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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nald Jun 11. 2020

6월의 어느 좋은 날

여유 있게 출발했더니 예약시간보다 20여분 일찍 도착했고 그동안 창밖으로 서울 풍경을 가득 담았다. 뿌연 하늘이 아쉬웠지만 최근 비행기를 탈 일이 없다 보니 높은 곳에서 보는 풍경이 어느 때 보다 값졌고.



스탠바이-



커다랗고 완만한 곡선, 그 위를 달리는 자그마한 차량들을 보고 있으니 미니카 경주를 구경하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생일 파티를 할 때면 사진사를 자처하며 여러 장의 사진을 남기곤 했는데 가족 생일 파티는 처음이었다. 오늘은 내가 사진사. 아빠의 칠순 생신 파티 날이었다.



서울이 아닌 이국의 낯선 도시들을 갈망하고 열렬히 흠모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도시 간 순위를 매기며 이곳보다 저곳이 낫다고 우열을 가리는 대신 서울에 대한 애정을 순순히 인정하기로 했다. 세상 어느 도시보다 좋아하는 장소와 가게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품고 있는 곳. 나의 도시 서울이다.



처음에는 접시 위에 올려진 한 입 거리 정도밖에 안 되어 보이는 음식을 보고 콧방귀를 뀌게 되지만 그런 접시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그러다가 한상차림의 식사가 나올 즈음엔 결국 배를 부여잡게 되는 게 한정식 코스의 미덕 아닐까?



유독 케이크를 커팅할 일이 많은 5~6월이지만 성냥을 그어 초에 불을 붙이고 다 같이 축하 노래를 부르다가 주인공이 입술을 오므려 있는 힘껏 초를 부는 찰나의 시간을 좋아한다. 요즘에는 주인공이 초를 꺼뜨리면 냉큼 여분의 성냥개비를 집어 들어 다시 불을 붙인다. 2차로 촛불 불 준비를 하고 있는 조카들이 있다.



한강 선착장에 도착하니 31도의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말을 맞아 바깥으로 나온 인파가 적지 않았다. 오빠네가 탄 오리보트는 초반에 꽤나 분주히 움직였으나 어느덧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았고 덕분에 내 시야를 벗어나지 않는 35번 오리를 향해 이날 나는 스무 번쯤 손을 흔들어 주었다. (위의 사진은 20번 중 17번째로 손을 흔들다가 찍은 사진이다.) 활짝 웃으시는 부모님과 땀을 뻘뻘 흘리며 뛰어 댕기는 조카들을 보며 왠지 모르게 흐뭇했던 날. 6월, 어느 좋은 날의 일기 끄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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