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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헵시바 Oct 17. 2023

감정을 글로 풀어내기

마음을 예술로 승화시킬 때 좋은 점

 나는 어릴 적부터 스트레스를 잘 해소하지 못했다. 매우 둔한 편이어서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기분이 왜 나빴는지 깨닫는다. 그러다 보니 스트레스를 제때 풀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 어떻게 해소해야 될지도 몰랐다. 때가 되면 엉엉 울었고, 때가 되면 다시 괜찮아졌다.

 서른이 되고 몇 년 간 ‘나’를 알아가면서 가장 좋았던 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게 되면서 감정적 리프레쉬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꽃이나 시트러스 계열의 향을 맡는다든지, 내 눈동자를 본다든지-난 내 얼굴, 특히 눈을 참 좋아한다!-, 전시회나 박물관을 간다든지. 마음이 맞는 사람과 나누는 수다도 좋은 해소법이다. 

 그러나 스스로 소화하기 어려운 감정들이 있다. 그런 감정은 꼭 고양이가 엉클어트린 실타래 같다. 실을 아무렇게나 방치한 내 탓인지, 고양이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누굴 탓하는 것이 무에 중요하랴. 어찌 됐든 엉킨 실을 풀어야 한다. 값비싼 실이라구. 걷고 또 걸으면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 실마리가 보인다. 감정의 출처를 찾는 행위란 참 중요하다.


 오래도록 씹어야 하고 소화가 더딘 감정이 누구에게나 있다. 사람에게 상처받았다면 상대방의 진심 어린 사과가 유일한 해소법이겠지만 딱히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미묘한 감정들이 있다. 이런 감정은 해소하기도 어렵다. 불분명한 상태가 반드시 명확해질 필요는 없지만 감정의 특성상 오래도록 묵혀두다 보면 제 가치보다 과잉되고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 문제다.

 최근에 나는 이러한 불편한 감정-대체로 친한 사람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감정-이 생길 때마다 글로 풀어내고 있다. 처음에는 맥락도 없고, 논리도 없는 문장의 나열 덩어리다. 그 덩어리들을 오래도록 되새김질하다 보면 글을 어떻게 풀어내야 할지 길이 보인다. 

 예술은 정답이 없다. 그래서 애매한 감정을 풀어내기에 적절한 도구가 된다. 출처가 불분명한 감정을 써 내려가다 덩어리진 글들이 시간이 지나면 한 편의 에세이가 되는 것처럼. 수많은 글과 그림, 음악이 그런 애매한 것들로부터 탄생되었다. 그러니 해결할 수 없는, 정답을 내릴 수 없다며 우울해하지 말자. 그것을 예술로 풀어낼 때 객관식 문제의 정해진 정답처럼 정확하진 않지만 주관식 답 정도는 되어 줄 테니까.




그림. 헵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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