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성공은 한 단계 한 단계 성장하는 데 있다.”
난 국민학교 1학년 첫 등교날 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있던 시골에서는 등교 일주일 전에 모든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나눠주었다. 처음으로 받은 교과서에 흥분해 나는 모든 책들을 훑었다. 특히 ‘쓰기’라는 교과서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쓰기’는 단어 쓰기 연습을 하는 교과서로, 단어의 아웃라인에 맞추어 색깔 펜으로 그 안에 색칠하는 책이었다. 어머니는 내가 6살 때부터 글자에 흥미를 가졌다고 말하셨다. 늘 광고 전단지를 떼어와 이 글자가 뭐고 저 글자가 뭔지 어머니께 많이 물었다. 같은 글자가 다양한 모양, 다양한 색깔을 하는 것이 어린 나에게는 참 신기했다. 나는‘쓰기 ’교과서를 받고 일주일 동안 정말 즐겁게 쓰기 책 모든 부분을 다 색칠했다. 이것이 문제가 될 줄 몰랐다.
첫 등교날 쓰기 시간. 선생님은 교과서를 책상에 올려놓으라 했다. 다른 친구들의 책은 깨끗한데 내 책만 지저분해 보이자 선생님은 내 앞에 다가오셨다. 그리고는 책을 열어 내용을 샅샅이 확인하기 시작했다.
“너 어떻게 된 거야?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어? 그리고 왜 검은펜으로 색칠했어 ? 너 참 웃기는구나 !”하며 내 등짝을 한 대 시원하게 때리셨다. 그리고 나는 손을 들고 교실 앞에 서있어야 했다. 등교 첫날, 나는 펑펑 울었다. 수많은 친구들 앞에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담임선생님(날 때리실 때 초록색 니트와 무릎까지 내려오는 흰색 치마를 입으셨고 쌍꺼풀은 짙은 눈으로 나를 매섭게 쏘아보셨다)이 참 야속하다. 내가 글자에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분이 아셨다면...“잘했구나!” 한 마디만 하셨다면... 나는 국민학교 들어간 두 번째 날부터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나는‘선생’이란 모든 존재를 거부했고 말썽 일으키는 문제 아이가 되었다.
선생님들은 문제아이며 공부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내가 수업 중 질문이라도 하면 “너, 자꾸 질문하는데, 하지마!”“방해 돼.”“수업 끊겨.”라며 질문을 못하게 했다. 내가 하소연할 수 있 는 사람은 결국 어머니뿐이었다!“엄마, 선생님이 질문하지 말래.”라며 늘 어머니께 말하곤 했다.
국민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난 내가 책을 못 읽는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책을 읽을 때면 말을 심하게 더듬거렸고 한 줄을 읽으면 바로 다음 줄을 읽는 것이 아니라 두세 줄 밑에 줄을 읽었다. 당시 내 눈에 보인 책은 전쟁통과 같이 혼란스러웠다.
선생님은 꼭 내게 일어나 책을 읽게 하였고 반 친구들은 언제나 그런 나를 보며 깔깔깔 비웃었다. 또한 당시 축구부에서 활동한 나를 대부분의 선생님과 친구들은 내가 학습능력이 떨어지고 공부도 못 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했다. 게다가 난독증을 가진 내가 얼마나 책 속의 이야기를 좋아했는지 그리고 책 이야기가 내겐 얼마나 큰 열정의 근원이었는지 등은 어머니 외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내가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잠재력에 대해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현재 자신의 모습에 대한 남들의 평가를 듣고 그 평가대로 자신의 잠재력을 결정한다. 그리고 오히려 놀라운 잠재력이 될 수 있는 자신의 약점은 보완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는 난독증 치료 목적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학교 3 학년 때까지 책을 큰 소리로 읽고 또 읽었다. (이 때의 습관으로 나는 책을 읽을 때 손가락으로 문장을 가리키면서 읽는다.) 끝이 안 보이는 훈련이었지만 책 읽을 때 비웃음을 당하고 싶지 않아 이를 악물고 읽고 또 읽었다. 그러자 차츰 혀가 부드러워지고 발음이 정확해지는 것을 느꼈다. 두세 줄 건너뛰며 읽던 버릇도 고쳐졌다. 최대의 수확은 무엇보다도 내가 책을 정말 좋아하게 된 것이었다. 이후 고등학생이 되어도 대학생이 되어도 대학원생이 되어도 미국 대학에서 포닥 생활을 해도 삼성맨이 되어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동안 정말 많은 책을 읽었고 지금도 일주일에 두 세 권 정도 꾸준히 읽고 있다. 그 덕분에 이렇게 책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이렇듯 나의 가장 큰 콤플렉스는 내 최고의 취미가 되었고 내 직업 중 하나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당신의 취약한 부분을 보면서 비웃을 수 있다. 그들은 당신에게 그것이 매우 약하니 네가 잘하는 것에나 집중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당신이 한 가지 기억했으면 하는 것은 당신의 잠재력을 결정하는 것은 당신의 생각과 당신의 태도 노력이라는 사실. 자신에게 솔직해보라. 당신의 열정이 무엇인가? 어쩌면 당신의 열정이 당신의 마음속에 가득함에도 당신에겐 그 열정을 실현할 기회와 시간이 없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열정을 붙잡고 그 열정을 좋아하고 꾸준하게 노력한다면 훗날 그것은 엄청난 잠재력을 펼치는 위대한 당신의 능력이 될 수 있다. 잠재력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당신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마인드셋>의 저자, 스탠퍼드 대학의 캐롤 드웨그 교수는 ‘성공하고 목적을 이루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단순히 우리의 능력과 지능이 아니라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지고 살아가는가에 있다.’고 말했다.
