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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Feb 14. 2020

고전에 현대적 재해석이 더해질 때,

영화 <작은 아씨들> 리뷰 / 그레타 거윅 감독

불과 며칠 전인 2월 10일에는 고대하던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개최되었다. 한국 영화로썬 처음으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 감독상과 같은 주요 부문의 후보로 지명되면서 어느 때 보다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시상식이 진행될수록 기대가 현실로 실현되는, 짜릿한 순간을 맛 볼 수 있었다. 그 자리에는 쟁쟁한 작품들과 함께 자리를 빛내준 영화인들이 있었고 몇몇 기념비적인 수상소감 멘트가 남아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타임라인을 바쁘게 수놓고 있다. 오늘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5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으며 의상 부문에서 오스카를 거머쥔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바로 그레타 거윅 감독의 신작 <작은 아씨들>이다.


영화 <레이디 버드>를 통해 배우에서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그레타 거윅의 차기작을 오래도록 기다려온 팬들이 국내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십 대 소녀의 우울하고도 진지한 성장담을 위트 있게 그려낸 <레이디 버드>를 관람한 후 나는 다음 번에는 그녀가 어떤 이야기로 우리를 찾아올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작은 아씨들>의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원작이 있다면 그것도 고전이라면 관전 포인트는 이제 단 한 가지, 바로 그레타 거윅이 원작을 온전히 유지하는 동시에 얼마나 열심히 노를 저어 이 클래식한 작품으로부터 멀어졌을까라는 호기심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설마 뻔하디 뻔한 결말을 그대로 재현하진 않겠지란 믿음이 함께했다.


그레타 거윅의 <작은 아씨들>은 영화로썬 자그마치 7번째로 만들어진 작품이다.(영화는 물론 이 이야기는 시리즈 물로도 여러 차례 제작이 되었다.) 영화는 소설로 치면 1부와 2부를 무척 자유롭게, 그것도 여러 차례 넘나들며 이야기를 이끌어가기 때문에 초반에는 다소 산만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그레타 거윅의 필터가 씌워진 <작은 아씨들>은 서서히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여자도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과 영혼이 있어요. 외모만이 아니라 야심과 재능이 있어요. 여자에겐 사랑이 전부라는 말, 지긋지긋해요!"


거의 울부짖듯 대사를 외치는 조의 속 시원한 외침을 시작으로 그레타 거윅 감독은 슬슬 작전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그래, 위의 대사가 전부였다면 관객들은 왠지 모를 갈증을 느끼며 영화관을 떠났을 것이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 구조를 취하는 이 영화는 그야말로 허를 찌르는 피날레로 우리를 맞이하는데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자극적인 글을 쓰라고, 이야기의 결말은 당연히 여자 주인공이 결혼해서 두 사람은 그 이후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마무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집자의 제안을 조 마치는 왠지 모르게 시원스럽게 승낙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조의 대사가 이번 영화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레타 거윅다운, 영리하고도 현대적인 재해석이 아닐 수 없다.



"내 꿈이 네 꿈과 다르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야"


시얼샤 로넌이 진보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을 대표했다면 그 반대편에는 엠마 왓슨이 연기한 메그 마치와 에이미 마치가 있다. 나는 조의 선택을 지지하고 응원하지만 그렇다고 모두 그럴 필요는 없다고, 어떤 이에겐 직업적 성공이 최우선인 것처럼 사랑이 최우선일 수도 혹은 둘 다일 수도 있으니 주어진 여러 개의 선택지 중 각자 자신에게 맞는 행복을 찾아가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그레타 거윅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작은 아씨들>은 홍보 초반에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팬층을 보유한 배우 티모시 샬라메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던지 엠마 왓슨이라는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배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영화 <세상을 바꾼 변호인> 이후로, 영화팬들에게 다시 한 번 뭇매를 맞기도 했지만 역시 영화를 보고 나자 이 작품은 그레타 거윅이라는 감독과 배우 시얼샤 로넌이란 두 명의 이름으로 기억될 영화가 명백하단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그레타 거윅의 행보와 함께 <브루클린>, <레이디 버드>, 그리고 이번 <작은 아씨들>로 이어지는 시얼샤 로넌의 필모도 너무 소중하다!) 앞으로도 8번째, 9번째 <작은 아씨들>이 끊임없이 탄생할 테지만 그중 원작에서 멀리 떨어져 나와 영리한 결말을 보여주는, 이 일곱 번째 영화는 꽤 오래도록 회자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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