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실패를 모르는 메뉴
Pan fried pork dumplings in D&B
퇴근을 하고 하버 브릿지를 건너 친구들과 다 같이 Dumplings and beer를 방문한 건 금요일 저녁이었다. 평소 이 곳을 자주 찾던 친구가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한 가게였기 때문에 마침내 그 명성을 두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다 같이 모인 자리였다. 금요일 저녁이어서 그런지 가게는 사람들로 복작였지만 운이 좋게도 우리는 금방 테이블을 잡을 수 있었다.
가게가 위치한 Darlinghurst은 시드니 중심부에 위치한 동네로 비교적 나이 때가 젊고 Local의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때문에 이런 동네에서 만두 가게가 성업 중이란 게 처음에는 신기하기도 했지만 근처에 Indian이나 Japanese가 늘어선 걸 보면 새삼 놀랍지도 않은 풍경이었다. 가게 내부는 비좁고 테이블 간격 또한 가까워 오래 앉아있기는 어려운 곳이지만 생각해보면 만두로 출출한 배를 달래고 맥주를 한 잔 하기에는 Darlinghurst에 이만한 장소가 없었다. 중국신문으로 감싼 테이블은 오랜 세월에 걸쳐 색이 바랜 건지 아니면 테이블 위로 오가는 간장 때문인 건지 의심스러운 컬러를 띄고 있지만 나중에는 오히려 이런 디테일마저 정겹게 느껴졌다. 우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메뉴를 고르는 데 한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팬 프라이드 포크 덤플링, 샤오롱바오, 부추와 관자가 들어간 덤플링과 야채, 그리고 맥주.
조금 생소할 수 있는 팬 프라이드 포크 덤플링은 교자의 친척쯤 되는 만두다. 일단 만두를 찌고 한쪽면을 팬에 굽는다는 점에서 일본식 교자와 요리법이 같다고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만두피가 도톰하고 샤오롱바오처럼 육즙을 머금고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참고로 한국식 중식당에서 먹는 군만두는 기름솥에 퐁당 담가 튀긴다는 점에서 딥 프라이드 덤플링과 더 유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주문한 지 얼마 안 있어 가장 먼저 맥주가 자리로 서빙된다. 맥주의 등장과 함께 흥겹게 잔을 부딪치고 각자의 속도로 꿀꺽꿀꺽 맥주를 들이켜고 있으면 갈릭을 베이스로 볶은 청경채와 브로콜리가 테이블로 전해진다. 단순한 맛이지만 스타터로 먹어도 맛있고 만두와 함께하면 먹는 즐거움이 더해지는 메뉴다. 이미 배는 고프고 덤플링을 기다리는 시간은 길게만 느껴져 야채가 올라간 접시가 바닥을 보일 즈음, 마침내 주인아저씨가 팬 프라이드 포크 덤플링이 가득 올라간 접시를 들고 구세주처럼 나타난다. 접시 위 빼곡한 만두를 보며 ‘우리.. 참 많이도 시켰구나’라는 걱정스러운 눈빛이 한두 번 오간다.
막 서빙된 덤플링은 따끈따끈하다 못해 뜨겁기 때문에 흥분하지 말고 잘 식혀서 먹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는 몇 차례의 실패 끝에 -급하게 한 입을 베어 물어 혀를 데는 대신- 앞접시에 만두를 가지런히 올려놓고 반으로 자르는 안전한 방법을 택한다. 젓가락이 마치 나이프라도 되는 냥 신중을 기해 자른 만두 사이로 모락모락 김이 올라온다. 도톰한 만두피가 만두소를 잘 감싸준 덕분에 육즙을 머금은 고기와 야채는 한데 어우러져 풍미를 자랑한다. 게다가 팬에 잘 구워진 겉면은 바삭한 식감을 더하니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맛이 없기 힘든 요리다. 나머지 반쪽을 젓가락으로 집어 들고 후후- 불어 칠리소스에 찍어 먹는다. 조금 전 걱정했던 게 무색하게 접시는 정말 빠른 속도로 비워진다.
그런 날이 있다. 기름진 음식에 맥주 한 잔 하고 싶은 날. 업무 시간부터 꾸덕꾸덕한 크림 파스타, 촉촉한 트러플 버거, 맥도날드 프라이스 같은 게 머릿속에 동동 떠다녀서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날. 다섯 시 반이 땡 하면 회사를 박차고 나가 칼퇴를 하고 싶은 날. 어쩌면 그저 금요일이라서 설레는 날. 그런 날이면 나는 이제 자연스레 팬 프라이드 포크 덤플링을 떠올린다. 금요일 밤에 어울리는, 도무지 실패를 모르는 메뉴다.
Dumplings & Beer
83 Stanley St, Darlinghurst NSW 2010, Australia
12.00 PM - 3.00 PM , 6.00 PM - 10.00 PM (Tue-Thu)
12.00 PM - 10.00 PM (Fri-Su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