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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Nov 11. 2021

시절 인연이 다했구나

시드니 생활 기록 / 만남과 헤어짐

문득 세월이 지나도 어떤 것들은 끝까지 익숙해지지 않을 거란 확신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낯설더라도 시간이 누적될수록 점차 나아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반복되는 패턴에 익숙해져서 둔감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떤 것들은 이런 법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반복될 때마다 매번 사람을 힘들게 만들곤 하죠. 제 경우에는 주변 사람들과의 헤어짐이 그렇습니다.


학창 시절에 학년이 바뀌고 새로운 반에 배정될 때면 기대감에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늘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같은 반이었던 친한 친구와 이번에는 다른 반으로 배정되어서, 같은 이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익숙했던 교실 풍경이 이제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과거가 되어버리고 매일같이 은은하게 교류를 나누던 짝꿍이나 앞자리, 혹은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과 멀어진다는 사실이 제겐 항상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친한 친구들은 보고 싶으면 언제든 쉬는 시간에 놀러 가 얼굴을 볼 수 있고 점심시간에 같이 밥을 먹거나 방과 후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그저 같은 반 좋은 친구로 기억되는 아이들과는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죠. 매년 이런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손에 쥐고 갈 수 있는 친구들은 지극히 일부일 뿐이며 그 외의 관계는 그저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듯 자연스레 멀어질 수밖에 없단 사실을 한 학년씩 올라가며 조금씩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이런 저의 성향은 당연히 입사를 하고 난 후에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회사 정책에 따라 제가 이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고 같은 팀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다른 부서로 배치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아침마다 밝게 인사를 하며 출근하던 L, 매번 전화를 걸어 부탁을 하면 일단 알겠다며 최선을 다해 도와주던 K가 다른 팀으로 이동한단 소식을 들었을 때 '이제 저 사람하고는 더 이상 오며 가며 얼굴 볼 일이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저도 모르게 했던 것 같습니다. 며칠 후에 있을 송별회에 참석해 그간의 고마움을 전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랠 뿐이었죠.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은 늘 새로운 사람을 동반했습니다. 그리고 그건 시드니에서도 마찬가지였죠. 초반 1~2년 동안은 부지런히 새로운 장소를 탐색하는 동시에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마침 회사의 성장과 더불어 새로운 인원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시기였는데 시드니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에너지가 합쳐질 때 사람이 얼마나 부지런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기간이었습니다.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그중 마음이 맞는 사람들을 추려서 친구 목록을 부지런히 업데이트했습니다. 몇 차례의 만남 이후 그저 아는 사람 혹은 회사 동료로 남는 경우도 많았지만요.


그런데 시드니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느 순간, 유입되는 사람에 비해 떠나는 사람의 수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떠났는데 말 그대로 단순히 퇴사를 의미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어떤 경우에 퇴사가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되기도 했습니다. 환한 얼굴로 시드니 땅을 밟았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1~2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호주를 떠났죠.


해외 생활에서의 헤어짐은 예전에 한국에서 느끼던 아쉬움과는 또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동안의 헤어짐이,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을 의미했다면 시드니에선 정말 작별을 의미했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퇴사가 갑작스러운 통보로 이어지듯 친구들과의 이별도 늘 그렇게 갑작스레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매번 '남겨진 사람'이 될 때면 착잡한 심정에 빠지곤 했죠.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눈물을 보일 정도로 친했던 것도 아닌데 이 아쉬움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여러 차례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헤어짐에 익숙해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해외에 거주하는 이민자 대부분이 결국은 귀국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막상 그게 현실로 다가올 때면 매번 가슴 한 편이 뻥 뚫리는 것 같은 헛헛함을 느끼곤 했습니다. 동갑내기이자 당시 막 친해지기 시작했던 P가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돌아간단 소식을 들었을 땐 때마침 한국에서 휴가차 놀러 온 친구에게 다짜고짜 아쉬움을 토로했을 정도로요. 회사 동료 한 명이 관두는 것에 이렇게 슬퍼할 일인가 싶어 친구로선 약간 갸우뚱했겠지만 이제 조금 친해지고 정 붙일만하면 매번 떠나는 사람들이 무척 원망스러웠던 시기였습니다. 해외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이렇게 반복되는 상황에 지쳐 졸지에는 누구에게도 쉽게 마음을 내주지 않게 된다는 이야기가 서서히 이해되기 시작한 시점이었죠.


대신 시절 인연에 대해선 어떤 태도 같은 것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절 인연은 한때는 가까운 사이였지만 삶의 방향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진 관계들을 이야기하는데 앞서 이야기했던 같은 반의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하루가 멀다 하고 얼굴을 보던 절친인 경우도 있습니다. 크게 무언가가 서운했던 것도 아니고 싸운 것은 더더군다나 아닌데 정말 살다 보니 삶의 궤적과 각자가 그리는 미래의 모습이 달라지면서 자연스레 멀어지는 인연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관계에 대해선 이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시절 인연이 다 했구나.'


예전보다 시절 인연에 덜 연연하게 된 까닭은 시기마다 나는 사람이 있으면 드는 사람도 있단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빈자리를 채울 누군가가 타이밍 좋게 나타나거나 아니면 스스로 허전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 자리를 대체할 누군가를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는 저를 발견했기 때문이죠. '내 사람'의 영역에서 A역할을 해주던 친구가 완벽하게 A로 대체되는 경우는 드물었지만 A-1로, 때론 A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B인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럼 그건 그거대로 새롭고 재밌는 관계가 되곤 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아쉽긴 하지만 이제는 모든 이별이 예전만큼 슬프게 다가오진 않습니다. 무엇보다 한때 좋은 관계였던 그 친구가 이제는 내 곁에 없더라도 문득 그 시기를 돌아봤을 때 기억 속에서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아닐까요.




Photo by Aziz Acharki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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