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헵시바 Dec 10. 2022

영화 속 음식 장면과 관계성

식탁 문화를 꿈꾸며….

 나는 주로 외화를 본다. 한국 영화는 진짜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거나 주변에 있을 법한 이야기라 정서적인 에너지를 많이 쓰기 때문에 잘 보지 못한다. 여운이 오래 남기도 하고,  욕이 많이 나와서 일부러 잘 보지 않는다. 반면, 외화는 자막을 통해 관람하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한 단계 걸러지니 좀 편하게 볼 수 있다. 또 새로운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특히 식탁에 옹기종기 모여 음식을 먹으며 대화하는 장면을 가장 좋아하는데, 제일 일상적인 배경에서 이야기가 전개되고, 사건이 발생하는 것이 재미있다. 음식이나 대화 방식은 동양의 것과 다르더라도, 마음이 상하고, 다투고, 화해하고, 성장하는 과정이 결국 같은 인간임을 깨닫게 돼서 안심이 된다.

드라마 《길모어 걸스》中,  요리 극혐 엄마 로렐라이와 딸 로리, 그리고 친절하지 않은 다이너 사장 루크.

 또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쉽지 않은 사건을 일어날 법한 일로 바꾸는 데, 음식만큼 요긴한 영화적 도구도 없다. 뜬금없이 혁명을 도모하는 대화는 그 자체로 부자연스러울 수 있지만, 식사나 술자리에서 이런 대화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있을 법한 전개 방식이 된다. 우리 모두 식탁 위 저항가가 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지 않나. 음식이 나오는 장면의 매력은 차고 넘친다. 주인공들의 일상을 볼 수 있으면서, 앞으로 일어날 사건의 전조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화《펄프 픽션》中, 욜란다와 링고. 평범한 외식인 것 같아 보이지만, 강도 짓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 중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에서 음식이 나오는 장면을 가장 좋아한다.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의 관계를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일상인 ‘식사’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좋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닫고 왜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냥 음식을 좋아해서, 음식 장면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영화에서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을 좋아하는데, 나는 주로 식탁 위 대화나, 다이너에서 셰이크를 먹는 주인공을 기억한다. 이 정도면 좀 특이 취향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참을 생각하다 결론이 났다. 나 자신이 주인공의 삶을 마음 깊이 부러워하고 있었다. 가장 일상적인 삶인 ‘식사’ 자리에서 끊임없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그 삶 말이다.

 나는 요리를 좋아해서 집에서 주로 끼니를 해결하는 데, 애쓰고 수고하여 한 끼를 잘 차려먹는다. 처음에는 스스로 소중해지는 기분이 들어서 요리를 했고, 익숙해지고는 외식하러 나가는 시간보다 요리하는 시간이 더 빨라서 해 먹는다. 하지만 혼자서 요리하는 게 이제는 지친다. 감자를 깎고, 썰고, 볶는 동안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후다닥 요리를 마치고 급하게 밥을 먹으면, 패스트푸드 못지않은 식사가 된다. 친구는 고기를 볶고, 나는 양파를 썰면서 대화를 하고 싶다. 작지만 단골이 많은 식당에서 사람들과 스몰토크를 하고 싶다. 식사를 하며 가십을 나누고 싶다.

영화 《프랭키 앤 쟈니》中,  휴식 시간의 동료들과 프랭키. 새로 들어온 신입 요리사를 뒷담화 하던 중, 사장이 들어온다.

 예전에 푸드 칼럼니스트이자 비평가인 황교익 씨가 ‘혼밥’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 적이 있다. 말의 요지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소통하기 위해 모든 신경을 발달시켜 고도의 문명을 만들었는데, 혼자서 밥을 먹겠다는 말은 소통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이니 혼밥 권장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거친 단어 선택이 논란을 야기하긴 했으나, 나는 그의 취지에 동의했다. 혼밥만 수년을 하다 보니 홀로 식사하는 것이 얼마나 소비 중심적이고, 고독감만 남는 비효율적인 문화인지 실감하게 됐다. 

드라마 《오만과 편견》(1996) 中,  아침 식사의 중요성이 강조된 19세기답게 아침 식사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요리를 좋아하는 친구가 생기면 좋겠다. 외식과 포장 문화도 좋지만, 젊은 세대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문화가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참 아쉽다. 호스트가 요리도, 식사도 혼자 다 해내는 문화가 아니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문화 말이다. 친구네 집에서 김밥을 만들어 먹어도 좋고, 우리 집에서 매시 포테이토와 스테이크를 만들어 먹는 것도 좋다. 와인은 편의점 와인으로 충분하다. 교회에서 그런 친구가 생긴다면 교회의 주방을 이용해 주일 저녁마다 요리하고 식사를 하며 담소도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언제가 돼야 그런 일이 일어날까? 내 삶에 영화 속 식사 장면 같은 일이 넘쳐나기를 기도할 뿐이다.

이전 04화 감정을 글로 풀어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