은 이미지가 들어 있는 ‘파워포인트’를 활용하여 과제를 보고한다. 또한 거의 모든 기업이나 연구 기관에서도 수치화되어 있는 데이터를 그림이나 그래프로 변환하는 등, 이미지 매체를 활용하여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우리가 가장 잘 아는 사례를 들자면, 프레젠테이션의 황제라고 불렸던 스티브 잡스Steven Jobs, 1955~2011는 하나의 슬라이드 안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생각을 글자가 아닌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이를 통해
서 세계인들은 스티브 잡스의 생각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파워포인트와 같은 디지털 노트 쓰기 기술을 진정으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파워포인트 디자인이나 형식을 흉내 내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나만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프레젠테이션을 위해서는 먼저 아날로그적인 스케치 노트 쓰기 기술을 마스터해야 한다.
스케치 노트 쓰기, 정말로 누구나 할 수 있다
창의적인 디자이너들은 곧잘 아이디어를 종이에 그려낸다. 그들은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를 즉시 노트에 그리고, 구체적인 특징에 대해서는 글로 적어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재미있는 사실은, 이러한 스케치 노트 쓰기 과정을 자신이 원했던 답을 찾을 때까지 수백 번, 수천 번이고 반복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만족할 만한 디자인을 창조해낸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예술 작품을 완성하는 모든 과정에서 노트에 수많은 스케치를 하고 수차례 수정한다. 이러한 스케치 노트 쓰기를 통해서 예술가들은 메시지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자신만의 아이디어와 방법들을 찾아내고, 마침내 작품을 완성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은 스케치 노트 쓰기에 대해 잘못된 선입견을 품고 있다. 그림 실력이 뛰어난 디자이너나 예술가들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스케치 노트 쓰기를 어렵게 여기고 처음부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당연히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필자인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대학생, 그리고 대학원생에 이르기까지 나는 유치원생이 그린 것 같은 수준 낮은 미술 실력을 원망하며 지내왔다. 내 마음과 머릿속에는 수많은 좋은 아이디어들이 이미지 형태로 둥둥 떠다녔지만, 그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나는 내 그림 실력이 형편없고 앞으로도 향상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 스케치 노트 쓰기란 평범한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기술이고, 그것은 그림 그리는 것을 직종으로 삼는 디자이너나 예술가들만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내가 선입견을 깨뜨리게 된 계기를 맞이했다. 우연히 인터넷을 하다 빌 게이츠가 공개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 (레스터 사본)를 보게 된 것이다. 말로만 들었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노트를 영문 번역과 해설을 통해 보면서 스케치 노트 쓰기가 얼마나 위대하고 매력적인지 알게 되었다. 레스터 사본에서 ‘유체의 운동에 대한 연구’를 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물의 흐름과 소용돌이, 파도에 대해서 깊이 있게 관찰하였고 물의 움직임을 노트에 훌륭하게 묘사하였다. 그리고 그림 밑에 유체의 운동 현상에 대한 이론과 원리를 자세하게 분석한 글을 기록하였다.여기서 끝이 아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가 발견한 유체의 운동 이론을 통해 어떻게 운동에너지를 활용한 기계를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해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스케치 노트 쓰기를 했다. 그는 반복된 스케치 노트 쓰기를 통해 자연의 운동을 더욱 정확하게 관찰, 재현했고 현상 속에 숨은 이론과 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필자는 500년 전에 한 사람이 스케치 노트 쓰기로 얼마나 아름답고 창의적으로 과학과 공학을 발전시켰는지를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유치원생 정도의 그림 실력이지만 앞으로 계속 노력해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처럼 스케치 노트 쓰기를 하리라’고 다짐했다. 스케치 노트 쓰기에 대해 수많은 공부와 연구를 한 결과, 지금은 이 책의 그림을 그릴 정도의 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다음의 세 가지를 말하게 되었다.
하나, 그림 실력과 무관하게 누구나 스케치 노트 쓰기를 할 수 있다.
둘, 기본적인 도형(네모, 동그라미, 세모, 선)만으로도 수많은 이미지를 표현해낼 수 있다.
