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nald Jan 04. 2019

같이 가고 싶은 카페가 있어

Ampersand Cafe & Bookstore

보채는 이 하나 없는데 나무로 된 계단을 밟고 Ampersand Cafe의 2층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조급했다. 한국에서 온 하영이에게 한시라도 빨리 카페 내부를 구경시켜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계단을 다 올라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벽을 따라 늘어선 책장과 그 공간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책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제목이 <장 폴 고티에>인 커다란 디자인 서적과 손바닥만 한 소설책들이 각각의 크기에 따라 책장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오후 1시, 창문을 통해 들어온 햇살이 비스듬히 카페를 비추고 있었다.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바로 그 풍경이었다. "오, 여기 예쁘다."라는 친구의 말 한마디에 조급했던 마음이 비로소 편안해진다. 두 개의 방을 지나 라벤더 컬러의 책장이 있는 마지막 방에 우리는 자리를 잡는다.


시드니에 살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자 나에게도 제법 익숙한 장소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가는 동네 도서관이 생겼고 그 도서관 가는 길에 자연스레 들르는 카페가 하나 생겼다. 퇴근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거의 매일 들르던 한식집도 있었다. 세림 언니와 나는 그 집을 시드니 밥집이라고 불렀다. 그 주의 4번째 방문을 하던 금요일 저녁, 언니와 내가 음식점으로 들어서자 직원은 오늘도 오셨냐며 웃었고 가게를 나설 때는 내일도 오실 거죠? 라며 넉살 좋은 한마디를 건넸다. 이방인에게 아는 가게가 생긴다는 건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친한 친구가 하나 둘 생기고 단골 가게의 수가 늘어갈 때마다 지역 주민으로 거듭나는 기분이었다. 한국에서 친구들이 휴가를 오기 시작한 건 마침 그즈음이었다. 카톡으로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시드니 생활자는 마음이 분주해졌다.


친구들은 저마다 개성 있는 여행 계획서를 들고 시드니를 찾았다. 이미 호주를 와본 경험이 있는 친구들은 시드니에서 퍼스로 이어지는 기나긴 여정을 준비했고 도시 탐험을 좋아하는 친구는 시드니와 멜버른을, 여행 욕심이 많은 친구는 시드니와 울룰루로 꽉 찬 일주일 일정표를 들고 날아왔다. 패기 넘치는 여행 루트를 보며 모두들 시드니만으로는 성에 안 차는 걸까라고 잠시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시드니 관광명소를 곰곰이 따져보다가 나는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게 멀리서 온 친구들을 내가 자주 가는 레스토랑과 좋아하는 카페로 부지런히 데려갔다. 그곳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고 즐겁게 웃을 친구들을 떠올리며 동선에 따라 가게 이름을 하나씩 채워 나갔다. Ampersand Cafe는 나의 시드니 가이드에 단골로 등장하는 북카페였다.


북카페로 유명한 Ampersand Cafe는 패딩턴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카페다. 정기적으로 북클럽 모임이 열릴 것만 같은 지하와 야외석이 있는 1층, 그리고 세 개의 방으로 구성된 채광이 좋은 2층까지 총 세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이 카페를 방문한 뒤 나는 홀딱 반해 한동안 패딩턴, 글리브 일대의 북카페를 찾아 헤매기도 했지만 너무 분주하지 않고 작게 나뉜 공간이 주는 안락한 느낌이 좋아 Ampersand는 마지막까지 부동의 1위를 지켜냈다. 메뉴는 항상 (그 이름도 찬란한) Mediterranean Breakfast를 주문했는데 흔히 Big Breakfast라 불리는 바짝 구운 베이컨과 윤기 흐르는 소시지로 구성된 기름진 메뉴를 좋아하는 사람도 베지테리안 메뉴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고마운 메뉴다. 토마토는 역시 구워야 제맛이고 잘 요리한 시금치가 얼마나 맛있는지 지난 30년 동안 쌓인 시금치에 대한 오해를 풀어준 음식이기도 하다. 지중해의 아침이라니, 애초에 에그 베네딕트, 프렌치 토스트 같은 메뉴 사이에 저런 멋들어진 이름을 가진 것 자체가 반칙이다. 하지만 그렇게 근사한 이름이 아니었다면 나는 결코 그 풍부한 맛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 못했겠지.


"너랑 같이 가고 싶은 카페가 있어"


며칠 전 다짜고짜 하영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좋아하는 카페를 친구에게 빨리 소개해주고 싶어 안달이던 시드니 팔불출이 이제는 망원동의 한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몇 년 전의 그 날처럼 계단을 올라가는 마음이 설렐지, 친구는 그때만큼 환하게 웃을지, 그리고 나는 시드니에서 만큼 자랑스럽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 장소를 바라볼 수 있을지 의문형의 문장들이 끊임없이 떠오르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보채는 이도 그렇다고 나무라는 이도 없으니 걱정은 일단 내려놓기로 한다. 주문할 원두의 이름은 윌리엄 블레이크, 역시 이름은 멋지고 볼 일이다.





Ampersand Cafe & Bookstore

78 Oxford St, Paddington NSW 2021, Australia

7.00 AM - 5.30 PM (Mon-Fri) / 8.00 AM - 5.30PM (Sat-Sun)

www.cafebookshop.com.au



작가의 이전글 가까운 레스토랑 탐방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