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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주의가 등장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은?

by 아이작 유
“사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자유롭기를 선택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를 누릴 운명이다.”
- 장 폴 사르트르

앞에서 인간은 본질, 즉 삶의 이유와 목적을 추구하는 존재라 말했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존재와 본질을 논할 때, 꼭 생각해 봐야 할 질문이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우선일까? 목적이라는 본질이 우선일까?”


이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처럼 보인다. 당신이 우선순위에 두는 일은 나머지 일들보다 더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존재와 본질 중 무엇이 선행하는가의 문제는 둘 중에 무엇이더 중요한가를 말해준다.


당신은 무엇이 먼저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오랫동안 본질이 존재에 앞선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모든 것은 본질이 존재하기에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데에는 나의 출신과 교육 배경이 크게 기여를 했다. 나는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나는 나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났고 그래서 내가 특별하다고 들었다. 나는

이것을 믿었다. 나는 내가 태어 나기도 전에 이미 존재했던 목적 즉, 하나님의 뜻을 위해 나의 인생을 바쳐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 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묻곤 했다.


또한 유현준 교수가 그의 책 《어디에 살 것인가》에서 언 급한 바, 마치 교도소를 연상시키는 교육 공간 속에서 나는 본질주의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축구부 기숙 생활을 했다. 그 안에서 나는 코치님이 말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열심히 훈련했다. 나는 나의 존재보다 팀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받게 되는 코치님의 체벌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축구를 그만두고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성공할 수 있는 길이 오직 공부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좋은 성적을 받겠다는 목표를 위해 나는 내가 즐기고 싶은 것들을 대부분 포기했다. 나는 괴로움을 참아내며 공부를 했다. 이는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수많은 친구들이 살았던 방식이었다. 우리에겐 우리의 존재보다 공부가 중요했다. 우리는 공부가 우리의 존재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었다.




본질을 향한 집착 그리고 폐해



영화 <매트릭스>를 정말 여러 번 보았는데 영화를 보면 볼수록 나는 주인공 네오보다 네오를 가로막는 요원 스미스에게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영화 속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목적에 충실하고자 열심히 노력해나가는 스미스의 모습 속에서 나는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요원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이유나 목적은 부정할 수가 없지. 우린 목적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니까. 목적이 우릴 창조했고 우릴 연결하고 우릴 끌어주고 인도하고 조종한다. 목적이 우릴 정의하고 결속시킨다. 우린 너(네오) 때문에 존재해. 네가 우리에게 뺏으려던 걸 우리가 뺏기 위해!”



이름 없이 성으로만 불리는 요원 스미스는 매트릭스에서 발생하는 각종 버그를 삭제하거나 구원자, 각성자들의 존재를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었다. 비유하자면 V3 백신 프로그램과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는 네오와 싸우면 싸울수록 자신의 본질에 더욱더 집착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각성해서 네오는 물론 매트릭스 세계 전체의 모든 것들을 소유하고, 컨트롤하고, 파괴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는 매트릭스의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코드를 덧입혔다. 그리고 그는 매트릭스 속에 자신과 동일한 본질을 가진 획일화된 존재만으로 가득 차게 만들었다. 매트릭스는 온통 스미스화된 전체주의적 세상으로 변질되었다.


나는 요원 스미스가 매트릭스를 파괴하는 과정과 모습이 우리 인류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 인간이 본질에 집착할 때 세상은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변질되곤 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가까운 곳에서 경험한 사례와 역사적인 사례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먼저 카이스트 대학원 시절 내가 겪은 이야기가 있다. 2011년 카이스트의 모든 사람들은 매우 우울한 시기를 보냈다. 매달 연이어 사람들이 스스로 삶을 끊었다. 그 안에는 내가 평소 좋아했던 교수님이 포함되어 있어 나는 감정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당시 임기 중인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은 글로벌 일류 대학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향해 당시 파격적인 개혁을 실행했다. 대표적으로 100% 영어 강의시행, 징벌적 수업료, 테뉴어심사제도 강화 정책이 있었다. 이중에서 학생들에게 악명 높았던 정책은 바로 징벌적 수업료 제도였다. 만약 학점이 3.0 이하인 학생들에게 0.01 점당 6만 원씩 2.0 미만일 경우 수업료를 최대 600만 원까지 부과했다. 또한 상대평가제도를 고려할 경우 본인의 능력과 관계없이 전체 학생의 30%는 무조건 수업료를 내야 했다. 당시 학부생이었고 나와 연애 중이었던 내 아내의 경우 전액 장학금을 받다가 200만 원 정도의 수업료를 내게 되어 고생한 적이 있었다. 지옥 같은 무한 경쟁 체제 속 학생들은 반발 했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은 글로벌 일류 대학 만들기라는 위대한 목표에 묻혀 버렸다. 중고등학생 시절 반에서 줄곧 일등을 해왔던 학생들은 본인의 잠재성을 인정받지 못했고 커다란 실패감을 맛보게되었다. 그들 중 일부는 안타깝게도 자살을 선택했다.


역사적으로 가장 심각한 본질주의의 폐해는 바로 전쟁이다. 우리 인간은 본질에 집착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데 그 중에 가장 파괴적인 형태가 바로 전쟁이었다. 전쟁의 본질은 패권 확보(그리스-페르시아 전쟁, 포에니 전쟁, 청일전쟁), 세계 정복(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전쟁, 칭기즈칸의 정복 전쟁), 왕위계승권(백년전쟁), 종교(30년 전쟁), 복합 요인(1차 세계 대전, 2차 세계대전) 등 다양했다. 그동안 일어난 전쟁 중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전쟁은 바로 1차, 2차 세계대전이었다.



1차 세계 대전 때에는 참호, 기관총, 독가스, 탱크, 곡사포, 유보트, 전투기, 폭격기와 같은 신무기, 신전술의 등장으로 정말로 참혹한 숫자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전 세계 인구 4% 정도에 해당하는 6,500만 명이 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대략 900만 명이 사망했고, 2,300만 명이 부상을 당했다. 이후 21년 만에 다시 일어난 2차 세계 대전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최악이자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 평가되는데, 군인과 민간인 포함하여 7,300만 명이 사망했다. 세계 인구 100명 중 4명의 사람이 전쟁 기간 중 죽은 것이었다.



탈본질과 실존주의의 등장


20세기 초 벌어진 1차, 2차 세계 대전은 유럽과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에 참혹한 상처를 만들었다. 만약 당신이 그 시절의 지성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조직적으로 살인 당하고, 학살당하는 일을 목격한 후 당신은 어떤 생각을 했을 것 같은가? 당시의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성을 잃은 집단 앞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또한 그들은 올바른 이성을 가지고 위대한 행동을 할 것이라 믿었던 인간이 광기의 집단을 창조하고 그것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 그 자체가 얼마나 비이성적이고 모순적인 존재인지를 깨달았다. 종교적, 도덕적 가치가 인간의 사회의 지켜줄 것이란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인간이 바른 이성을 가지고 사회를 긍정적으로 만들 것이란 믿음은 무너졌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어떠한 권위와 집단주의에 기대지 않은 자들, 어떠한 본질주의를 추종하지 않는 자들, 개인의 자유와 개인의 책임만을 강조하는 자들이 등장했다. 사람들은 그들을 실존주의자라고 불러주었다.



아이작 유

<질문의 기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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