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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Nov 18. 2019

남의 집 구경하기 얼마나 좋아하시나요?

오픈하우스 서울 2019 후기

오픈하우스 서울에 대해 알게 된 건 트위터를 통해서였다. 팔로우하고 있던 몇몇 계정에서 오픈하우스 서울에 관한 트윗이 지속적으로 리트윗 되고 있었고 이 프로그램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나는 오픈하우스라는 낯선 글자를 처음에는 그냥 무심코 흘려보냈다. 그런데 반복적으로 타임라인에 나타나는 정보를 몇 차례 훑어보다 보니 호기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남의 집을 구경할 수 있다고? 집뿐만 아니라 건축가의 사무실도? 사옥도? 대학교도?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그래서 한번 참여해보기로 했다. 궁금한 건 뭐든 직접 해봐야 직성이 풀리니까.


오픈하우스 참가가 처음이었던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예매 전쟁에 참여했다가 '마감'의 쓴맛을 봐야 했다. 프로그램마다 수용 가능한 인원이 25여 명 남짓이기 때문에 예매가 그야말로 전쟁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타임테이블에서 마감이 아니라 예약이란 글자를 바지런히 찾아 담은 뒤 여유 있게 결제를 하려는데 이번에는 결제 단계에서 튕겼다. 그렇다, 장바구니에 담았다고 안심할 일이 아니었건만 첫 참가자인 내가 이 사실을 숙지하고 있을 리 없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눈 여겨보았던 집들의 예약에는 실패하였고 대신 좋아하는 캠퍼스와 두 명의 건축가 오피스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첫 번째 프로그램은 이화여자대학교였다. 최근에도 내가 지속적으로 이대를 방문하는 이유는 ECC,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건물 안에 위치한 영화관 아트하우스 모모 때문이었다. 좋아하던 독립 영화관으론 늘 광화문에 위치한 씨네큐브를 최애로 꼽았지만 아트하우스 모모는 거리상으로도 상영작으로도 조건을 충족시켰고 그렇게 나는 씨네큐브와 아트하우스 모모를 번갈아가며 방문하기 시작했다. 조너선 보로포스키의 해머링맨과 광화문의 정취를 좋아했지만 이대 ECC에 가면 대학생들이 주는 활기와 함께 교문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촥 펼쳐진 광장 혹은 지하벙커와도 같은 ECC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당일 진행은 이화여대 건축학과 강미선 교수님이 맡아주셨다. 대략 2시간 정도 진행될 거라 했지만 생각보다 넓은 듯 사실은 그렇게 넓지 않은 않은 캠퍼스 곳곳을 옮겨 다니며 설명을 듣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흘렀다. 아침 공기가 상쾌했지만 경사가 많은 캠퍼스를 아침부터 오르락내리락했더니 나중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들었다. 오후가 가까워올수록 햇볕이 따스해졌고 막 가을 옷을 입기 시작한 캠퍼스를 둘러보기엔 더없이 좋은,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캠퍼스 안에는 옛 모습을 복원한 한옥과 고딕 양식의 본관, 도미니크 페로의 건축물이 어우러졌다. 쿰쿰한 냄새와 나무로 된 가구가 가득했던 중강당에서 특히 카메라 셔터가 분주했다. 오래된 건물과 새로 지은 건축물이 캠퍼스 내에서 복잡하게 엉켜있었지만 신기하게도 서로에게 위화감을 주지 않았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이대는 작지만 아름답게 잘 어우러진 캠퍼스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ECC(Ewha Campus Complex). 기존의 운동장을 최대한 유지하려 한 FOA와 동대문 DDP를 설계한 자하 하디드의 굉장한 설계를 제치고 최종 선택된 도미니크 페로의 Campus Valley. 지상이 아닌 지하로 들어가는 기상천외한 발상과 함께 지하 6층 건물에 어마어마한 채광과 환기, (지하수를 통해) 보온 효과를 놓치지 않았다는 게 이 건물의 핵심 포인트. 다른 여러 독립 영화관을 제치고 아트하우스 모모로 발걸음 하게 되는 건 역시 ECC의 지분이 클 것이다. 그곳엔 구조적 아름다움과 함께 서울에서 보기 드문, 확 트인 전망이 주는 후련함이 있기 때문이다.



