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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Mar 04. 2020

그저 한 사람이면 충분할 때도 있다

상담, 그 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



내 지인들 중에야 나와 같은 심리상담 전공으로 유학생활을 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상담이라는 전공으로 유학생활을 한다는 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있는 동네의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도 상담은 그리 흔한 전공은 아니다. "상담 유학"이 생경하게 느껴진다면, 그 이유 중 하나로 언어장벽을 들 수 있겠다. 영어로 심리상담을 한다고 하면 그냥 대충 생각해봐도 영어를 무척 잘해야 할 것만 같다. 상담이란 기본적으로 둘만의 시공간이 아득하게 펼쳐지는 상담실에서 내담자와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감정이나 심리에 대한 미묘한 뉘앙스의 상당 부분을 언어를 통해 이해하고 전달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 역시 미국에 박사생으로 와서 처음으로 내담자를 배정받았을 때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녔다. 부족한 영어로 내담자의 얘기를 잘 들어줄 수나 있을는지, 필요한 개입을 제대로 하지 못 하는 건 아닌지, 아니 그전에 내담자와 신뢰를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할 수나 있는 건지.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걱정들이다. 경험과 실력이 미천한 나에게 상담이란 모국어로 해도 영 쉽지 않은 것이다. 이런 까닭에 특히 첫 학기에는 매 상담 회기를 앞두고 마음이 요동했다. 하필 언어가 완전히 숙달되지 않은 외국인 상담자여서, 내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종종 들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걱정과는 별개로, 상담은 그럭저럭 진행되었다. 내가 상담을 '해냈다'라는 표현보다도 상담이 '되어졌다'라는 표현이 훨씬 잘 맞는 단어처럼 느껴진다. 더듬거리는 내 질문에도 그들은 골몰히 생각에 잠기고, 횡설수설하는 나의 공감에도 힘을 얻는 것을 목도했다. 시들어가던 사람들이 다시 피어나기도 하고, 회색 빛이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오기도 했다. 문제를 털고 일어서, 쭈뼛쭈뼛, 이내 성큼성큼 자신의 길을 찾아 나가는 모습들을 보았다. 상담의 시간이 쌓일수록 그들은 그렇게 다시 생에 대한 의지를 피워내는 것이다. 때로는 나의 불안에 발목이 잡혀 주춤거릴 때에도, 내 안의 주저함으로 인해 고개를 푹 파묻고 있던 그 순간에도, 내담자들은 그들이 성장해야 몫을 알아서 잘도 찾아나갔다. 


이러한 경험이 축적되다 보니, 내가 상담자로서 해야 할 일이란 내담자가 기대어 여린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그런 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이란 생각을 한다. 그런 한 사람이 곁에 있다면 그는 어려움과 역경을 극복할 것이고, 그 한 사람이 없을 때 그는 차츰 시들어갈 것이다. 평가와 비난 없이 그의 말을 듣고, 믿고, 지지해주는 한 사람이 되어주는 것이야말로, 상담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의 전부에 가까운 일이 아닐까. 많은 이들아 상담을 찾는 이유는, 결국 그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함이 아닐까. 그런 극단적으로 안전한 환경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꺼내보일 수 있다. 우리는 보통의 하루를 보낼 때 진짜 내가 누구인지는 관심도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끽해야 진짜 나로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혼자 있을 때 잠시뿐이다. 그렇게 외면당한, 그리고 덜 주목받은 나의 속마음과 감정들이 켜켜이 쌓일 때에, 더러는 마음이 고장나기 시작한다. 




'누가 나를 신경써주기나 하나', 라고 생각하는듯이 말하고 행동하는 내담자들이 있다. 또는 본인도 힘들면서 되려 친구나 부모와 같은 주변의 사람들을 챙기고 신경 쓴답시고, 곯아나는 자기 마음은 못 챙기는 내담자들이 있다. 그럴 때 나는 종종 이렇게 얘기한다. "I, care about, you." 이 세상 누가 날 신경이나 쓰냐는 듯 생각하는 이에게는 바로 "내"가 당신을 깊이 살피고 있다는 뜻으로 다가갈 것이다. 가족이나 친구들 또는 일 등에 우선순위가 밀려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이에게는 내가 신경 쓰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당신"이라는 메시지가 될 테다. 그닥 특별치 않은 이 말에 진심이 담길 때, 누군가에겐 가장 특별한 말이 될지 모른다. 나는 상담자로서 그런 믿음을 늘 지니고 있다. 


이렇듯, 한 사람에게 안전하고 따뜻한 한 사람이 되는 것, '내가 너를 신경 쓰고 네 얘기를 듣고 있어'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낼 수 있는 한 사람이 되어주는 일이 누군가에겐 얼마나 큰 의미가 되는지를 종종 되새겨 본다. 물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안전한 피난처가 되어주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을 때도 있다. 전문지식을 통한 구체적인 개입이 절실한 경우들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의 가장 중요한 본질은, 여전히, 한 사람을 그의 모습 그대로 담아내 주는 둥글고 넓은 그릇이 되어주는 일이다. 그런 넉넉하고 고요한 '담아냄'이 없다면, 이론 또는 전문지식의 유용성은 꽤나 퇴색되는 것은 아닐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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