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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Oct 16. 2020

나는 완벽하지 않은 비건이 되기로 했다

그날은 친구의 생일날이었다. 우리는 이태원에 위치한 한 비건 식당을 찾았고 그곳은 서울에 몇 안 되는 이름난 비건 식당이었기에 평일 저녁 시간에도 가게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플랜트'라는 가게 이름에 걸맞게 식당 내부에는 몬스테라를 비롯해 행잉 플랜트가 주렁주렁 걸려있어 아늑하고도 싱그러운 분위기를 품고 있는 곳이었다. 비건 식당엔 도대체 어떤 식사 메뉴가 있는지, 그중에 가장 인기 있는 건 어떤 메뉴인지를 미리 검색해봤기에 메뉴판을 훑는 내 모습에선 여유로움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가 주문한 건 플랜트의 대표 메뉴인 렌틸 베지 보울과 플랜트 버거였다. 먼저 서빙된 음료를 몇 모금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곧 베지 보울과 버거가 테이블 위로 옮겨졌고 우리는 난생처음 맛보는 콩고기와 모든 사람들이 극찬하던 렌틸 베지 보울에 설레는 마음으로 포크를 가져다 댔다. 처음 한두 입을 맛볼 때만 해도 포크와 나이프는 부지런히 접시를 오갔다. "으음..~"이라고 약간은 애매모호한 콧소리를 내뱉으며 '새로운 맛'이라고 첫인상을 표현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먹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긴커녕 점점 속도가 느려졌다. 결국 우리는 두 개의 메뉴를 다 먹지도 못하고 남겼고 친구는 그날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속마음을 내비쳤다. "야, 나 아무래도 비건은 못 할거 같아."


애초에 비건 식당에 가자고 한 건 나의 제안이었다. 당시 몇몇 글과 인터뷰를 통해 최근에는 단지 건강을 위해 채식하는 사람들 뿐만 아니라 환경적, 동물권적 측면에서 비건을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글이었다. 친구에게 최근 이런 기사를 흥미롭게 봤다며 비건 이야기를 몇 차례 흘린 참이었고 나의 새로운 관심사에 흥미를 보이던 친구는 결국 본인의 생일날 비건 식당에 호기롭게 발을 들이게 된 것이었다. 리뷰에서 봤던 칭찬일색의 글들을 떠올리며 우리는 대중과는 다른 입맛을 가진 걸까 라는 의문이 생길 뿐이었다.



이토록 심오한 비건의 세계 ©ClosetoVegan

먹는 것에 진심인 친구를 통해 채식 메뉴 한 가지를 알게 되고 그것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 이후 채식에 대한 심리적 장벽이 다소 낮아진 상태였는데 이토록 처절한 패배를 맛보고 나니 그야말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쉬울 리 없지. 비건이 되기로 결심하고 마치 변신을 하듯 하루아침에 비건으로 거듭나는 유니콘 같은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건 단지 소수에 불과했다. 지금은 모범 비건으로 알려진 사람들조차 처음에는 고기의 유혹을 뿌리치기 얼마나 힘들었는지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사연이 알고 보면 여기저기 넘쳐났다. 뿐만 아니라 집단 문화가 발달한 한국 사회에서 비건을 실천하기란 얼마나 힘든지 구체적인 사례를 듣다 보면 이쪽과 저쪽의 거리는 얼마나 먼지, 게다가 그 사이엔 얼마나 커다란 장벽이 서 있는지를 현실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불완전한' 채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돼지고기, 소고기를 섭취하지 않겠다고 갑자기 선언하는 게 아니라 그 양을 '줄이고' 우유 대신 '가능하면' 대체품인 아몬드 우유나 두유를 마시는 삶. 하루는 좋아하는 팟캐스트에서 비건 이야기를 듣고 또다시 의지가 불타올라 거창하게 목표를 세웠으나 며칠이 지나 안 되겠다 싶어 급히 제목을 수정했다. <일주일에 하루는 고기 안 먹기>에서 <월요일은 야채와 채소를 먹는 날>로. 단어 한두 개에 따라 뉘앙스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일주일에 몇 번씩 먹던 고기를 갑자기 하루 '못' 먹는다는 건 청개구리 습성을 가진 나에겐 너무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는데 반면 일주일 중 하루는 야채/채소 먹는 날이라고 제목을 정정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얼마 전에는 스타벅스에 갔다가 처음으로 두유가 들어간 라떼를 시켜봤다. 두유가 들어갔으니 더 고소할 것 같았는데 생각과는 달리 묘하게 탄 맛이 나는 커피였다. 처음 도전해보는 메뉴였으니 사이즈를 그란데가 아니라 톨로 시킬 걸 이라고 뒤늦게 후회했다. 카페라떼에 우유 대신 두유를 넣는 건 앞으로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도 작고 굉장하지 않은 도전을 해나갈 생각이다. 종종 죄책감을 느끼고 드물게 실천을 하면서 말이다. 1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10명의 불완전한 비건들이 낫다고들 이야기한다. 이번 생애 완벽한 비건은 못 할지언정 비건지향주의자쯤은 돼보자고, 은은한 다짐을 해본다.




Photo by Monika Grabkowsk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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