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계사전은 "한번 음하면 한 번은 양하며 가는 것이 도다(一陰一陽之謂道)"라고 음과 양의 작용성에 대하여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강유가 서로 밀고 당기는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를 일군다(剛柔相推而生變化)”라고 변화가 일어나는 원리를 설명하고 있죠. 변화란 음양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중화를 의미하고 이는 곧 만물을 가리킵니다.
만물이란 대립적 성질의 음양이 상호작용을 통해 이룬 중화를 의미하죠. 만물이 다양한 것은 음양의 대소 장단 강약이 서로 중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음양이 편재된 다양한 중화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중화란 완전한 평형을 뜻하는 적중(的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음과 양이 다양한 형태의 편재와 편중을 이룸으로써 다양한 특성과 형태를 가진 만물이 일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국의 역학자인 래지덕은
"음양 대립은 자연계 및 인류사회의 보편법칙이다. 따라서 팔괘 상착이라는 역리의 핵심은 바로 사물이 지닌 모순 대립의 보편성을 반영한다."
“천지조화의 이치는 음만 홀로 생성할 수 없고 양만 홀로 생성할 수도 없다. 양강이 있으면 반드시 음유가 있고, 남자가 있으면 반드시 여자가 있다. 그래서 팔괘가 상착한다.”
라고 상반적 성질의 음양이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호의존하는 본성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음양의 상반성은 역을 활용하는 실제 사주명리학에서는 대운과 12 운성에서 시간의 흐름을 순행과 역행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주명리학은 시간을 다루는 학문이죠. 낙서 구궁도의 수리를 활용하는 점법에서도 시계 방향인 순행과 시계 반대 방향인 역행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연과학적 시간이 과연 거꾸로 흐를 수 있는가'라는 과학에 부딪히게 됩니다.
양자물리학에서는 어떻게 시간을 정의할까요? 사실 시간의 개념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적으로 내려진 정의는 없습니다. 다양한 담론이 있을 뿐이죠. 과학자가 아닌 동양철학을 논하는 저로서는 더더군다나 이러쿵저러쿵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처지도 아닙니다.
양자역학에서는 시간을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역동적인 변화의 과정을 나열하고, 이를 시간이라는 단위로 쪼개어 놓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시간이라는 것은 정의된 개념일 뿐이고, 음양의 대립과 상호작을 통한 변화의 과정이 있을 따름인 거죠.
그러나 어찌 설명하든 우리는 시간으로 정의된 변화의 과정을 따라 흘러가고 있습니다.
시간은 미래로만 흘러가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역행은 어떻게 설명해야 되지?
우리는 자연시간을 연구하는 과학자가 아니라, 인문적 시간을 탐구하는 인문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물의 변화 과정을 단계별로 쪼개어 놓고 순서대로 이름을 붙여놓은 것이 시간이라면, 차라리 시간이라는 개념을 없애고 음양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꼭 순행과 역행이라는 단어의 의미에 구속받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변화가 곧 시간이 아니고 음양의 작용이라면, 음양의 상호작용을 플러스(+) 마이너스(-) 파동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파동의 과정을 구분하면 다시 시간이 되겠죠.
양(陽)이 왕(旺)하는 것은 곧 음(陰)이 쇠(衰)함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음양의 파동으로 나타내면 음양이 서로 일진일퇴하며 부딪히고 화합하며 갈마드는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를 의미하죠. 순행과 역행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으로만 이해하면 12 운성의 순환을 논리적으로 이해하는데 한계가 생기게 됩니다. 음과 양이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는 가능한 일 아니죠. 계절이 거꾸로 흘러갈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계절이 춘하추동 흘러가면서 만들어내는 생로병사(生老病死),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이치가 거꾸로 뒤집힐 수도 없는 일이구요. 어찌 되었든 아직은 담론일 뿐입니다.
상반적 성질의 음양은 움직임이 서로 반대입니다. 반대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순행의 반대는 역행이니 나름 타당합니다. 그러나 순행과 역행이 서로 반대로 움직인다고 보는 것도 너무 이론적이죠.
그러므로 순행은 역행과 반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파동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과학적이고 합리적일 수도 있습니다. 음과 양은 서로 파동이 다르므로 음양의 파동이 서로를 간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죠.
두 파동의 골짜기와 골짜기가 만나 진폭이 커지는 경우를 보태기 간섭이라 하고, 한쪽 파동의 마루와 다른 파동의 골이 일치하면 서로 상쇄되어 일직선이 되는 경우를 빼기 간섭이라 합니다. 주역 계사전은 이것을 일음일양지위도(一陰一陽之謂道)라 하여 ‘한번 음(陰)하고 한번 양(陽)하는 것이 도(道)이다’라고 정의하고 있죠. 우주는 서로 다른 음양이라는 두 대립자가 대립과 상호작용의 과정을 통해 균형과 조화를 향해 질서를 세워가면서 만물의 형질인 오행을 만들고, 오행은 만물의 형상을 생성해 가는 것입니다.
좌행과 우행은 아직 이론적 근거가 제대로 제시되지 못하고 있으며 더 많은 연구와 자료가 요구됩니다. 즉 과학적으로 많은 검토와 이론적 구성이 필요한 부분이죠. 어떤 이는 양생음사(陽生陰死), 음생양사(陰生陽死)를 주장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양생음생(陽生陰生), 양사음사(陽死陰死)를 주장하기도 합니다.
양자물리학자인 프리초프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에 나온 내용을 소개합니다.
장 이론(場理論)의 수학적 형식은 이 선들이 두 가지 방법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데, 시간상 앞쪽으로 전진하는 양전자의 경우(순행)와 ‘시간상 뒤로 움직이는’ (음) 전자의 경우(역행) 두 가지 방법이다. 이 해석은 수학적으로도 일치한다. 이와 같은 표현은 과거에서 미래로 이동하는 하나의 반입자, 혹은 미래로부터 과거로 이동하는 하나의 입자를 기술해 준다.
그리하여 이 두 개의 도표는 시간상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는 동일한 과정을 그림으로 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두 그림은 전자와 광자의 산란으로 설명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의 과정에서는 입자가 시간상 앞으로 전진하며 다른 과정에서는 그 입자가 뒤로 후퇴한다. 이리하여 입자 상호작용의 상대성이론은 시간의 방향에 관련되어 완전히 하나의 대칭성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시공의 도표들은 이 둘 중 어느 하나의 방향으로 해독될 수 있다. 모든 과정에는 역으로 된 시간의 방향과 반입자들의 의해 대치된 입자들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동등한 과정이 있다.
아원자 세계의 이 놀라운 특징이 어떻게 우리의 공간과 시간에 관한 관점에 영향을 끼치는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다음의 도표에서 보여주는 과정을 생각해 보자.
관례적으로 아래에서 위로 이 도표를 읽어 나가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그것을 해석하게 될 것이다. (직선으로 표시된) 전자와 (점선으로 표시된) 광자는 서로서로 접근한다. 광자는 A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양전자는 왼쪽으로 비산(飛散)한다. 그러면 양전자는 B지점에서 최초의 전자와 충돌하고 왼쪽으로 비산하는 과정에서 광자를 발생시키면서 그것들은 서로를 소멸시킨다. 우리는 또한 시간상 먼저 앞으로 이동하다가 뒤로 가고 또다시 앞으로 이동하는 단일한 전자를 지닌 두 광자들의 상호작용으로서 그 과정을 달리 해석해도 좋다. (……) 왜냐하면 모든 입자들은 그것들이 공간상 왼쪽으로든 오른쪽으로든 이동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시간상 전후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도표에서 시간의 일방통로를 부여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