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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Jun 03. 2019

아무튼 벚꽃

전날 비가 내렸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햇살이 좋았던 날. 이런 날이라면 조금 더 걸어도 좋지 않을까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저 아래까지 가보지 뭐,라고 몇 차례나 계획을 수정하게 만들었던 길고도 아름다운 나카메구로의 벚꽃길. 그렇게 욕심을 부리며 끼니때를 놓치는 대신 길 위에서 많은 시간을 흘려보낸 날의 기록이다.


이번 여행에서 온전한 하루가 추가로 주어졌다면 나는 그중 반나절을 츠타야 다이칸야마 점에서 보냈을 것이다. 책 한 권과 시원한 카페 라떼 한 잔을 사들고 자리 잡고 앉아 책을 읽다가 바깥을 보다가 두 시간쯤 지나면 뜨거운 아메리카노와 달달한 케이크를 추가로 주문할 것이다. 그러면 서너 시간은 너끈하겠지. 서점 한 곳을 둘러보기 위해 굳이 다이칸야마에 가야 할까를 고민했지만 일부러 시간을 들여 찾을 이유가 충분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밤에는 불빛 가득한 나카메구로를 찾을 것이다. 다이칸야마에서 에비스를 지나 나카메구로로 벚꽃 구경을 갔다. 강을 따라 위로 아래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벚꽃 가득한 풍경을 부지런히 수집했더니 자연스레 나카메구로의 밤이 궁금해졌다. 좋은 풍경은 때론 호기심을 자아낸다.


따스한 햇살과 가벼워진 옷차림에서, 그리고 강을 따라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더해져 나카메구로에는 그야말로 봄기운이 완연했다. 이따금씩 불어오는 따스한 봄바람에 꽃잎들이 팔랑팔랑 나부꼈다.


강물 위로 흩뿌려진 꽃잎들이 세찬 물살에 떠밀려 물가에 켜켜이 쌓이는 광경을 오래도록 지켜봤다.


여행책으로 이로 님의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를 읽다가 책에 소개된 돈가스 가게 부타구미를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의식의 흐름.


너비 45mm, 높이 45mm, 두께 20mm의 크래커 5개가 주는 기쁨, 프레스 버터 샌드. 그리고 빵집 키무라야에 가기 위해 긴자를 찾았다. 프레스 버터 샌드를 구입하기 위해 일부러 도쿄 역에 가고 키무라야를 방문하기 위해 긴자를 찾는 부지런한 모습의 내가, 저도 가끔은 낯섭니다만.


대낮이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몰린 인파를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고 1층부터 5층까지 어마어마한 규모에 입이 떡 벌어졌던 무인양품. 알고 보니 무지 호텔 긴자 점이 오픈한 지 5일째 되는 날이었다. 새로운 시도와 새 것 가득한 매장을 꽤 오랜 시간 둘러봤지만 2박 3일 정도 머물며 길고 천천히 본다면 아마 더 재밌을 것이다.


해질 무렵 아사쿠사를 찾았는데 길거리에 시간을 뚝뚝 흘리고 다니기라도 한 것처럼 돌아오는 길엔 주변으로 짙은 어둠이 가득했다. 빨간 제등과 함께 아사쿠사 방면에서 바라본 스카이 트리가 근사했다.


활짝 열린 가게문 때문에 딱 잘라 실내라고 하기엔 조금 섭섭하지만 그렇다고 야외라고 부르긴 어려운, 반야외석에 앉아 시원한 바깥공기를 쐬며 꼬치구이에 맥주를 마시던 밤. 맥주의 첫 모금이 달큰했고 낯선 두부 요리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었던 까닭, 그리고 꼬치구이가 너무 맛있었던 건 어쩌면 모두 이 계절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여행도 반드시 그 계절 그곳이라야 잘 즐길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여름이라면 나는 시원한 바닷물에 풍덩 뛰어들 생각을 하며 오키나와를 갈 테고 가을이면 발갛게 물든 단풍을 그리며 교토, 겨울이라면 새하얀 눈으로 덮인 홋카이도나 유후인의 온천을 목적지로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봄, 봄, 봄이라면 도쿄에 갈 것이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도시를 마음껏 쏘다니고 날이 좋아 견딜 수 없는 하루 정도는 시간을 넉넉히 빼 두 눈 가득 벚꽃을 담고 싶다. 아무튼 벚꽃이 있는 풍경 속에서 제철과일 먹듯 도쿄를 여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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