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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Dec 10. 2020

독서 모임에선 무슨 이야기를 하나요

혼자 읽어도 되는 책을 함께 읽기

같이 모여서 책 이야기해요


블로그 친구인 떡잎님의 sns에서 북클럽 회원을 모집한다는 글을 본 건 지난 4월의 일이었다. 그동안 몇 차례 독서 모임에 나가볼까 고민했지만 결국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미루기 일쑤였다. 독서 모임에 나가 새로운 사람 만날 일을 생각하면 잠시 설레다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너무 번거롭고 귀찮은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던 와중에 친구가 독서 모임의 호스트를 자처했고 '온라인' 이란 말이 더해지자 처음으로 높디높은 진입장벽이 넘어볼 만하게 느껴졌다. 마침 코로나19로 인해 바깥 외출도 줄고 있던 때라 온라인 북클럽을 시작하기엔 더없이 좋은 타이밍이기도 했다. 안 그래도 읽은 책 리스트는 늘어가는데 짤막한 감상 한 줄도 안 적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아카이빙 한다는 기분으로 참여하면 되지 않을까 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고 그러자 더 이상 독서모임을 미룰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다.


쭈뼛 거리며 입장한 오픈 채팅방은 때론 요란스럽게 알림이 울리기도 했으나 대체로 잠잠한 편이었고 조용한 와중에 몇몇 회원이 마치 방명록을 쓰듯 자신의 생각을 남기곤 했다. 짧게는 말풍선 하나, 길게는 5개 콤보 정도. 책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아, 좋다...' 같은 감탄사를 읊조릴 때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잠깐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여닫고 거실을 서성인 뒤 방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이제는 이 좋은 문장을 나눌 곳이 생겼으니 똑똑똑- 하고 부지런히 오픈 채팅창의 문을 두드렸다. 대화방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었고 그중 친절한 몇몇은 적극적인 리액션을 보여주기도 했으며 자신의 감상을 더해주는 단골 멤버도 있었다. 처음에는 왁자지껄하게 끊임없이 대화가 오고 가는 채팅방을 이상적으로 그렸으나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즉각적으로 대답을 하기보단 시간을 두고 천천히 대화를 이어나가는, 느슨하고 은은한 채팅방의 분위기가 되려 편안하게 느껴졌다.


각자 좋아하는 책을 영업하고 떠들던 우리가 처음으로 한 권의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오프라인 모임을 통해서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친구는 갑작스레 오프라인 모임 공지글을 올렸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참가 의사를 밝혔다. 온라인과 달리 오프라인의 분위기는 또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가장 먼저 일었고 얼마 전 <다동력>이란, 그다지 추천하진 않지만 몇몇 구절이 와 닿았던 책 이야기를 하며 쉴 새 없이 말을 내뱉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흥미진진하게 친구의 이야기를 듣다가 '뭐야.. 그냥 그랬다고 하기엔 너무 뼈 때린 책 아니고?!?'라는 생각을 잠시 했지만 이후에 N잡러, UE의 주최자 이로 님, 언리미티드 에디션, 이글루스, 브런치까지 주제가 뻗어가며 우리의 대화는 신나게 삼천포로 빠졌다. (책) 수다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선정 도서였던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이미 읽어서 마음이 편한 탓도 있었지만 왠지 나가서 친구의 감상만 듣고 와도 재밌을 것 같았다.


오프라인 모임에는 온라인 북클럽 멤버도 있었고 sns 글을 보고 참가한 친구의 지인들도 있어서 예상 이상으로 넓은 연령대와 다양한 배경을 가진 분들과 함께 하게 되었다. 오픈 채팅방이 하고 싶은 말을 140자로 요약해야 하는 트위터는 아니지만 짤막한 감상이 아니라 책에 대한 깊숙한 내용까지 다루기엔 적합하지 않은 툴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었고 종종 두 명이서 불이 붙어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다른 14명(오픈 채팅방의 인원은 총 16명이다.)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는 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2시간 동안 8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면 어떨까? 주말 오전에 일부러 시간을 내 한 공간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본다는 건 나는 이 책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고 당신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을 의미했다. 그렇게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오히려 친구들과는 잘하지 않았던 종류의 이야기를 술술 꺼내게 되었다. 채팅방에선 조용히 침묵으로 일관하던 사람들도 책 이야기를, 그리고 자신의 경험담을 차분히 이어나갔다. 오픈 채팅방에선 들을 수 없었던 종류의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같은 구절을 읽고도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 신기했고 다른 문장을 읽고도 비슷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사람에겐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한 권의 책을 읽었을 뿐이지만 8명의 감상을 듣고 나니 8권의 책을 읽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는 모두가 처음 맞닥뜨린 코로나 시대에 같이 진입한 이들이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어수선하게 넘나들며 함께 쩔쩔매본 사이다. -경향신문 <더 많이 보는 눈>, 이슬아

11월에는 줌으로 독서모임을 했다. 한 달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모임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상향 조정되었고 오프라인이냐 온라인이냐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는데 결국 줌 모임으로 결론이 났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본 사람들이 화면 위로 등장하지 않을까 했는데 오산이었다. 새로운 얼굴들이 화면 위로 출현해서 놀랍고도 반가웠으며 움직이는 화면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눈을 맞추며 모두가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각자의 이야기를 했다. 첫 모임보다 넉넉하게 2시간 30분을 떠들다가 "안녕~ 안녕!" 몇 번이나 인사를 하고 줌 회의실을 나왔다. 11월의 선정 도서는 이슬아 작가의 <부지런한 사랑>이었는데 얼마 안 있어 작가의 sns에는 위와 같은 글이 올라왔다.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에선 말이 엉키기 쉬워 화면 속의 상대가 이야기를 마친 뒤 2초 정도 있다가 끼어들어야 한다는 점, 눈앞에 없으니 조금 더 열심히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는 점, 줌 모임은 인터넷 속도가 안정적인 방에서 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지만 북클럽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호스트인 친구가 쩔쩔매는 모습은 왠지 앞으로도 보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서 모임 후에 인스타 스토리로 후기 비슷한 사진을 업데이트했더니 오랜 벗이자 대학 동창인 친구가 말을 걸어왔다. 독서 모임 가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거냐고 진지하게 독서 '토론' 같은 것을 하는 것인지, 막 돌아가면서 발표도 시키고 그러는 건지 궁금한 게 가득한 친구의 메시지를 받고 나는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리고 나선 아니라고, 그렇게 딱딱한 분위기는 아니고 자유롭게 생각을 나누는 모임이라고 다 같이 모여 좋아하는 책에 대해 그냥 이야기한다고, 그런데 그러다가 조금 진지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그냥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대답했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자주 일상을 나누는 사이였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친구는 "흠 그렇구나."라고 짧은 대답을 이었다. 얼마 전에 전에 줌 모임에 참여해서 그런지 핸드폰 너머로 자판을 치는 친구의 표정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드라마나 연예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큼 좋아하는 책에 관하여 수다를 떠는 건 신나는 일이다. 그런 시간들은 때로는 우리를 예상치 못한 곳으로 데려가기도 하고 가지고 있던 생각의 경계를 무참히 허물어뜨리기도 한다. 대화라는 게, 그리고 이야기라는 게 늘 그렇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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