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이디 버드> 리뷰 / 그레타 거윅 감독
레이디 버드. 제가 저한테 지어준 이름이거든요
누구나 인생에 한 번쯤은 '레이디 버드' 시기를 거친다. 영화 <레이디 버드>를 본 사람이라면 이 뜻이 무엇인지 단박에 알아차릴 것이다. 나 자신이 너무 특별해지는 시기. 눈 깜짝할 새에 비대해진 자아가 곧 지구를 뚫고 우주에 도달할 것만 같은 시기다. 게다가 호기심은 또 얼마나 왕성해지는지 바깥 세상이 궁금해 견딜 수가 없어진다. 대도시를 선망하는 마음보단 어쩌면 이 지루하고 구린 도시를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한지도 모르겠다.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레이디 버드는 이 지긋지긋한 새크라멘토를 탈출할 계획을 세운다. 뉴욕이 베스트지만 꼭 거기가 아니더라도 뭐.. 코네티컷이나 뉴햄프셔? 같은 도시도 괜찮을 거라고. 그녀는 아마 이 작전에서 성공할 것이다. 왜냐하면 무려 '레이디 버드'니까.
영화 <레이디 버드>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자전적인 영화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새크라멘토(샌프란시스코가 아니다!) 출신인 감독은 1983년 생으로 자신이 지나온, 어쩌면 부끄러워 도망치고 싶은 청소년기를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그려내면서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켜냈다. 세상의 많은 것들을 저주하고 무모한 행동도 서슴지 않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그 시절 말이다. 그래서 한없이 시시한 새크라멘토를 풍경으로 구원의 노래처럼 느껴졌을 법한 앨라니스 모리셋의 [Hands in my pocket]이 배경 음악으로 울려 퍼질 때엔 그레타 거윅의 청소년기가 나도 모르게 그려졌다. 영화 속 레이디 버드처럼 그녀도 한없이 지루하게만 느끼던 새크라멘토를 자신이 꽤 좋아하고 있었단 사실을 아마 그곳을 떠나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영화를 보다가 참 많이 웃었고 생각보다 많이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이유는 엄마와 끊임없이 부딪히던 청소년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처럼, 달리는 차 안에서 뛰어내릴 정도의 깜냥은 되지 못했지만 대신 부모님에게 독한 말을 내뱉고 방 문을 쾅하고 닫았던 부끄러운 기억은 있기 때문이다. 레이디 버드와 그녀의 엄마는 (아빠의 말을 빌리자면) 둘 다 성격이 강해도 너무 강한데 두 사람은 분명 기질적으로 비슷한 구석이 있어 더 부딪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를 테면 한 마디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던지 마음속에 있는 말을 누르고 순화하기보단 굳이 솔직하게 바깥으로 드러내는 방식들이 그렇다. 하지만 겉으로 아무리 센 척하는 레이디 버드일지라도 결국 그녀도 엄마에게 지지와 사랑을 받고 싶은 17살 소녀일 뿐이다. 그리고 (아마) 그녀의 어머니는 하루라도 빨리 딸에게 냉정한 현실을 일깨워줌으로써 세상으로부터 조금은 덜 상처 받기를 바랐을 것이다. 17살의 딸을 둔 엄마의 역할이 그녀도 처음이었기에, 진심을 전하기엔 조금 방식이 서툴렀을지언정.
<레이디 버드>는 여러모로 디테일이 살아있는 영화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한 싱어송라이터 앨라니스 모리셋은 95년 데뷔 당시 그래미 4관왕을 차지한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신인이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와 같은 대중성을 내세운 댄스, 팝 음악이 유행한 시기였는데 앨라니스 모리셋은 그들과는 결을 완전히 달리했다. 다소 낯선 곡 분위기에 맞춰 어우러지는 대담하고 솔직한 가사를 보면 "와 대박..."이란 말이 절로 나오는데 그런 곡들을 10분 만에 썼다니 까무러칠 일이다. 비주류라고 구분 짓기엔 앨라니스 모리셋은 상업적인 성공과 명예를 동시에 거머쥐었고 당시 유행하던 것들에 조금 시큰둥했거나 특별한 것을 찾아 헤맨 경험이 있는 청소년들에게 그녀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앨라니스 모리셋 이후에 악기를 연주하며 곡을 쓰는 미셸 브런치, 에이브릴 라빈, 바네사 칼튼과 같은 뮤지션들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레이디 버드와 함께 중2병 어워드에서 어깨의 나란히 하는 카일 역의 티모시 샬라메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겠다. 밴드에서 (다른 악기도 아닌) 베이스를 친다는 설정이나 카페에서 혼자 담배를 피우며 벽돌같은 책 <미국 민중사>에 하염없이 빠져있는 모습이라던지 심지어 시끌벅적한 파티에서도 혼자 조용히 수영장으로 빠져나와 책을 읽는 이 남자를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쿨한 것에 죽고 쿨한 게 전부 인, 여자 친구의 마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무신경한 캐릭터를 티모시 샬라메는 너무 그림같이 잘 소화해낸다. 티미가 아니었다면 같잖아 견딜 수가 없었을 법한 캐릭터를 그가 살려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으론 우습지만 한편으론 또 너무나 귀엽고도 한심해서 또다시 웃음이 나오고야 만다.
크리스틴. 내 이름은 크리스틴이야
세상에 대한 기대도 희망도 컸던 시절도 결국은 지나가기 마련이다. 첫 섹스의 실망스러움이 전쟁의 슬픔에도 견줄 수 있을 만큼 거대하게 느껴지고 그토록 갈망하던 온갖 쿨한 것들이 결국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단 사실을 (비교적 빨리) 받아들이고 레이디 버드는 절친한 친구와 가족들의 곁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모든 게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간다. 운전면허를 따고 엄마가 차를 끌고 다니던 길을 본인이 드라이브하며 엄마의 기분을 살며시 느껴 보기도 한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새크라멘토 탈출에도 성공을 거둔다. 이상을 넘어서 현실로 그녀는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 모든 시기를 지나 마침내 자기 자신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이름으로 소개한다. "크리스틴. 내 이름은 크리스틴이야" 이는 한 시절에 대한 작별 인사이기도, 새로운 미래를 향해 던지는 첫인사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