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간의 KAIST 대학원 시절, 초반 2년은 교수님께 많이 혼났다. 그 이유는 내가 연구실 밖으로 정말 많이 싸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운동광인 내게 친구들이 축구하자, 농구하자, 야구하자 하면 거의 매번 Okay했고 나는 연구실을 몰래 빠져나오기일 수 였다. 운동을 잘 하지 않는 연구실 사람들에게 교수님은 운동도 하면서 연구하라고 조언하셨다. 하지만 내게는 “넌 운동 더 하면 안 돼.”라고 하셨다. 또한 난 대학원생 주제에 참여하는 모 임이 많아 금요일부터 주말 내내 연구와 상관없는 취미 생활을 마음껏 누렸다. 더욱이 여러 모임들의 대표가 되어 활동까지 하니 바쁜 일정 소화하느라 연구실 생활에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하루는 교수님이 나를 부르셨고 이렇게 말씀하셨다.“연구실에서 너의 열정을 전혀 느낄 수 없구나. 이 길이 진정 너의 길인지 고민했으면 좋겠다.”나는 교수님께 정말 진지하게 혼났고 결국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리고 박사 3년 차부터는 진정 열심히 연구하는 ‘학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다. 졸업 요건도 갖추어야 했고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연구 실적과 연구 함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말로 열정을 가지고 연구에 덤벼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선택한 방법은 성공한 학자의 연구 방식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유명한 학자들을 구글링 해서 그들이 어떻게 연구를 하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하버드 대학교의 조지 와이트사이즈 교수가 눈에 들어왔다. 그의 실험실 연구 스타일 중에서 가장 특이했던 점은 연구 프로젝트 시작과 동시에 논문을 쓰고 연구 프로젝트가 끝난 동시에 논문이 완성되는 것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실험 결과가 예상대로 나왔건 예상대로 나오지 않았건 간에 모든 결과를 의미 있는 중요한 데이터로 받아 들이고 퍼블리쉬한다는 것이다. 연구자들 중에는 원하지 않는 실험 결과가 나올 때 연구 임팩트가 떨어질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실험 결과를 무시하거나 제대로 보고하지 않고 좋은 결과만을 보고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또한 어떤 연구자들은 모든 연구 실험이 끝이 나면 유리한 데이터만을 선별하여 논문을 쓰기도 한다. 이것은 진정한 과학자의 태도가 아니다. 조지 와이트사이즈 교수는 원하지 않는 실험 결과가 나오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가설을 전면 수정하고 보완하여 더욱더 의미있는 연구 결과를 이끌어내고 퍼블리쉬한다.
나는 와이트사이즈 교수의 연구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했다. 실험을 계획할 때부터 논문을 쓰기 시작했고 노력 끝에 얻은 실험 결과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논문을 썼다. 실험이 실패하면 왜 실패했는지에 대한 논문과 보고서를 썼고 실험이 예상대로 나오면 내가 세운 가설을 더욱 신뢰하며 자신 있게 논문을 썼다.
사람들과 교수님은 놀라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 연구를 잘 못하던 내가 갑자기 성과를 쏟아내니 말이다. 예전에는 발등에 불 떨어진 학회 발표/연구실 발표를 위해 며칠 꼬박 밤을 새웠던 내가 발표 한참 전에 이미 발표 준비를 끝낸 사람이 된 것이었다. 와이트사이즈 교수처럼 나도 연구 프로젝트가 끝남과 동시에 보고서와 논문을 마무리했고 이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기분 좋게 논문을 수정해주셨다. 그 결과 삼 년이란 짧은 시간에 나는 수많 은 연구 논문을 퍼블리쉬할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미국 포닥 생활도 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내가 더 이상 실험이 잘 됐다 안 됐다 생각을 하지 않고 모든 결과를 소중하게 여기고 연구에 정진하는 마인드셋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지금까지 쓴 열여덟 편의 논문과 특허 중 80%가 실험이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아 원래의 계획이 틀어진 경우였다.
