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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덩 Oct 31. 2021

세상에는 틀린 공감도 있다

부정확한 공감은 약이 아닌 독이 되기도 한다

공감 어린 말을 듣고 고개를 갸우뚱했던 날


이제 곧 둘째 아이가 태어난다.  주변에 가까운 친지들에게 소식을 알렸을 때 주변의 반응은 의외로 갈렸다.  물론 축하와 격려를 건네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한편으로는 걱정과 위로를 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축하인사를 건네면서도 말 뒤에 "앞으로 더 힘들겠다.." "이제 어떡하니.." 라며 진심 어린 말들을 건넸다.  하지만 나름 진심으로 전하는 그 공감의 말들이 마음에 크게 와닿지 않았다.  실은 뭔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마저 아주 살며시 들었다.  좋은 마음으로 건넨 따뜻한 말들을 듣고도 난 왜 그랬을까. 


나와 아내에게 둘째는 소망하던 바였고 그저 타이밍의 문제였다.  첫째 때 응급 상황이 있어서 당분간 2-3년 간은 둘째를 가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좋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권고를 들었었고, 첫째 출산 이후 나와 아내 둘 다 학위과정을 거치며 몇 년을 숨 가쁘게 보냈다.  그리곤 아내가 학위를 마칠 무렵, 우리로서는 좋은 타이밍에 기다리던 둘째 아가가 찾아오게 된 것이다.  물론 첫째 육아를 하며 육아가 만만치 않음을 알기에 긴장도 되지만 설렘이 컸다.  그래서였을까, 좋은 의도임을 알기에 기분이 상할 정도는 물론 아녔지만 기분이 썩 좋지도 않았던 것이다.  나로서는 "아, 네 뭐.. 그렇죠" 정도의 뜨뜻미지근한 반응이 최선이었다. 




'경청'이 없이는 '공감'도 없다


공감은 상담에서 가장 중요한 기초기술 중 하나다.  오죽하면 학교에서 아이들이 상담 선생님을 "구나"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할까.  아이들의 말마다 "그랬-구나" "힘들었겠-구나"라고 답해주기 때문이다.  공감은 상담에서 뿐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중요한 대화의 기술이기도 하다.  그 중요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테지만 '공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답이 왕왕 갈린다.  일각에서는 공감을 따뜻한 말 또는 위로의 말 정도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또는 그냥 상대가 했던 말을 부드럽게 똑같이 반복해주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이해하는 보다 정확한 공감의 뜻은, 상대의 옷을 입고 상대의 신발을 신고 상대의 시야로 바라보는 일이다.  즉, 나의 틀을 벗어나 그 사람의 틀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의 대전제는 "경청"이다.  경청이 없이 듣는 이의 마음에 와닿는 공감을 전하기란 무척 어렵다.  경청이 우선되지 않고 나오는 공감은, 대개 스스로의 틀 안에서 이미 상대의 상황을 판단하거나 해석한 것을 토대로 하게 된다.  둘째를 가졌다는 나의 기쁜 소식에 "힘들겠다..."로 반응한 이들은 아마도 그들의 틀과 경험에 기반한 진심이었던 셈이다.  육아란 힘든 것임을 알고 둘째가 나오면 더 힘들어진다는 통념 또는 경험을 바탕으로 나 역시 그럴 것이라 가정을 한 것이다.




틀린 공감을 피하는 방법


상담에서도 종종 부정확한, 또는 틀린 공감이 일어나곤 한다.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얘기할 때, 그게 누가 봐도 힘든 일일 때, 그에 대해 곧장 '많이 힘드셨겠어요'라고 반응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의도야 어떻든 간에 이 경우에 그 공감이 정확하게 내담자의 마음에 닿을지는 미지수다.  내담자가 그 일에 연관된 감정을 직간접적으로 이야기하기 전에는 상담자로서 내담자가 그 경험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내담자는 의외로 힘들지 않았을 수도 있고, 심지어 필시 고통스러웠을 것만 경험을 통해 자신이 깨달은 통찰과 성장한 바를 나누고 싶어 할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틀린 공감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정확한 공감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먼저 조금 더 깊이 이해하려 할 필요가 있다.  먼저는 상대의 '비언어적 단서'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얼굴의 표정, 말투와 목소리, 다리를 떨고 있진 않은지 등  비언어적인 단서들이 주는 힌트에 따라 언어적 내용의 해석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감에 앞서 '열린 질문', 즉 방향성을 미리 정해두지 않은 질문을 통해 내담자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  "많이 힘드셨죠?"와 "어떠셨어요?"의 차이다.  그리고는 다시 공감의 대전제로 돌아가 상대의 말과 몸이 전하는 이야기들을 오롯이 '경청'한다면, 공감의 말을 하고도 상대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할 일은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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