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도 키우면서 일도 하고 박사과정도 하고 대단하다!"
박사과정을 할 때나 지금이나 종종 듣는 말이다. '대단한 일'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게 내게 얼마나 '버거운 일'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수긍이 가는 말이기도 하다. 가정과 직장 등에서의 여러 혼재된 역할이 요구하는 일들을 동시에 수행해 내는 게 종종 버겁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돼 있기에 어느 한쪽에 힘을 쓰면 다른 한쪽엔 소홀해지기 쉽다.
우리 부부는 여태껏 집안일을 배분하거나 지정한 바가 없다. 우리가 함께 육아, 요리, 설거지, 빨래, 청소 등이 총망라된 가정의 일을 돌보는 방식은 제법 조화롭고 자연스럽기도 해서 유기체와 같다. 물론 어떤 일을 주로 누가 더 많이 한다거나 하는 일들도 있고, 필요할 때는 내가 이걸 할 테니 넌 이걸 해 주렴, 하고 임의적으로 일을 나누기도 한다. 그래도 대부분의 경우 많은 가정의 일들은 서로의 자발성에 맡겨져 있다. 그렇기에 톱니바퀴처럼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큰 구멍 없이 유지가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은 내가 생각해도 집안일에 정말 많은 시간을 쏟기도 한다. 그런 날들은 직업인으로의 나의 일이 아닌 가사노동이 나의 주된 일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누가 나에게 시키거나 부담을 주는 것도 아니고, 당장 해야 할 다른 일들도 많다!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있는데도, 내 손발은 이상하게도 자꾸만 주방으로, 빨래방으로 향한다.
그런 순간들이 있다. 해야 할 일들은 산더미인데 하고 싶지도 않고 왠지 뭔가를 해낼 힘도 없는 것처럼 순간들. 이메일에 답신도 해야 하고, 연구비 신청서도 작성해야 하고, 논문도 작성해야 하고, 데이터 분석도 해야 하는데, 도통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시작이 반이라고들 하는 이유는 그만큼 시작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에도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좋게 봐주자면 '잘하고 싶은 마음' 때문일 테다. 잘하고 싶은데 잘하지 못할까 봐, 인정받을만한 결과물을 지금 당장 만들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불안하니깐 불편해서 회피하게 된다. 회피, 즉 할 일은 많은데 하지 않는 내 모습을 보는 건 또다시 불안을 일으킨다. 불안과 회피의 악순환이다.
이렇게 불안이 찾아올 때, 나는 집안일을 시작한다. 쌓여 있는 그릇들은 슉슉 헹궈서 식기세척기에 넣는다. 식탁 밑에는 아이가 점심을 먹다 흘린 밥풀과 음식 조각들이 낭자하다. 청소기를 돌린다. 소파 위의 간식 부스러기도 청소기 행이다. 잘 놀고 있는 둘째 아이 기저귀가 빵빵하게 차오르진 않았는지 괜히 한 번 만져도 본다. 아직 좀 둬도 될 법 한데 그냥 갈아준다. 티브이에 앉은 먼지도 닦고, 책상의 커피 얼룩도 닦는다.
그 후로도 온 집을 들쑤시고 다니며 이런저런 정리를 한다. 이제 보기에 좀 낫다. 소파에 앉아 주스를 한 잔 마시며 숨을 돌린다.
한바탕 집안일을 마치고 나면 불안이 조금 사그라든다. 뿌듯함도 조금 느껴진다. 시간도 들고 힘도 드는데 굳이 쌓인 할 일을 하지 않고 집안일과 육아에 힘을 쏟는 건, 집안일과 육아가 그 자체로 좋은 핑계가 되기 때문이다. 내 일을 내가 기대하는 만큼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 그리고 좋은 연구자, 좋은 선생이 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는 걸로 어느 정도 상쇄된다. 뭔가 어쨌든 언젠가 해야 할 일을 하는데 시간을 썼기에 죄책감을 덜 느끼는 원리다. 허구한 날마다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굳이 책상 정리를 하면서 공부를 안 하는데에 대한 면죄부를 받던 바로 그 원리.
집안일은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확인하는 비교적 손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좋은 연구자가 된다는 건 내게 단번에 이룰 수 없는 부담스럽고 거창한 목표에 속한다. 그에 비해 집안일은 고작 30분 또는 1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시간과 에너지를 쓴 것에 대한 결과와 보상 (예: 깨끗해진 집안 풍경)도 눈에 선명하게 보인다. 처음에 시작할 때 목표를 가지고 집안일에 착수하면, 임무를 완료한 뒤 목표를 달성했다는 성취감도 얻게 된다. 여러모로 나의 존재가치를 미약하게나마 확인해주는 가성비 좋은 방법인 셈이다.
가사노동은 활발한 신체활동을 촉진시키기도 한다. 아이를 돌보거나 놀아주는 일이든, 집안을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며 청소를 하는 일이든 몸을 많이 움직이고 쓰는 일이다. 몸을 쓰고 움직이면서 머리를 비우게 된다. 실제로 많은 연구들이 운동과 활발한 신체활동은 불안을 예방하기도 하고 불안의 증상을 경감시킴을 보고하고 있다. 운동이나 운동 수준의 신체활동은 cortisol과 같은 몸의 스트레스 호르몬도 태워 버린다.
내 스마트시계의 화면에는 지난 수년 동안 거의 매일 1만 보 이상이 찍혔다. 1만 보가 되지 않는 날도 있지만 여전히 최소한 7~8천 걸음은 된다. 심지어 코로나로 인해 대부분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겨울이라 밖을 아예 잘 나가지 않게 되는 요즈음도 그렇다. 집안일과 육아가 없었더라면 어려웠을 양의 걸음 수다.
오늘 내 스마트워치에는 무려 1만 4 천보의 걸음이 기록됐다. 그렇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다음 주 개강을 앞두고 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쌓여 있었지만 왜일까, 괜히 그럴수록 더 하기가 싫은 건. 집안일과 아이 핑계로 오늘도 농땡이를 치고 말았다.
'일은 하나도 못했지만 아빠와 남편으로서 꼭 필요한 일들을 했으니 오늘은 그걸로 됐지, 뭐.'
사실 되긴 뭐가 되겠나. 망했다면 망한거지. 수가 눈에 훤히 보이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숨통을 틔여주는 꼭 필요한 자기합리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