돌이켜볼 때, 박사 과정 마지막 삼 년 동안의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퍼블리쉬 라이프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다. 박사 과정의 연구 생활이 연구 프로젝트만을 위한 퍼블리쉬 라이프 버전이라면 이후 포닥 생활 그리고 그 이후 직장 생활과 작가 활동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퍼블리쉬 라이프가 업그레이드되었고 결국 내 삶의 전 분야를 위한 퍼블리쉬 라이프가 되었다.
미국행
박사를 마치자마자 동시에 우리 가족은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미시간대학교 신소재공학과에 포닥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출근 첫 주, 나는 미국 박사 과정생들의 일하는 방식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들은 아침 8시 이전에 출근을 하고 자기가 계획한 스케줄을 따라 최선을 다했고 저녁 5시 이전에 모든 일들을 마친 뒤 칼퇴근을 하는 것이었다. 만약 협력해서 일해야 하는 경우에 그들은 최대한 낮 시간을 활용해 업무를 수행했고 서로 분담해야 할 것들을 정확하게 분담해서 각자 맡은 일들을 최선을 다해 수행했다. 나는 비록 박사학위를 가진 포닥으로서 연구실에 조인해 어느 정도 나의 전문분야를 박사과정생들에게 가르쳐줘야 했지만 정작 많이 배운 쪽은 나였다.
나는 그들로부터 내가 익숙하지 못한 연구 분야에 대해 배우기도 했으며 어떻게 미리 스케줄을 짜고 낮시간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일을 진행할지에 대해서 배웠다. 또한 나는 어떻게 다른 협력 기관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회의를 할지 배웠다.
당시 연구실 이야기를 할 때 케빈이란 녀석을 빼놓을 수 없다. ‘빅뱅이론’의 하워드 조엘 왈로위츠와 같이 그도 유대인이다. 시니컬하지만 위트와 유머를 동시에 같고 있는 케빈은 모든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제 때에 끝냈다. 우선 그는 박사 삼 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교수의 지식과 거의 동급이었다. 그의 프로젝트 발표 때, 교수와 토론을 하면 학생 대 교수의 토론이 아니라 마치 교수와 교수의 토론 모습과도 같았다. 말발로 그를 이기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케빈은 연구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항상 꼼꼼히 조사한 이론의 토대 위에서 시작했다. 이미 많은 이론을 알고 아직 부족한 부분, 개선할 부분을 찾고 이것을 채우려 하니 그가 하는 연구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실험을 하면 바로 분석이 끝났고 바로 보고서를 생산해냈다. 교수도 이런 케빈을 항상 인정했고 최우선 순위로 그의 논문을 검토했다.
케빈과 나는 오후 5시까지 힘들게 일해 업무를 마쳤고 매주 화요일 목요일 지역 축구 리그에서 함께 공을 찾다. 2015년 봄 시즌에는 우리 팀이 리그 우승을 하기도 했다. 경기가 끝나면 맥주 한 잔하고 집에 돌아갔다. 이런 식으로 나는 미국의 업무 문화를 배웠다.
우리나라에서의 대학원 시절과 달리, 미국에서는 자유 시간이 많았다. 연구실 업무를 낮시간에 다 끝냈다. 그리고 오후 5시 이후부터는 연구실 그 누구도 내 자유 시간을 터치하지 않았다. 평일 저녁시간 그리고 토요일, 일요일의 수많은 자유 시간 속에 나는 어떻게 의미 있게 시간을 사용할지 고민했다.
나는 바쁘다는 이유로 그동안 내게 질문해보지 않았던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중 내 마음을 움직인 질문은“나의 열정은 어디에 있지?” “나는 진정 무엇을 좋아하는가?”였다.
