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경제적으로도 너무 어렵고, 정치는 타협과 조정보다 일방적으로 대립하고, 뜨거운 기온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른 기후 이상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내일은 태풍 카누가 우리나라에 상륙한다고 합니다. 잼버리는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다른 일정으로 대치되고 있고요. 한마디로 관리체계가 흔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립을 멈추고 모두 힘을 합해도 쉽지 않은 상황인데 현재 정치 상황을 보면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시순환에 순응하는 살아가는 만물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가장 좋은 것은 과학적으로 모든 자료를 동원해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최선이죠. 그런데 이런 것은 또한 정치적으로 서로 힘을 다해야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가 있습니다.
역학을 공부한 저로서는 주역을 통하여 이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믿고 안 믿고는 각자의 판단일 뿐입니다. 주역 점사를 통하여 스스로를 다스리고 수신하는 데 주역은 정말 좋은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양자물리학과 역학의 관계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기도 합니다. 전문적인 얘기는 나중에 하고요.
8월 9일 10시 20분에 천부경을 뇌뇌이면서 하반기의 상황과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 뜻을 물어보았습니다.
주사위에 펼쳐진 의미를 주역 괘상으로 전환하면 수택절 상효동이 됩니다.
60번째에 해당되는 수택절의 괘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節亨苦節不可貞
절 형 고절부가정
절(節)은 형통하도다. 고절(苦節)은 가히 바르지 못하니라.
제 주역 저서의 해설을 그대로 게재합니다.
절(節)은 순리를 따르고 도리를 벗어나지 않는 절도(節度)를 의미한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고 한도(限度)를 지켜 무위자연(無爲自然)한다면 형통(亨通)하다는 것이 절(節)의 도(道)이다. 봄에는 만물이 생화하고, 여름은 만물이 생장하며,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만물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는 것이 계절의 순리이니 이를 어기지 않고 순행함이 절(節)이다. 만일 시간의 순리를 따르지 않아 법도가 흐트러진다면 만물은 바르지 않게 된다. 고절(苦節)이란 시간의 흐름이 계절의 법도와 맞지 않아 만물이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도 이를 받아 순리(順理)를 지키고 절도를 세워 도리에 맞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절(節)은 한(限)이다. 물이 연못의 한도(限度)를 넘어 서면 흘러넘치거나 연못의 둑이 터진다. 연못의 용량에 한계가 있듯이 저마다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는 서로 다르다. 한도를 지키는 절제가 쓰디쓴 괴로움일 수도 있지만 누군 가에게는 절제가 달콤하거나 안락할 수도 있다. 자신의 그릇을 무시하고 한도를 넘어서게 되면 절제가 괴로움이 될 수 있으니 고절(苦節)의 뜻이다. 절제(節制)는 적절해야 한다. 절제가 과도하면 오히려 흉이 되는 것이다.
절과 고절에 대해 설명해 보죠.
절(節)
절(節)이 형통함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절도(節度)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자연의 이치가 과하거나 모자라 형평에 치우친다면 자연으로서의 삼라만상은 존재할 수가 없다. 절(節)의 괘상을 보면 강효(剛爻)와 유효(柔爻)가 적절하게 반반씩 나뉘고, 剛(九五)이 中의 얻어 中正함을 지키니 절도(節度)가 있어 형통(亨通)한 것이다.
고절(苦節)
못이 규모에 맞지 않게 물을 담으면 넘치고, 둑이 약하면 터지니 스스로 절도(節度)를 지켜 절제(節制)해야 형통하다. 만일 계절이 시간을 따르지 않고 흐트러진다면 만물이 당황하여 이를 따르지 못하므로 가히 바르지 못하게 되니 생명의 도가 궁(窮)해진다. 절제가 순리를 따르지 못하고 과도하다면 그 자체가 괴로움이니 고절(苦節)이로다(上六).
공자님은 상전에서 수택절을 다음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象曰澤上有水節君子以 制數度議德行
상왈 택상유수절 군자이 제수도 의덕행
상에 이르길, 못 위에 물이 있음이 절(節)이니, 군자는 이로써 수리(數理)를 밝혀 법도(法度)를 제정하고 덕행을 논한다.