옥동식에서 든든하게 점심 먹고 오후 일정은 사무소효자동에서,


오후에는 서승모 건축가의 사무소효자동을 탐방했다. 그동안 진행한 프로젝트와 현재 맡고 있는 건축물들의 사진을 슥슥 넘기며 30여분 간 건축가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어진 QnA 시간. 어쩌다가 청운동 도로변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묻는 한 참가자의 질문에 건축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본인이 평소 산만한 타입이라 업무를 진행하다가도 일이 잘 안 풀릴 때면 사무실 맞은편에 위치한 경기상고를 포함해 청운동, 효자동 일대를 자주 거닌다고. 그런데 만약 사무실이 2층이면 바깥으로 나오기 위해 여러 개의 문을 지나고 또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복도를 통과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현재의 사무실은 그럴 필요 없이 문 하나만 나오면 바로 대로변이라 더없이 편리하단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이따가 가는 길에 꼭 경기상고에 가서 북악산을 한번 바라보란 말을 덧붙였다. 산이 정말 코앞에 있는 거 같다고 서울 시내에서 정말 보기 드문 경치라고.



오픈하우스 서울 마지막 날에는 황두진 건축가의 목련원을 찾았다. 해외에서 체류하는 동안 어마어마한 시간을 도로 위에 쏟아부었고 그 사실을 깨닫고 난 뒤 더 이상은 그런 생활을 반복하지 않기로 결심하셨다고. 건축사사무소 목련원의 1층이 사무실이고 2층이 자택인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결과였을지도 모르겠다. 집과 사무실의 경계가 희미하지만 재택근무 대신 항상 2층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신다고 단호하게 설명해주신 부분이 재미있었다. 목련원 소개에 이어서 최근 출간된 <공원 사수 대작전> 북 토크가 진행되었다.




"침실은 너무 넓지 않은 쪽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숙면을 도와. 천장도 높지 않은 편이 좋아. 천장까지의 공간이 너무 넓으면 유령이 떠돌 여지가 생기거든." 우스갯소리를 하듯 말했다. "침대와 벽 사이는 말이야. 한밤에 잠이 깨서 화장실에 갈 때, 한 손을 가볍게 내밀면 바로 닿을 만한 거리가 좋아. 캄캄해도 벽을 따라서 문까지 갈 수 있고 말이지. 다이닝 키친의 경우, 요리하는 냄새가 좋은 것은 식사하기 전까지만이고 식사가 끝나면 바로 싫어지지. 주방의 천장 높이와 가스풍로, 환기통 위치가 냄새를 컨트롤하는 결정적인 수단이야."  -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中


나는 현실적인 부분을 가능하면 염두에 많이 둘 수록 좋은 건축물이 생겨난다고 믿는다. 요리를 하지 않는 건축가에게 주방 설계를 맡길 수 없다는 이야기처럼 특히 집에선 한 사람의 생활 패턴이나 습관들이 가장 잘 드러나기 마련이다. 집도 사무실도 모두 그곳을 사용할 사람들의 최대한 특징을 고려해 만들어질 때 가장 효율적인 공간이 된다. 물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의 행동도 패턴도 변화하기 때문에 100% 완벽한 건축물이란 언제나 있을 수 없지만 세심한 시선을 통해 만들어진 건축물에 대한 감탄은 바로 그러한 현실적인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냈을 때 만들어진다.


비전공자임에도 건축사사무소를 방문한 시간이 즐거웠던 이유는 건축가들의 솔직하고 현실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업무 중 산책을 편히 하기 위해 혹은 출퇴근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같은 지극히도 현실적인 불편함을 최대한 보완하기 위해 사무소의 입지부터 건축물에 이르기까지 과정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그들의 관점과 견해가 더해진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집 안에 놓인 소품 하나에서도 그 사람이 보인다. 하물며 집을 한 바퀴를 둘러본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한 얼마나 많은 정보 수집이 가능하다는 말일까? 대화를 통해 한 사람을 알아가는 건 꽤나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지만 그 사람의 집을 한번 스윽 훑어보는 건 그에 반해 품이 덜 드는 일이다. 그리고 여러 겹으로 포장된 수십 마디의 말 보다 오히려 날 것의 후자가 더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주기도 한다. 당신이 그 공간을 면밀히 둘러보기만 한다면 말이다. 건축가들의 시선은 이 공간을 사용할 이들의 요구와 취향, 그리고 생각을 따라간다. 이러니 남의 집 구경이나 남의 사무소를 구경하는 시간이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설레는 것처럼 오픈하우스를 가는 길이 즐거운 이유다.











오픈하우스 서울 : https://www.ohseoul.org/ 



Y House Renovation by © Samuso Hyojadong
The Bricks by © doojin hwang architec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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