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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Oct 08. 2020

앞으로도 영화는 영화관에 가서 보고싶다

OTT시대에 영화관의 의미

OTT시대 혹은 코로나 시대에 영화관을 찾아야 할 이유에 대해 생각해본다. OTT 서비스는 이미 대중화되었고 몸집도 커질 만큼 커져서 넷플릭스에서 제작한 영화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되거나 수상 받는 일이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OTT 서비스는 매년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지만 코로나로 인해 그 속도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이제는 공중파 방송만큼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를 보는 게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시청자와의 간격 또한 좁혀졌다. 무엇보다 'Stay Home Stay Safe' 하려면 달리 방도가 없기도 했고.


상영시간표를 검색하여 예매하고 영화 시간에 맞춰 극장에 도착한 뒤 5분 정도 일찍 예매한 좌석에 앉아 오늘 볼 영화에 대한 기대를 입 밖으로 꺼내다가 스르륵 조명이 꺼지고 기다리던 영화가 시작되는, 일련의 과정을 좋아한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리모컨 버튼을 누르는 것에 비하면 무척 번거로운 과정이다. 게다가 가장 친숙한 사람이 옆에 앉아있는 집과 달리 영화관에선 이름 모를 타인들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한자리에 모여 함께 영화를 관람한다. 덕분에 집이라면 벌써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맥주를 가지러 간다거나 핸드폰을 만지작 거렸을 텐데 영화관에선 방해금지 모드로 설정을 해놓고 약 2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스크린을 응시한다. 커다란 화면, 깜깜한 조명, 가끔 움찔할 정도로 압도적인 사운드에 정신을 홀딱 빼앗겨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까지 그렇게 우리는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된다. 내가 영화관을 사랑하는 이유다.


얼마 전엔 재개봉한 영화 <프란시스 하>를 대한극장까지 가서 보고 왔다. 몇 달 전에 OTT 서비스를 통해 이미 본 영화였지만 재개봉 소식에 기어이 영화관을 찾았다. 집에서 봤던 것과 마찬가지로 커다란 스크린에서 만난 프란시스는 꿈과 열정으로 가득 찬 이십 대였고 때론 '정신 차려.. 그건 아니지'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들었지만, 여전히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녀가 흑백으로 담긴 뉴욕 한복판을 바쁘게 뛰어다닐 땐 가본 적도 없는 뉴욕 시내에 가 있는 것만 같았고 젊은 날의 아담 드라이버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니 무척이나 더 아름다웠다. 역시 좋은 건 크게 봐야 해, 같은 생각을 나도 모르게 하고 말았다.


게다가 영화를 핑계로 할 수 있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가. 영화가 시작하기 전엔 좋아하는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오락실에 들르는 코스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날 찾을 영화관과 동선이 겹치는 아는 음식점을 빠르게 떠올려보고 어떤 날은 소문이 자자한 새로운 식당으로 과감한 모험을 떠나기도 한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곧장 헤어지기 아쉬우니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바로 옆에 위치한 오락실로 신나게 발걸음을 옮긴다. 우리는 환상의 콤비라며 한 번도 죽지 않고 게임을 클리어하고 스트레스가 쌓인 날엔 두더지 게임을, 마음에 드는 인형을 발견한 날엔 인형 뽑기에 돈을 쏟아부었다. 정말 단순히 인형이 갖고 싶은 거였다면 차라리 그 돈으로 인형을 사는 게 나았을 것이다.


올해 초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영화관을 찾은 건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구와 나는 '영화 친구'라는 호칭이 어울릴 정도로 매주 볼거리를 찾아 영화관을 떠돌곤 했고 그래서 영화에 대한 추억도, 영화관을 오가다가 생긴 에피소드도 많았다. "우와, 오랜만에 같이 영화관 오니깐 옛날 생각난다.", "그래, 영화관에서 영화 보는 것도 좋은데 영화 예매해놓은 날이면 퇴근 전부터 설레고 도착해서 팝콘이랑 콜라 사들고 가는 그런 것도 너무 좋잖아. 끝나면 오락도 한 판씩 하고 말이지." 물론 집에서도 엽기 떡볶이나 치킨을 시켜먹을 수 있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소파에 앉은 채로 카트라이더를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편하고 쉬운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처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같은 영화라도 각기 다르게 관람객들에게 가닿게 된다.


단순히 무언가를 보고 듣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를 경험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두 발이 꽁꽁 묶여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고 외출마저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예전에는 당연하던 모든 것들이 새삼 감사한 일이었단 생각마저 든다. 이런 상황 속에서 OTT 서비스가 하나의 선택지로 주어진 건 무척 고마운 일이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앞으로도 영화는 영화관에 가서 보고 싶다. 샤를리즈 테론 주연의 넷플릭스 영화 <올드 가드>를 영화관에서 봤다면 분명 20배쯤 재밌지 않았을까. 참고로 <프란시스 하>는 아직 상영 중이니 아직 못 보신 분들은 꼭 극장에 가서 보시길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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