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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Feb 28. 2020

우연히 오랜 이메일들을 열어보았다

타인들의 작은 친절들로 빚어진 나의 삶

쌓여 있는 일은 많지만 어느 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료한 어느 날 아침, 우연히 이메일 보관함의 켜묵은 아주 오래전 메일들을 들춰보게 되었다. 군대도 가기 전,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대학생 때의 이메일들이었다. 메일함의 옛 구석에는 정말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있었다.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 당시의 나는 지금보다도 훨씬 오지랖이 넓었고, 적극적이었고, 엉뚱했던 듯하다. 왕성한 열정과 호기심을 가지고 이런저런 워크숍이나 행사들을 자발적으로 찾아다니기도 했는데 그런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닥치는 대로 연락을 해보곤 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관심 있는 분야에서 종사하는 졸업한 학교 선배에게 대뜸 연락을 취해 궁금한 걸 물어보기도 하고 찾아가 만나기도 하는 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뜬금없지만, 그중에는 연극영화과를 전공하는 친구가 연결해준 극단의 뮤지컬 배우도 있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뮤지컬에 대한 정말 근거 없고 막연한 로망이 있었는데 (사실 난 공연은커녕 관람을 해본 적도 별로 없다), 스무 살이 넘고서도 여전히 남아 있는 호기심에 소개를 받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봤던 것이다. 그 외에도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계시는 어느 사회적 기업의 대표님, 유럽 또는 미주에서 박사과정으로 계시던 유학생 선생님, 청소년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공기관의 담당자 등 많은 분들과의 이메일 내역이 있었다. 그 내용들을 지금 읽어보면 참 낯간지럽기 짝이 없다. 이메일의 형식도 잘 갖춰져 있지 않고, 질문은 너무 브로드하고, 방향 없는 열정만 가득했다. 그럼에도 그분들은 모두 정성스레 답신을 보내주었다. 





얼마 전에 허지웅 씨가 게스트로 나온 TV 프로그램 <아는 형님>의 일부 클립을 보았다. 그는 최근까지 림프종과 투병하다가 건강을 많이 회복하고 얼마 전부터 다시 방송을 시작한 듯 보였다.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책을 기부하는 일을 시작했다고 얘기하는 그는 그의 삶을 거쳐간 어른들 중 좋은 어른들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사기도 여러 번 당했는데 그때마다 그 '어른'들이란 자들은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와 변명으로만 일관했다. 그래서 그는 그들과는 다른, 말하자면 좋은 어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보고 겪은 대로가 아닌 믿고 바라는 대로 자신의 삶을 가꾸어나가는 그의 모습이 귀감이 되었다. 


나는 스스로가 특별히 운수 대통하지도 불운하지도 않은 보통의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도 지금껏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왔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좋은 사람들' 가운데는 인생의 전환점이라 부를 만큼 내게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지도 못할 정도로 미미하게, 그러나 여전히 당시 나의 하루하루에 스며들어 내 삶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스무 살 청년으로부터 받은 호기심과 치기 가득한 이메일에 다정하고 친절하게 답신해준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가족, 가까운 친구, 은사님과 같이 내가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만큼이나 그 다수의 사람들이 조금씩 내 삶에 함께 참여하여 나라는 사람을 빚어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메일을 주고받은 사람들 중 대다수를 나는 그 이후의 내 인생에서 거의 완전히 잊고 지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마치 뭔가 무척 소중한 걸 잊고 지낸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과 소중한 걸 우연히 다시 맞닥뜨리게 되어 느끼는 반가움이 섞인 기시감 같았다. 아마 이런 이메일을 주고받던 당시에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알아서 혼자 자라난 줄로만 알았는데 실은 내가 믿는 신과 주변의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의 따뜻함과 돌봄으로 내가 클 수 있었다는 걸 10년 전 그때도 한 번 깨달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시간이 지나 다시 10년 전을 돌아보니, 내 삶은 가까운 나의 사람들이 굵직하게 남겨놓은 선 외에도 나를 스쳐 지나간 수많은 작은 점과 선들이 촘촘하게 얽히고설켜 내 삶을 채우고 있음을 깨달은 데에서 온 기시감이었다. 


정작 나는 잊고 지냈지만 나라는 미숙한 한 사람이 이렇게 어수룩하게 빚어져 가는 과정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되어 있었는지를 곰곰이 곱씹어본다. 내 삶의 나이테가 하나 둘 늘어갈수록 내가 얼마나 빚진 자인지를 더욱 알아가게 된다. 나는 빚진 자여라. 이 크고 작은 빚들을 어떻게 나만의 방식으로 갚아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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