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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Jan 19. 2020

간절함으로 삶을 산다는 것은

박사과정 인터뷰 과정을 바라보는 소회

"인생이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쇼펜하우어의 말로 알려져 있다. 욕망이 들끓는 때가 있으면 그 이후엔 반드시 권태가 찾아오고, 권태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취준생일 때는 이 직업만 가지면 더는 바랄 게 없을 것처럼 느껴지지만 막상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많은 이들이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거나 삶이 무료하다거나 하는 얘기를 한다. 누구도 막을 수 없을 듯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에게도 어김없이 '권태기'는 찾아온다. 그 시간을 잘 이겨내느냐 갈라서느냐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제는 내가 속한 프로그램의 박사과정 인터뷰가 있는 날이었다. 각각의 이유와 목적으로 인터뷰를 앞둔 지원자들의 얼굴에서 다양한 감정이 내비쳤다. 떨림과 설렘, 걱정과 불안, 그리고 간절함과 뜨거운 열망. 그 얼굴들에 권태로운 마음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려던 내 얼굴이 비추이자 상념에 잠겼다. 나도 그런 간절함으로 삶을 살아가던 때가 있었는데. 그게 언제였더라. 욕망과 권태 사이의 일직선에서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간절함은 첫 마음으로 가는 통로가 된다


간절함과 절실함은 우리에게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욕망이 현실이 되고, 내가 욕망하던 것에 너무나 익숙해졌을 때, 그때 그 시절 간절함은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는 통로가 되어주는 것이다. 


요새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를 한창 보고 있다. 사실 나로서는 내 인생 처음으로 보는 드라마나 마찬가진데, 여하튼 재밌게 보고 있다. 극 중 남자 주인공 용식이 (강하늘 분) 는 막무가내의 대명사다. 그는 한 번 마음을 먹으면 그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다. 그런 그가 정말 열렬하고도 간절하게 동백이를 사모한다. 재보는 것도 간 보는 것도 없다. 오로지 직진이다. 8회인가 9회 만에 여주인공 동백 (공효진 분) 과 벌써 뽀뽀씬이 나왔으니 아마 드라마 안에서의 둘은 해피엔딩을 맞이하겠지. 하지만 현실에서의 용식이라면 그에게도 역시 언젠가 권태는 찾아올 것이다. 그때 용식이는 처음의 간절함과 절실함을 생각해야 한다. 그럴 때에 그 권태를 극복하고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유학을 준비할 당시 나 역시 간절하게 지금의 자리를 원했다. 이 곳으로 유학을 올 수 있다면 정말 하루도 놓치지 않고 의미 있는 날들을 보내리라, 매일에 감사하며 성실하게 맡은 바를 다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나 역시 쇼펜하우어의 통찰을 피할 수 없는 연약한 한낱 인간임을 느낀다. 시간이 지나며 내가 하는 이 일들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방황도 하고, 당시엔 보이지 않던 이 자리의 단점들을 보며 푸념이 나오기도 한다. 그때에 나는 나의 첫 마음, 초심을 떠올린다. 아니, 그 마음이 절로 떠오른다. 간절하고 절실했던 마음. 내가 믿는 절대자 앞에서 절절하게 읍소하던 마음이. 그러고 나면 그때의 쥐뿔도 없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던 쭈굴쭈굴한 나의 타박에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하루를 임하게 되는 것이다. 


간절함은 다른 이에게 전달된다


간절함은 다른 이에게 생각보다 쉽게 전달된다. 간절한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밖에서 보기에 구분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자신의 간절함을 설명하지 않아도 그 간절하고 절실한 마음이란 그의 말에서, 행동에서, 표정에서 배어 나오기 마련이다. 삶의 모든 자원과 에너지를 끌어모아 지금 강력하게 원하고 바라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때, 사람들은 그 간절함을 알아본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움직인다. 


내게 유학 지원 준비의 과정을 묻거나 조언을 구하는 분들이 종종 있다. 그중엔 잘 아는 지인들도 있지만 생면부지인 분들도 계시다. 나는 가능한 어떠한 조건 없이 모든 분에게 내가 보고 듣고 경험한 바를 진솔하게 나누고자 하는 편이다. 생면부지인 나에게 양해를 구하며 연락을 해 올 정도면 그분 역시 어느 정도 이상의 간절함을 지니고 원하는 바에 골몰히 전념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절실함이 있었을 때는 스스로의 염치없음을 눈 감아주고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받았었다. 내가 넉넉하지 않은 시간을 쪼개 그분들에게 나름 성심성의껏 답을 하고 정보와 자료를 공유하는 건, 그분들의 간절함에 대한 존중이자 최소한의 갖춤새인 셈이다.




학부 시절의 은사님께서는 늘 말씀하셨다. 간절함이야말로 우리 삶에 대해 가져야 할 중요한 태도이자 나아가야 할 길이라고. 그 이유는 간절함이 우리의 무기가 되며 다른 것들을 이겨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이십 대 초반의 나에게도 그 말은 사실 어느 정도 와닿았었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자 그 말의 뜻이 새삼 더 가까이 와 닿는다. 


간절함이 항상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간절함으로 박사과정 인터뷰에 임한 오늘의 모든 지원자들이 좋은 소식을 듣지는 못할 것이다. 그건 간절함의 배신일까. 그렇지 않다. 여전히 간절함은 욕망이 현실이 되었을 때에 교만과 권태에서 겸손과 낮아짐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는 안전장치가 되며, 욕망을 이루지 못한 경우에도 역시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이 되어 또 다른 기회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정말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다는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말도 같은 맥락 아닐까. 그래, 별다른 특출남이 없는 내게는 이만한 무기도 없다. 오늘도, 내일도, 간절히,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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