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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May 10. 2020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삶

책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리뷰 / 보경 스님 저

저에게는 괜한 걱정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제 취미는 길냥이들에게 아는 척하기인데 이러다가 인터넷에서 본 것처럼 고양이가 나를 계속 따라와 덜컥 집사로 간택되면 어쩌지?!라는 (하지 않아도 될) 걱정입니다. 역시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곤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그런 운명적인 사건은 저에게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웬일로 와서 아는 척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산책을 나온 집고양이였고 스트리트 출신은 어째서인지 저를 보면 항상 도망가기 바쁘더군요.


어릴 적부터 철저하게 개 파(?)이던 제가 고양이에 관심을 두게 된 건 아무래도 SNS의 영향이 크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핸드폰 액정을 통해서 본 대부분의 고양이들은 그동안 제가 알고 있던 개와 정반대로 행동했고 어떤 때에는 예상을 벗어난 기상천외한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몇 차례 보다 보니 어느덧 고양이의 모습을 보는 것이 익숙해졌고 나아가 호기심이 모락모락 피어올라 웃기거나 귀여운 고양이 짤에 좋아요를 누르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와 장수 고양이 뮤즈의 인연은 얼마나 기묘한지, 어슐러 K 르 귄과 턱시도 파드의 만남은 얼마나 운명적인지...! 반려묘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담긴 작가들의 글을 보고 있으면 그들의 관계가 무척 근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를 생각해보면 꽤 놀라운 변화였죠.


사람의 미래는 조금도 예측할 수가 없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더 많이 한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나는 길고양이가 무서워서 피해 다니는 사람이었다. 길고양이가 발정기에 내는 울음소리를 들으면 귀를 막고 달렸다. 내 주위에도 고양이를 반려동물로 키우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도 고양이가 뱀만큼 무섭다고 말했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라다 보니 나도 자연스레 고양이를 무서워하고 싫어했던 것 같다.

그런게 혐오의 본질 아닐까.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무턱대고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거. 단 한 마리의 고양이와 알고 지내지 않았으면서,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으면서 막연하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리면서 쳐다보려 하지도 않았던 것.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 / 최은영


에세이집 <다름 아닌 사랑과 자유>에서 최은영 작가가 쓴 혐오에 대한 글은, 그야말로 정곡을 찌릅니다. 왜냐하면 저도 작가 님과 비슷한 경험을 해보았기 때문이죠. 어린 시절 제가 살던 아파트 화단에는 작은 굴 같은 게 있었는데 그곳에는 꽤 많은 길고양이가 모여 살았고 사람들은 그 생명체들을 도둑고양이라고 부르며 동네 골칫거리로 여겼습니다. 쓰레기봉투를 뜯어 아파트를 어지르고 마치 갓난쟁이가 우는 것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고양이에게 저도 그때부터 자연스레 부정적인 형용사들을 연결시켰습니다. 그리고 혐오라는 단어가 관심으로 바뀌기까지 이렇게 오랜 세월이 걸렸네요.


서두가 꽤 길었지만 오늘 제가 소개하고 싶은 책은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진 책입니다. (저와 달리) 보경 스님 앞에는 거짓말처럼 스트리트 출신의 냥이(치즈, 연령 미상)가 나타납니다. 그야말로 어느 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인 거죠. 스님은 처음에는 이걸 어쩌나.. 근심하시다가 이내 박스로 된 집을 마련해주고 먼 곳으로 떠났다가도 냥이가 걱정되어 부러 예정보다 일찍 일정을 마무리하고 돌아오시기도 합니다.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는 삶이지요. 가끔 냥이는 산책을 마치고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곤 하는데 그때마다 커다란 울음소리를 내며 "나 돌아왔다옹~~"하고 착실하게 보고를 해서 스님을 당황시키기도 합니다. 실로 존재감이 적지 않은 고영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이 책을 주로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읽곤 했는데 스님과 냥이의 모습을 그려보며 킥킥 대다가 시계를 확인해보면 어느덧 잘 시간을 훌쩍 넘겨, 읽고 있던 페이지를 부랴부랴 덮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게다가 스노우캣 작가님의 일러스트가 더해져 일단 책이 무척 귀엽기도 하고요. 챕터마다 부록처럼 더해진 냥이 Talk를 읽다 보면 초보 집사에겐 실용서 같은 책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을 다 읽고 나면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나만 고양이 없어!"






(부록) 고양이 없는 사람의 동네 고영 자랑
주말 오후면 항상 같은 자리에서 식빵을 굽던 고영. 나중에는 다가가면 아는 척을 해주었다.
동네 산책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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