이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책 읽기와 글쓰기였다. 미국에서 아내는 조그마한 문구 사업을 했다‘. 페이퍼미엘’이라는 브랜드로 수제 노트를 만들어 팔았는데 아내 덕분에 나는 원하는 대로 아내가 만든 노트를 가져다 썼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 직접 산 책, 아마존 킨들에서 산 eBook 등 나는 수많은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질문을 노트에 적고 나만의 언어로 그리고 내 관점으로 답을 해보았다. 그리고 언제든 생각나는 질문이 있으면 계속 노트에 적었고 이에 대해 생각하고 답을 적었다. 노트 한 권이 일주일 만에 채워지는 일이 내 인생에 벌어 졌다. 한 권이 두 권이 되고 두 권이 네 권이 되고 여덟 권이 되고 미국에 있는 삼 년 동안 나는 수십 권의 노트 위에서 책 읽고 생각했고 나만의 생각을 풀어나갔다.
그러던중 내게 이런 질문이 찾아왔다. “아이작, 너는 그동안 다른 사람이 쓴 책만 읽었는데 이제 네가 책을 써보면 어떨까?”사실 나는 친구들에게 언젠가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친구들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연구하기도 힘들어 하는 네가 무슨 책을 쓰냐?! 책이란 네가 정말 성공 했을 때 쓰는 거야. 아직 멀었어.”당시 나는 이 말에 설득당했다. 책은 정말로 특별한 사람들이 쓰는 것인줄 믿었다.
그런데 미국에서 내가 직접 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했을 때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을 쓸 시간도 있고 무엇보다도 꾸준하게 글을 쓸 열정이 준비되었다.
책을 쓴다는 결심 이후, 나는 무엇을 쓸지 고민해보았다. 어느 날 내가 쓴 노트들을 열어봤다. 나는 큼지막한 질문 하나가 한 페이지 전체를 차지한 것을 봤고 셀 수 없는 질문들이 한 페이지 전체를 장식한 것을 보았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한 질문에 대한 책을 써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연구실 일이 끝나면 나는 아내를 데리고 스타벅스, 스윗워터스, 로얄 에스프레소, 루즈로스터, 마이티굿커피, 지역 도서관 커피숍 등 거의 모든 카페를 돌며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썼다. 하나의 글을 쓰면 계속해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좋은 글이 쌓이기 시작했다. 개인적 측면에서의 질문, 기업적 측면에서의 질문, 사회 전체 측면에서의 질문. 이렇게 방대한 범위를 다뤘기에 나는 이삼백 권이란 수많은 책을 읽고 생각했다. 많은 공부가 되었다. 나는 특별히 사람들에게 큰 도전과 도움을 줄 수 있는 글들을 따로 모아 강의안을 만들었고 미시간 대학교 친구들과 학부생들에게 그리고 지역 한인 중고등학생들에게 세미나를 열어 강의했다.
결국 1년의 노력 끝에 나는 ‘질문 지능’이란 원고를 마무리 했다. 그리고 출판사에 ‘질문 지능’ 원고를 보내자, 일주일 만에 여섯 출판사가 출판 의사를 밝혔고 나는 나에게 가장 따뜻한 관심을 가져준 출판사를 선택 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첫 번째 책, 2018년 세종도서 (우수교양도서)로 선정, 자기계발/ 경제경영 분야 베스트셀러가 된 <질문지능>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책의 저자 곧 작가가 되는 것은 분명 기분 좋은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한 것들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사람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좋았다. 나의 세계가 더 커진 것 같은 생각에 행복했다. 그리고 나는 대담한 도전을 위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취미로 글을 써도 이렇게 책을 쓸 수 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하면 쉽고 효과적으로 부담 없이 책을 쓸 수 있을까?”
“더 나아가 나의 가치 있는 생각들, 내 삶의 의미 있는 모습들 을 사람들과 어떻게 더 쉽고 효과적으로 공유할 수 있을까?”
아이작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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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23년 10월 31일 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