셋, 스케치 노트 쓰기는 생각한 순서대로 노트 쓰기를 하게 해준다.
“배움이란 우리의 마음이 결코 지치지 않고, 결코 두려워하지 않으며,
결코 후회하지 않은 유일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기본 구성 요소: 생각대로 노트 쓰는 법
스케치 노트의 목적은 무엇일까? 한 가지만 말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생각한 대로 노트에 표현하는 것이다. 스케치 노트가 아름다움만을 추구한다면 커뮤니케이션 활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한 그대로 노트에 스케치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먼저 무엇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고의 기본 과정에 대해서 알아볼 필요가 있다.
인간의 기본적인 사고 과정은 간단하게 유도Trigger–아이디어Idea–연결Connecting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을 하나씩 알아보고 스케치 노트 쓰기에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해보자.
유도 단계
인간으로서 누구나 생각하면서 살아가지만, 때때로 “아무 생각 없이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친구들과 나누기도 할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인간은 누구나 생각할 능력이 있지만, 생각을 하게 만드는 특별한 유도 장치(또는 자극제)가 없다면 절대 머리를 쓰면서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고의 기본 과정 중 첫 단계인 ‘유도’에서는 재미있는 대상이나 주제, 호기심이 있는 질문, 또는 해결하고 싶은 문제들이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생각의 유도 장치들은 바로 질문 또는 키워드의 형태로 표현된다. 예를 들어 “어떻게 제품의 매출을 두 배로 만들 수 있는가(제품 매출 두 배 증가 전략)?”라는 질문/키워드를 통해 제품 매출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킬 수많은 전략을 생각하게 된다.
또 가령 “왜 유학을 가야 하는가(유학 갈 이유)?”라는 질문/키워드를 통해 유학을 가야 하는 수많은 이유들에 대해 생각하고 합리적인 답을 얻게 된다.
아이디어 단계
그다음 아이디어 단계는 유도 단계에서 던진 질문/키워드(유도 장치)에 대하여 답을 하는 과정에서 생각, 곧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다.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자인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바바라 워닉Barbara Warnick 박사는 생각하기란, 문제와 질문에 대해 탐구하고 관련된 모든 가능한 정보를 통합시켜 답에 도달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즉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얻는 과정이 생각하기이다. 아이디어 단계에서는 유도 단계에서 던진 질문/키워드에 대해 떠오른 아이디어를 글, 그림, 리스트, 그래프 등 다양한 형태로 구상하게 된다.
연결 단계
마지막 연결 단계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유기적으로 이어 의미 있는 개념으로 발전시킨다. 전 크라이슬러 CEO 리아이아코카Lee Iacocca, 1924~ 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잘 꿰지 않으면 쓸모없게 된다.”
아이디어들을 의미 있게 연결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시간적・공간적 순서대로 연결시키거나 귀납적 또는 연역적 논리에 따라 연결시킬 수 있다. 연관성 있는 것이라면 그 어떠한 아이디어라도 자유롭게 연결하여 개념을 발전시킬 수 있다. 이렇게 ‘유도–아이디어–연결’로 이어지는 기본 과정에 의해서 날마다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한 대로 스케치 노트 쓰기
그럼 어떻게 생각한 대로 노트 쓰기를 할 수 있을까? 함께 일하고 공부하는 동료들 앞에서 또는 혼자 노트를 구성할 때 어떻게 생각을 노트 위에 펼쳐나갈 수 있을까? 다음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사고의 기본 과정’의 단계마다 하나씩 대응되는 ‘스케치 노트 쓰기의 기본 구성 요소’가 있다. 자신이 생각한 대로 스케치 노트 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 구성 요소들을 알고 그것을 이용해 노트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다음 장에서부터 구체적으로 배운다).
여기서 한 가지 미리 말해둘 것이 있다. 스케치 노트 쓰기의 구성 요소인 배너, 프레임, 연결도구, 액세서리(사람, 동물, 사물)를 표현하는 데는 놀라운 그림 실력이 필요하지 않다. 어릴 때 배운‘기본 도형’이면 충분하다. 이 책의 모든 스케치 노트 쓰기는 기본 도형만을 활용하여 표현되었다.
아이작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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