연못은 그 크기가 정해져 있으니 적절한 양의 물을 담아야 한다. 한계를 넘어서면 가득 차 넘치게 되니 절도(節度)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군자는 이러한 절(節)의 상을 보고 수리(數理)를 밝혀 도수(度數)를 세우고 법도(法度)를 제정한다. 세상만사는 무질서하게 흐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순리를 따르고 있는 것이니, 인사(人事)는 법도(法度)를 세워 정의(正義)로써 다스리고, 물건의 이치는 대소(大小), 경중(輕重), 고하(高下) 등 도수(度數)를 제정하여 질서를 세운다.
덕행(德行)을 논한다 함은 덕을 행함에 있어 절도(節度)에 맞음을 구하는 것이다. 행함이 지나치면 흉하니 만사(萬事)는 절제(節制)함이 필요하다. 험(險)☵ 속에서도 기뻐함으로 행하고, 中正함으로써 자기 자리에서 절제를 지킨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九五의 中正함으로 만물은 통하는 것이다(說以行險 當位以節 中正以通).
이번 점에서는 수택절의 상효가 동했죠. 상효를 살펴보겠습니다.
절도(節度)는 나아가고 물러섬이 절제(節制)되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못(澤)의 수문이 적절하게 조절되지 않아 과하거나 모자라게 되면 못을 기반하여 사는 생명이 흉함에 처하게 되죠. 절도는 스스로 원해서 할 때 평안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 자체가 괴로움이 됩니다.
上六 苦節 貞凶 悔亡
상육 고절 정흉 회망
상육, 절제가 괴로움이니 고집(貞)하면 흉하고 뉘우치면 사라지리라.
물은 넘치면 흘러 나간다. 연못 안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순리를 따라 흘러나가는 것이 길하다. 효변하면 중부(中孚☴☱)이니 못☱(安)의 양(陽)이 적절하게 흐르는 모습☴(流)이다. 하괘☱에서 갇혀있는 2개의 양이 상괘☴에서는 나가있는 모습이니 막히고 통하는 적절한 상태이다. 물은 한 곳을 고집하지 않으니 있을 때에는 모여 그치고 나아가야 할 때는 때를 잃지 않고 흐른다. 중부(中孚)는 절도(節度)와 중도(中道)를 지키는 상이다.
上六은 절(節)의 상극에 처하여 자리가 바르다. 그러나 이미 밖으로 흘러 나갔어야 하는 자리이니, 연못에 남아있는 물의 양이 과도하다. 그러므로 음유(陰柔)한 소인이 너무 제 자리를 고집(貞)하게 되어 일어나는 일로서 오히려 절제가 괴로움이 되는 것이다. 흉하다. 억지로 절제함은 고절(苦節)이니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상육이 뉘우쳐 효변하면 巽風☴이 되어 六三에 의해 갇혀있던 두 개의 양☱이 음(六三)의 밖으로 나아가 中孚☴☱의 상이 되는 것이니 회(悔)가 사라지게 된다.
절도(節度)가 극에 달하면 절(節) 그 자체를 행함이 괴롭다. 上六은 절(節)의 상극에 거하고 험(險☵)의 극에 처하였으니 절(節)의 도를 행함이 괴로운 자이다.
지나치게 절제(節制)와 절도(節度)를 고집하게 되면 융통성이 부족하여 일을 그르치게 된다 그래서 공자는 융통성 없는 쓸데없는 고집에 대해 ‘고절정흉(苦節貞凶)은 그 도가 궁하기 때문이로다(象曰 苦節貞凶 其道窮也)’라고 경계하였다.
못☱의 꼭대기에 있는 물(上六☵)은 연못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밖으로 흘러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못도 살고 못 주변의 생명도 산다. 물이 못을 나아가야 할 때는 때를 놓치지 말고 흘러 나가야 하는 것이다. 물은 멈추면 썩고, 흐르면 항상 새롭다. 절(節)의 궁극에 처하여 절도(節度)를 유순하게 하며 때를 따라 적절하게 변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변하면 중부(中孚)이니 닭이 알을 품듯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절도를 과도하게 고집하면 흉을 면치 못하니, 때를 따라 융통성 있게 변해야 사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