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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Oct 23. 2019

맛집에는 저마다의 타이머가 있다

서울에서 좋아하는 가게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엄마랑 명동교자를 찾는다. 엄마가 오래전 막 직장생활을 시작했을 무렵부터 좋아했던 음식점을 나도 이십 대에 즐겨 찾았고 이제는 함께 발걸음 한다. 처음에는 이게 과연 김치일까 마늘일까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명동교자의 시그니처이자 한번 먹어보면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전라도식 김치를 나도 이제 한 접시쯤은 뚝딱 비운다. 그래 봤자 김치 추가를 요청하는 엄마 앞에서 나는 명함도 못 내밀지만 오랜 시간 동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음식을 먹은 추억이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켜켜이 쌓였다. 얼마 전에도 추억 한 겹을 더 하고 왔다.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이면 자연스레 뜨끈한 국밥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전국에 얼마나 많은 국밥집이 있을까 따져보면 셀 수 없을 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떠오르는 가게 이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돼지국밥의 본고장인 부산 대신 범위를 서울로 좁히면 그 레이더망에는 당연히 명동의 터줏대감, 곰탕집 하동관이 포착된다. 그리고 하동관 하면 떠오르는 건 바로 맑은 국물과 함께 한쪽에 드높게 쌓인 신선하고도 아름다운 파 산(山).



앞서 이야기한 가게들이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면 그에 못지않게 최근 요식업 트렌드에 맞춰 굉장히 이국적이거나 혹은 기존의 것들과 다른 차원의 맛을 내보이는, 좋은 가게들이 생겨나 대중에게 폭발적인 사랑을 받기도 한다.


요즘 국밥계의 떠오르는 샛별, 옥동식을 찾는 횟수가 늘었다. 바닥에 깔린 흰쌀밥이 고스란히 보일 정도로 맑디 맑은 국물에 얇게 썰어 올라간 버크셔 돼지고기는 그간 국밥집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여러모로 다른 비주얼을 자랑한다. 국밥집이라고 하기엔 정갈한 분위기를 뽐내는 인테리어에 홀린 듯 끌려들어 가 그간 맛보지 못한 육수 맛에 한 입, 두 입, 바쁘게 숟가락을 들다 보면 어느새 한 그릇을 비우게 된다. 옥동식은 맛으로도 분위기로도 국밥계의 새 지평을 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일명 '맛집' 중 막상 가보면 소문난 잔치집에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기대 이하의 가게들을 만나기도 한다. 물론 맛이란 건 지극히 주관성을 띄는지라 개인적인 입맛에 따라 때론 보편성의 반대편에 서게 되는 때도 있지만 부풀려진 광고에 의해 쓴맛을 보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럭저럭 입맛에 맞아 "괜찮다"라고 긍정적인 말들을 내뱉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다시 그 가게를 찾게 되는 건 지극히 낮은 확률을 자랑한다.


예를 들어 가게를 보고 있으면, 매일 많은 손님이 온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내가 하는 가게를 마음에 들어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오히려 소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가령 열 명 중에 한두 사람을 빼고 가게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고 해도, 그 한두 사람이 당신이 하는 일을 정말 마음에 들어한다면,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가게에 와야지" 하고 생각해준다면, 가게라는 건 그런대로 유지되어가게 마련이다. 열 명 중에 여덟아홉 명이 "뭐 나쁘진 않군" 하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대부분의 사람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도 열 명 중에 한 두 사람이 정말로 마음에 들어하는 편이 오히려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있다.  - <이윽고 슬픈 외국어> 中,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가게가 마음에 들기는 얼마나 어려운지,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가게를 넘어 한 사람이 무언가를 정말 마음에 들어하고 그 가게를 다시 찾기로 마음을 먹는다는 건 또 얼마나 드문 일인지. 나아가 가게를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건 어떤 부류의 손님들인지. 내가 맛있다고 했지만 두 번 다시 찾지 않았던 수많은 가게들은 결국 대부분 <뭐 나쁘진 않군> 카테고리에 속했을 것이다. 진심으로 좋았다고, 맛있었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결국 그 가게를 다시 찾게 된다.



좋아하는 가게를 다시 찾기까지 때론 꽤 긴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짧게는 몇 달에 한 번, 길게는 몇 년에 한 번씩 갑작스레 그 집의 그 메뉴가 떠올라 참을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마치 그 가게에 긴 기간으로 설정된 타이머를 설치해놓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 순간 "땡-"하고 마음속에서 알림음이 울리면 나는 어김없이 그곳으로 발걸음을 하게 된다. 안국 역 솥밥 집 조금(鳥金)은 그렇게 이따금씩 타이머가 울리는 단골집 중 하나다. 같은 이유로 얼마 전에는 6년 만에 카페 미카야를 찾았다. 일주일에 여러 번을 찾을 열정은 없지만 한 번 마음에 들면 일 년이고 이 년이고 꾸준히 찾는 성실함은 있다. 나는 내년에도 4월이면 미카야의 벚꽃 몽블랑이 생각날 예정이다.


우리나라 음식점의 과반수 이상이 오픈한 지 1년 안에 폐업을 한다고 한다. 길게는 1년에서 짧게는 6개월에 그치는 요식업/카페 트렌드에 맞춰 생겨나는 가게들이 많은 까닭도 있지만 최근에는 젠트리피케이션과 함께 천정부지로 치솟는 월세에 못 버티고 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켰음에도 폐점을 하거나 변두리로 점포를 이전하는 가게 또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나는 서울의 오래된 가게들이, 더욱더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켰으면 좋겠다. 내가 엄마와 함께 명동교자를 찾는 것처럼 10년, 20년 후에는 다음 세대와 함께 그곳을 찾아 '세 개요' 메뉴를 먹으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조금(鳥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삼청동 차 마시는 뜰에 가서 전통차와 시루떡을 먹고 싶은 건 두 말할 나위가 없다. 내가 서울을 좋아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좋아하는 장소와 가게를 빠뜨리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디선가 "땡-"하고 맞춰놓은 타이머가 울리면 나는 언제든 그곳으로 향할 준비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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