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결혼 이야기> 리뷰 / 노아 바움백 감독
영화의 시작은 이렇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어떤 면을 좋아하는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의 장점은 무엇인지를 한없이 섬세한 시선으로 하나하나 읊기 시작한다. 이를 테면 커다란 체격의 당신은 영화를 보다가 잘 울지만 항상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고 여느 남자들과 달리 (내가 부끄럽지 않게) 옷을 썩 잘 입으며 가끔은 질투가 날 정도로 아빠 노릇을 잘한다던지 같은 사실들. 꽤 오랜 시간을 연인으로 함께 했거나 부부라는 이름의 공동체로 묶여 면밀히 관찰하지 않았다면 절대 알 수 없는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영상 이후, 영화 내내 펼쳐지는 건 니콜(스칼렛 요한슨 분)과 찰리(아담 드라이버 분)의 이혼 과정에 대한 내용이다. 명색이 <결혼 이야기>인데 편지 내용이 끝나자마자 영화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혼 이야기라니.. 영화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고개를 갸우뚱한 건 바로 이 부분 때문이었다. 왜 <이혼 이야기>가 아닐까? 눈으로 영상을 좇고 귀로 대사를 담는 와중에 혼자 곰곰이 반문해보다가 결국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다. 결국 이혼이란 건 결혼 생활 전반은 물론 그동안 사소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던 것들을 낱낱이 반추하게 만드는 계기이기도 하니까.
영화에서 둘 사이에 존재하는 저 거리감만큼 각자가 현실을 깨닫는 시점에도 딱 저만큼의 간격이 존재한다. "내 연기 평하고 싶잖아 해봐. 안 그러면 당신은 밤새도록 잠을 못 잘 테니까"라고 이미 이혼을 하기로 합의한 상태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남편이 답답해할 것을 아니까 별로 듣고 싶지도 않은 두 가지의 연기 지적을 듣고 방으로 돌아와 눈물을 훔치는 영화 초반의 니콜이 있다면 영화 마지막이 되어서야 뒤늦게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온,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을 그제야 깨닫고 눈물을 글썽이는 찰리가 있다.
극 중에서 관객들이 니콜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건 한 사람을 더 많이 사랑한 어떤 감정 때문이기도 하지만 변호사 노라를 처음 만나 "그래서 요즘 어때요?"라는 한 마디에 그간 가슴에 담고 있던 감정들을 가감 없이 쏟아내는 인간적인 장면 때문이 아닐까.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그러다가 콧물이 흘러나와 자연스럽게 코를 풀고 이쯤 되면 상태가 엉망일 테니 화장실에 가서 거울도 한 번 보고 손도 씻는, 이건 현실적이다 못해 옆에서 실연당한 친한 친구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스칼렛 요한슨이 사실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멀고도 먼 배우임에도 말이다.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가오리 씨, 결혼 축하드립니다. 나도 한 번 밖에 결혼한 적이 없어서 자세한 것은 잘 모르지만, 결혼이라는 것은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별로 좋지 않을 때는 나는 뭔가 딴생각을 떠올리려 합니다. 그렇지만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 좋을 때가 많기를 기원합니다. 행복하세요. -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中
영화 <결혼 이야기>를 보고 떠오른 건 하루키가 안자이 미즈마루의 딸이 결혼할 때 축사로 보낸 짧은 몇 마디의 문장이었다. '좋을 때는 아주 좋습니다'라는 문장 안에는 '그렇지 않을 때는 아주 힘들기도 합니다'라는 내용이 괄호 안에 숨겨져 있지 않을까? 앞서 나열했던 장점들이 무색해질 정도로 이혼이라는 과정을 통해 둘 사이에는 상처로 남을 말들과 아픈 기억이 켜켜이 쌓이게 된다. 원만한 이혼을 원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변호사도 고용하지 않기로 했지만 우연찮게 니콜이 변호사 노라를 만나게 되면서 방향은 틀어지고 이에 맞서 찰리가 변호사를 찾고 결국 적수가 될만한 또 다른 변호사에게 일을 맡김으로써 상황은 다소 극적으로 치닫기까지 한다.
영화는 두번째 할로윈을 맞이하며 막을 내린다. 첫번째 할로윈에선 아들 헨리를 두고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닌자와 프랑켄슈타인 코스튬을 준비했던 찰리와 니콜이지만 이혼 소송이 마무리된 이후에는 그 모든게 무의미하단 걸 알고 있다는 듯 더 이상 옥신각신 하지 않는다. 아주 좋은 시기와 그렇지 않은 시기를 통과해 결국 결혼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면, 이제는 각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단 사실을 누구보다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