성장형 사고방식의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 능력, 지능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노력에 의해 성장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들은 한 번의 평가 또는 시험 결과로 인해 그들의 재능, 능력, 지능을 결정해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평가, 시험을 통해 그들의 현재 수준을 확인하고 어떻게 수준을 더욱 높이 끌어 올릴 수 있는지 고민한다. 성장형 사고방식의 사람들은 위기를 기회로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변화와 성장을 목표 로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끊임없이 도전한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그 결과를 통해 배워나간다. 수많은 사람들이 타고난 재능에 가치를 둘 때, 성장형 사고방식의 사람들은 노력과 도전에 더 큰 가치를 둔다.
더 이상 누구의 삶도 낭비하지 맙시다. 우리의 능력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음을 깨닫고 나면 모든 아이들이 그런 성정을 창조해주는 “아직”으로 가득찬 환경에서 자라는 것이 인간으로서 기본 권리라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 캐롤 드웨그
“예전에는 글을 많이 써보지 못했지만 매일 노력하면 곧 수준 있는 글을 쓸 거야!”
“나는 할 수 있다!”
“내가 퍼블리쉬한 것이 조금 부족해 보인다 할 지라도 괜찮아. 지금까지 계속 성장해왔잖아!”
“그 사람도 해냈다면 나라고 안될 이유가 어디 있나? 해보자! 하다 보면 실력이 반드시 성장할 거야!”
“내가 퍼블리쉬한 것을 통해 세상은 더욱더 가치 있는 공간이 될 거야!”
퍼블리쉬 라이프 스타일은 바로 성장형 사고방식을 통해 살아가는 방식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을 잘못 썼기 때문에 안 돼.” “나는 이공계 출신이라 글을 못써.”와 같은 구시대적 사고를 버려라. 당신의 능력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라. 그리고 당신이 퍼블리쉬한 그 결과를 통해 세상이 더욱더 가치 있게 될 것을 바라보라. 나는 다음과 같이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지고 기회가 있는 대로 스스로 다짐했다.
학문이나 기술을 배우고 익힌다는 뜻의 ‘공부(工夫)’라는 한자는 원래 功扶(공로 공, 도울 부)였다고 한다. 즉, 무엇인가를 열심히 도와 공을 이루어낸다는 뜻이다. 즉, 공부란 단순히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부단히 노력하고 훈련하고 자기를 단련시킴으로써 공을 성취한다는 의미다. 그 공부를 중국어로 발음하자면 ‘쿵후’가 된다. 즉, 공부의 본질은 소림사 승려처럼, 무술의 달인 이소룡과 같이 신체적 정신적 단련을 통해 끊임 없이 성장하는 데 있다.
퍼블리쉬 라이프를 통해 당신은 끊임없이 공부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아이디어와 그 결과물을 퍼블리쉬하는 과정을 통해 당신은 계속해서 보완할 점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부족한 점을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공부하게 될 것이다. 퍼블리쉬 할 때, 당신은 반드시 당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얻게 된다. 당신을 응원하는 피드백과 당신이 더욱 훌륭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오는 피드백을 통해 당신은 더욱더 공부하고 성장해나갈 것이다.
아는 것 만으론 부족하다 그것을 적용해야 한다.
의지만으론 부족하다. 그것을 해야 한다
- 브루스 리
아이작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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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작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23년 10월 31일 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