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는 재료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가 키친에 울려 퍼졌다. 냉장고에 있는 몇 안 되는 밑반찬을 꺼내어 접시에 옮겨 담고 갓 지은 흑미밥을 밥공기에 오복하게 담았다. 국그릇엔 된장찌개를 양껏 담고 마지막으로 숟가락과 젓가락 두 쌍을 쟁반에 챙겨 서둘러 방으로 향했다. 자그마한 방에 들어가 커다란 신발 박스 두 개를 척척 쌓아 순식간에 간이 식탁을 만들고 쟁반에 올려진 것들을 하나씩 식탁으로 옮기자 제법 구성을 갖춘 한 상이 차려졌다. 상을 두고 엄마와 마주 보고 앉으니 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시드니에 왔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드니에서 독립생활을 시작했다. 딸랑 러기지 두 개를 들고 온 내가 방을 얻자마자 가장 열심히 한 건 다름 아닌 장보기였다. 세 평 남짓의 방에서 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선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다행히 기본적인 가구가 포함된 방이었지만 침대 커버나 베개부터 주방에서 사용할 맛소금 하나까지 그야말로 필요한 것들 투성이었다. 장 볼 목록을 하나씩 적다 보면 어느새 리스트가 빼곡해졌고 그렇게 매주 주말에 무언가를 사서 텅 빈 공간을 채우는 일이 대략 한 달간 꾸준히 이어졌다. 그런데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면(가는 길에는 절대 생각나지 않는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빠뜨린 품목이 뒤늦게야 생각났고 막상 생활하다 보니 쿠킹포일 같이 자주 사용하진 않지만 있으면 편리한 것들이 하나둘 생겨났다. 그야말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심정이었다.
사는 곳이 조금씩 모양새를 갖춰가기 시작하자 갑자기 된장찌개를 해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외국에 왔으니 스테이크용 고기와 아스파라거스 같은 재료를 구입해 서양식을 차려먹기도 했지만 시간이 좀 지나니 역시 집에서 먹던 집밥이 그리워졌다. 된장찌개를 선택한 건 평소 좋아하는 음식이기도 했지만 특별한 재료가 필요하지 않은, 가장 쉬워 보이는 요리였기 때문이다. 멸치와 다시다로 육수를 내 된장을 풀고 채소를 썰어 넣는다는 이론적인 레시피를 알고 있었고 무엇보다 엄마가 십여분이면 뚝딱 끓여내던 음식이 바로 된장찌개 아니던가. 실력도 경험도 없었지만 근거 없는 자신감이 결국 나를 주방으로 이끌었다.
장을 보러 가기 전에 먼저 필요한 재료를 하나씩 적어보기로 했다. 된장, 멸치, 다시다, MSG, 감자, 양파, 두부... 이렇게 핸드폰 메모장에 재료 이름을 써 내려가다 보니 생각보다 들어가는 가짓수가 꽤 많았다. '뭐야, 된장찌개는 맨날 집에 있는 재료로 끓이는 거 아니었어? 사야 할게 생각보다 많네.'이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재료를 하나씩 장바구니에 담았다. 주방일에 1도 관심이 없던 나는 그때까지 제대로 된장찌개를 끓여본 적이 없었고 이렇게 제로부터 시작하게 되자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된장찌개에는 무려 일곱 가지 이상의 재료가 필요하다는 단순한 사실을. 나도 모르게 유레카를 읊조리게 되는 순간이었다.
데뷔식을 치른 나의 된장찌개는 그야말로 어중간한 맛을 뽐냈다. 분명 된장찌개는 맞는데 그렇다고 맛있지도 않은, 맹숭맹숭한 맛. 맛이 이상한 건 알겠는데 무엇이 부족한 건지 감이 없어 짚이는 대로 이것저것 한 스푼, 두 스푼 더했고 그러다 보니 조리 시간은 한없이 늘어졌다. 결국 그 날 저녁에는 마치 어제의 카레 속에 있을 법한 모서리가 뭉툭한 감자가 잔뜩 들어간 텁텁한 된장찌개를 먹었다. 뒷맛이 깔끔하고 칼칼한 엄마의 된장찌개가 생각났다. 도대체 거기엔 어떤 특별한 재료가 들어갔던 걸까?
시드니에 온 엄마는 내 요청에 따라 된장찌개 만들기에 착수하셨다. 내 주방에서 내가 사용하던 조리 기구로 내가 먹던 된장과 함께 장 봐온 호주산 야채들로 척척 요리를 시작하셨다. 2인분에 맞는 물을 가늠하고 적당한 양의 된장을 넣고 알맞은 크기로 야채를 썰어 때가 되자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와르르 그것을 냄비에 쏟아 넣으셨다. 그 모든 과정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낯선 주방에서 요리하는 엄마를 오히려 신기하게 바라봤다. 혹시나 엄마만의 비밀 재료가 있지는 않을까 혹은 역시 맛의 차이는 집된장과 시판용 된장의 차이가 아닐까라고 가는 눈을 뜬 채 처음부터 끝까지 엄마의 곁을 떠나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건 없었다. 나의 완패였다.
따지고 보면 내 머릿속의 된장찌개는 착각의 총집합이었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집에 있는 재료' 뒤에는 때가 되면 신선한 재료를 끊임없이 채워놓는 엄마의 부지런함이 있었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맛에는 특별한 MSG가 아닌 60여 년간 쌓아온 노하우가 첨가되어 있었다. 알맞은 정도의 센 불과 재료를 넣는 완벽한 타이밍 같이 수 천 번의 실전을 통해 자연스레 몸에 밴, 익히 손 맛이라고 부르는 그것 말이다. 그 날 엄마가 해주신 된장찌개가 맛있었던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맛도 맛이었지만 독립생활 4년 차가 되어서야 그동안 눈치 채지 못했던 엄마의 수고로움이 피부로 와 닿아 "완전 맛있어..!"라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된장찌개에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다. 익숙한 듯 설거지하는 나를 보고 엄마는 우리 딸이 이제 철들었다고 말씀하셨다.
2019년 온가족이 모인 날, 우리 집의 밥상 풍경은 이렇다. 양도 정도 듬뿍 담긴 밥상은 아직까지 엄마의 몫이지만 나는 엄마가 요리에 집중할 수 있도록 옆에서 보조 요리사 역할을 자처한다. 소파에서 무게만 잡고 계시던 아빠도 최근 바뀐 공기를 감지하신 듯 이제는 부엌으로 오셔서 제법 익숙하게 수저와 젓가락을 놓으신다. 마침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풍성한 한상이 차려지면 테이블을 비잉 둘러앉은 가족들이 너도나도 맛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맛있다'는 말 한마디는 요리인을 춤추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오빠와 새언니가 설거지를 마치면 마침내 <집에서 한 끼 먹기 미션>이 비로소 완료된다. 엄마의 집밥에 역할을 분담해주는 구성원들이 더해져 집안에 더 나은 식문화가 탄생했다. 화목한 밥상은 더 이상 엄마 혼자의 몫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