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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Feb 10. 2020

매기에게는 언제나 계획이 있다

영화 <매기스 플랜> 리뷰 / 레베카 밀러 감독

오랫동안 영화 감상을 취미로 여기고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무엇보다 '영화관에 가서' 영화 보는 행위를 즐긴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왓챠 플레이를 시작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거실에서 혹은 방 안에 앉아 영화를 볼 때면 드라마 한 편 재생시간인 40~50분을 기점으로 나의 집중력은 현저하게 떨어졌고 이내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거나 화장실이 가고 싶어 져서 결국 정지 버튼을 누르고 마는 것이었다. 왓챠에 가입하자마자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에 '보고 싶어요'를 부지런히 클릭했지만 생각만큼 많은 영화를 보진 못했다. 매달 한 두 편의 영화를 겨우 소화할 뿐이었다.


그런데 어제는 이런 악조건(?)을 뚫고 영화 <매기스 플랜>의 n차 관람을 마쳤다. 영화 <매기스 플랜>은 말 그대로 매기의 '계획'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인 매기는 주어진 선택지를 가볍게 찢고 나가 구글 설문지 옵션 5번에나 있을 법한 '기타 의견'을 선택하는 유형이며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때는 다시 빅 픽처를 수정해나가는 그야말로 거침없는 행동가형 캐릭터다. 남자사람친구의 정자를 받아 싱글맘이 되려고 한다던지 불만족스러운 현재를 기꺼이 반납하기로 결심하고 마치 비밀 작전을 수행하듯 현 남편의 전처와 협업하는 오지랖퍼 그녀를 볼 때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게 된다.


언뜻 들으면 막장 같은 스토리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놀라운 이유는 충격적인 줄거리에 비해 신파의 코빼기도 우울함의 그림자도 좀처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보다는 맞닥뜨린 현실을 비트는, 삶에 대한 낙관적 태도와 유쾌함에 나는 박수를 치고 만다. 코믹하고도 훌륭하게 장미 역할을 소화해내는 줄리안 무어나, 병풍 같은 캐릭터를 그럴싸하게 연기하는 에단 호크, 그리고 무엇보다 그레타 거윅이 소화하는 매기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가 마치 경쾌한 리듬에 맞춰 춤을 추듯 영화에 잘 스며들어있다.


아이맥스 상영관 G열에 앉아 <다크 나이트>를 관람하다가 화면 가득 배트카가 배트 포드로 변신하는 씬을 봤을 때의 짜릿함이나 커다란 상영관을 가득 메우는 비발디의 사계 여름 3악장을 들었을 때의 전율을 나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영화관에 가서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당장 다음 주에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작은 아씨들>을 보러 극장으로 달려갈 테지만 영화 <매기스 플랜>은 방구석에 앉아 모니터 위로 재생할 때 마저 사랑스러운 영화다. 봐도 봐도 즐거운 영화. 우울할 때 보더라도 적어도 1인치 정도는 기분을 끌어올려줄 것 같은 영화로 나는 <매기스 플랜>을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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