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을 보내며

두 번째 담임을 마치며

by songofsongs

2022년 2월 봄이 다가오던 오는 어느 날,

새로운 학교에 출근이 결정되며, 새로운 담임을 맡을 아이들을 만난다는 사실이 정해졌다.

만남은 예상하지 못하게 찾아오듯, 그때의 떨림과 두려움이 아직도 생생하다.


새로 만난 학생들과 교사와 학생이 아닌, 인간과 인간으로 만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겨울방학식을 마치고 집에 와서 돌아보니, 이건 어디까지나 내 욕심이구나를 절감하는 한 해를 보냈다.


1) 코로나 상황은 대한민국의 사회의 기초단위라고 볼 수 있는 가정의 기능 해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질병이었다. 당연한 가치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눈앞의 사람을 존중하는 것,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것, 주변 사람과 협동하는 것 등 어느 것 하나 학생들에게는 쉬운 것이 없었다.


이미 사회성 학원이 일부 지역에 생겨난다고 한다. 그 효용성은 모르겠지만 그 상황은 200% 공감이 간다.


2) 교사와 학생 사이에도 아름다운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에도 아름다운 거리가 당연히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교사에게만 치중되어 있음을 새삼 느꼈다.


매주 일요일 밤 잠을 자다가 월요일에 예상하지 못한 상황 발생하여 당황하는 꿈을 꾸며 깨는 일을 수없이 반복했다.


코로나 첫 해, 담임을 하며 느낀 후회와 아쉬움을 극복하고 싶은 마음에 더 고민했다. 그 당시 겪었던 시행착오를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 고민은 어디까지나 교사의 입장에서 학생을 보는 관점에서의 고민이었다. 그 고민을 개별 학생의 부모님은 감사로, 부족으로, 깐깐함으로 느꼈다.


3) 20여 년 전 초중고를 다닐 때, 학교에서 전화가 온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내가 인지하지 못한 잘못이 다른 학생을 또는 선생님에게 피해를 주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항상 주입(?)해주신 가치(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하고 싶은 것을 다해보렴)가 과잉 실천되었을 수도 있지 않을지를 걱정했다. 그리고 어김없이 학교에서 전화 연락이 온날은 부모님에게 크고 작은 행동개선의 필요성을 훈육받는 시간을 가지고는 했다.


4) 학생의 학교 생활의 문제행동을 생활지도하는 과정에서 동료선생님들(해당학생을 2년간 수업하고 관찰하신)과 협의를 했다. 그 결과로 학부모님께 공유를 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공유하는 내용을 여러 차례 다양한 선생님이 검토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전달했다. 그런데 돌아온 학부모님의 반응은 '선생님이 학기 초라 우리 아이를 몰라서 그렇다'는 대답이었다. 사회성 학원은 학생에게만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5) 사피엔스를 활용한 주제선택 수업을 진행했다. 이색적인 수업이었다. 학생들이 사피엔스의 한 개 장을 읽고, 지금까지 학습한 역사교과내용과 비교분석하고,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인 글로 적어보는 수업이었다. 결과물의 질보다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관점에서 인류 역사를 다루는 책들이 존재함을 소개하고,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해보는 경험을 하도록 도움을 주었다는 부분에서 만족한다.


6)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때보다는 훨씬 나은 것을 학생들과 꿈꾸고 성장하도록 돕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 역시도 교사입장에서 학생을 바라보며 한 고민이었다. 학생들에게 내 고민을 공유(설명)하고 한다고는 했지만, 공감을 얻지는 못한 것 같다. 학부모님께도...


ps. 아직 3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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