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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헵시바 Dec 10. 2022

올 겨울에는 귀고리

패션으로 하는 색깔 놀이


 최근에 귀고리 만드는 취미가 생겼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환절기 옷만으로는 견딜 수 없어서 겨울옷을 꺼내 보았더니, 유독 겨울옷 색깔이 칙칙하다는 걸 발견한 것이 계기였다. 짙은 회색 니트, 검은색 코트, 검은색 골덴 바지, 밤색 울 양말…. 크리스마스 때 입을 빨간색 니트를 제외하면, 모두 짙은 색 옷이었다. 옷을 일렬로 걸어두고 보니 마음이 착잡했다. 이대로 겨울을 지낸다면, 겨우내 칙칙하게 살 것만 같았다. 원래는 롱패딩 하나로 버틸 작정이었는데, 상반기에 나의 감정이나 자아를 패션이나 메이크업으로 표현해 보는 재미를 알게 된 후로, 겨울에도 튀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났던 것 같다. 지난 시즌에 옷과 화장품에 돈을 많이 썼기 때문에 겨울에는 옷을 사지 않고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고, 결국 액세서리로 생기를 부여하자는 결론이 났다.

정원의 꽃들에서 영감을 얻었다. 고동색 같은 갈색 계열이나 회색 옷에 특히 잘 어울린다.

 나는 직업상 손을 많이 사용해서 팔찌나 반지는 가급적 하지 않고, 목걸이는 했을 때의 매력을 잘 느끼지 못해서 굳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액세서리 중 귀고리를 자연스레 제일 즐겨하게 된다. 귀를 뚫지는 않았지만 논 피어싱 귀고리를 했을 때, 귀밑에서 살랑이는 촉감이 좋고, 달랑 거리는 소리도 즐겁다. 또 내가 하는 일에 방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중에서 마음에 꼭 맞는 논 피어싱 귀고리를 만나기란 정말 어렵다. 그래서 이참에 직접 귀고리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칙칙한 겨울옷 위에서 경쾌한 색이 얹어진다면, 또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색의 조합이라면…, 생각만 해도 즐겁다!

블랙 미니 드레스나 여리여리한 느낌의 옷을 입을 때 어울릴 만한 귀고리를 제작해 보았다.
파란색은 슬픔, 활기, 차분, 두려움, 깨끗, 우아 등 모든 종류의 분위기가 가능하다. 디자인은 파도에서 영감을 얻었다.

 옷을 입을 때 실루엣 다음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색깔이다. 실루엣은 몸의 체형이나 골격에 따라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 제한적인데 반해, 색깔은 어떤 색이든 모두 시도해 볼 수 있다. 개개인마다 가장 어울리는 색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울리지 않는 색은 하의나 벨트, 액세서리 등으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 몸에 다양한 팔레트가 입혀지는 것을, 내 몸에 얹어진 색을 통해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에게 입혀진 색을 통해서 영감을 얻는 일도 좋아한다. 색을 통하여 일상에서 아주 쉽게, 사람들과 무의적인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가 없는 흐린 날에는 쨍한 오렌지색이나 싱그러운 초록색 옷이 입고 싶어 진다. ‘입’은 없지만 ‘입혀진’ 옷은 색을 통해 말하고 있다. 

 ‘오늘 날씨 너무 좋죠?’

 덕분에 흐린 날에도 쾌청한 날의 어떤 것처럼 기운이 솟아난다.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 '프렌즈'의 주인공들을 색깔로 표현하여 제작한 귀고리. 잘 다려진 흰 면 셔츠와 잘 어울린다. 색깔이 많아서 손이 잘 가는 아이템.
진짜 공작 깃털과 흑색 자개로 만든 귀고리. 분위기 있는 저녁 식사에 착용한다.

 내게 있는 겨울옷들에 어떤 색의 귀고리를 얹으면 좋을지 상상해 봤다. 짙은 회색 니트에는 같은 회색 계열인 실버 귀고리를 하면 깨끗해 보이고 자연스러운 색 조합일 것이다. 하지만 어딘가 좀 심심하다. 추워 보이기도 하고. 만약 따뜻한 크림색이 감도는 진주에 녹색 계열의 옥이나 터키석이 어우러진다면 따뜻해 보이면서도 회색 니트에 산뜻한 맛을 줄 것이다. 또 크리스마스 시즌에 늘 입는 빨간색 니트에 골드가 얹어진다면? 벌써부터 귓가에 샴페인 터뜨리는 소리가 들린다. 포토 존 앞에 사람들이 셀카를 찍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나는 귀고리 부자재들을 책상 위에 촤르르 펼쳐 보았다. 아직 귀고리가 아닌 미완성의 재료들이 마구 섞여 있다. 파란 구슬, 노란 구슬, 하얀 옥구슬, 고풍스런 색감의 네모 비즈, 알록달록 색을 입힌 자개…. 어울릴만한 색들을 요리조리 조합해 보았다. 머릿속에서 중구난방 가지각색의 색깔들이 제 짝을 찾으려 난리다.     


‘야, 파란 구슬! 넌 나 같은 하얀 옥구슬과 어울려!’

‘미안, 하얀 옥구슬. 이번에는 하늘색 구슬이랑 놀겠어...’

 구석에서 대화를 지켜보던 까만 벨벳 원피스가 하얀 옥구슬에게 다가왔다.

‘이번에 나랑 같이 파티 갈…래?’     


 귀고리를 만들다, 나도 몰래 풉, 하고 웃음이 터졌다. 한 번에 모아놓으면 오합지졸 꾸러기들 같은데, 제 짝을 맞춰 주니 금세 로맨틱한 단편 드라마가 탄생한다. 귀고리를 만들고 있을 뿐인데 집에 걸어놓은 칙칙한 겨울옷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아마 당분간 이 드라마를 보느라 잠을 못 잘 것 같다.


    


사진. 헵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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