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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Apr 19. 2019

돈가스 가게 부타구미에 갔는데 말이죠

부타구미 롯폰기 점

일본 여행을 가면 꼭 한 번씩은 돈가스 가게에 들릅니다. 하지만 여행을 준비할 때 제게 '이번 여행에선 꼭 맛있는 돈가스를 먹어야지'와 같이 결의에 찬 모습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좋아하는 돈가스 스타일이 도톰한 일본식 로스 가츠, 히레 가츠가 아닌 옛날 경양식집 스타일의 얇디얇은 돈가스를 좋아하기 때문이죠. 여행을 준비하다 어느 단계에 다다르면 자연스레 음식점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기 마련인데 검색을 하다 보면 일본에는 꼭 유명한 돈가스 집이 동네마다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안 가려고 일부러 마음을 단단히 먹은 게 아니라면 (이렇게 이름 난 가게가 많으니) 한 끼쯤은 돈가스를 먹어도 괜찮지 않을까란 마음이 되어 버리죠. 마침 이번 도쿄 여행에 가져간 책은 이로 님의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였으니 '돈가스 가게 부타구미에 갔는데 말이죠'로 운을 띄워봅니다.


4월의 도쿄니 벚꽃이 피었고 벚꽃 구경을 하러 나카메구로에 간 날이었습니다. 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벚나무들을 보고 감탄을 하다가 이쪽을 구경했으니 이번에는 저쪽도 봐야겠다 싶어 하염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돈가스 가게 부타구미 니시아자부 점의 라스트 오더(LO 14:00) 전에 가려면 적어도 지금은 출발해야 하는데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있자니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검색해보니 롯폰기 점은 브레이크 타임 없이 운영된다고 하여 마음껏 벚꽃 구경을 하고 니시아자부 점 대신 롯폰기 점으로 향했습니다.



부타구미 롯폰기 점도 역시나 오픈 키친이었습니다. 이로 님이 극장형 돈가스 집이라 비유한 돈키에 비하면 소극장쯤 되겠지만 홀과 키친에는 적지 않은 인원이 각자의 업무를 분담하고 있었습니다. 가령 손님이 자리에 앉으면 한 직원이 주방을 향해 "양배추 2개요~"라고 외치고 몇 분 내로 키친에서 건네진 양배추 샐러드가 자리로 서빙되는 식입니다. 철저한 분업화로 뒤편에 한 직원은 커다란 돼지고기 덩어리를 손질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고 마스터로 보이는 한 분은 같은 자리에서 돈가스를 컷팅하기만 합니다. 가끔 특제 돈가스가 나갈 때는 마치 마침표를 찍듯 경쾌하게 깃발이 달린 이쑤시개를 마지막에 콕- 하고 꽂아주십니다. 묵묵히 한 자리에 서서 로스 가츠를 6 등분하고 있는 마스터를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돈가스를 기다리는 마음이 다소곳해졌습니다. 돈가스를 자르는 그의 손길에서 성급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더군요. 단지 신중하고 정확한 컷팅이 있을 뿐이죠.


부타구미의 메뉴 구성에서 특이점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주문한 로스 런치 세트는 로스 가츠에 양배추, 미소, 그리고 절임 야채가 곁들여졌어요. 양배추에 드레싱을 몇 차례 끼얹고 겨자가 담긴 종지에는 돈가스 소스를 그리고 옆에 앉은 직장인을 따라 작은 종지에 소금도 몇 스푼 덜어내 봅니다. 고온으로 순식간에 튀겨낸 로스 가츠는 철망 위에 다소곳이 올려져 자리로 내어집니다. 일단 급한 마음에 겨자와 소스를 살짝 찍어 맨 끝에 있는 한 조각을 먹어봅니다. 겉면은 바삭하고 도톰한 고기는 육즙으로 가득하죠.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채 재빨리 양배추로 젓가락을 옮깁니다. 얇은 돈가스가 익숙한 저는 아무래도 느끼함을 빨리 느끼는데 그럴 때는 무조건 양배추죠. 돈가스 집마다 양배추를 괜히 산더미처럼 쌓아 주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는 돈가스를 소금에 찍어 한 입 먹고 야채 절임도 한번 먹어봅니다. 와, 근데 이 작은 야채가 느끼함을 한 번에 잡아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밥. 부타구미는 무엇보다 밥이 참 맛있었습니다. 윤기가 촤르르 흐르던 쌀밥은 그야말로 달았습니다. 각각의 전투력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식사에 집중하기로 합니다. 때론 천천히 때론 허겁지겁. 죄송하지만 잠시 식사를 마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후략)


일본에는 동네마다 꼭 유명한 돈가스 집이 있고 그 맛이 소문대로 좋다는 사실을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그렇게 발에 차이게 많은 돈가스 집에 멋 모르고 들어갔다가 제대로 실패한 기억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이번 도쿄행에서 돈가스라는 선택지는 이미 배제되었을 테니까요. 실패하지 않고 계속 성공한 경험담이 쌓이다 보니 일본 여행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마땅한 곳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여지없이 돈가스 가게를 찾게 됩니다. 다음에도 일본 여행을 갈 기회가 생긴다면 저는 먹고 싶은 음식을 추리고 마땅한 가게를 고르다가 '그래, 숙소 근처에 유명한 돈가스 집이 있다니 거기도 한번 가봐야겠다.'라고 쉽게 결심을 해버릴 참입니다.



とんかつ 豚組食堂 (BUTAGUMIDINING)

東京都港区六本木6-2-31 六本木ヒルズノースタワーB1



(*) 글 제목은 이로 님의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를 인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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