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돈 많은 어른 노리기(진짜임)
팝마트는 이번 8월 9일부터 15일까지를 신상week라고 이름 붙이고 네이버 쇼핑 단독 공개를 시작했다. 여타 행사들이 그렇듯 특정 플랫폼에 선공개를 해 플랫폼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할인'이라는 찬란한 이름 하에 물건을 파는 것이다. 그게 진짜 할인인지는 제쳐 두고, 간만에 구경을 갔다가 충격적인 가격을 보게 됐다.
이게 뭔데, 이게 뭔데 가격이 이래?
13,500원과 15,300원 사이에 수줍게 끼어 있는 이십 얼마를 보면 웃음이 나온다. 속을 거라고 생각했나? 그 밑에는 더 가관이다. 백만 원? 저걸 누가 저 돈 주고 사나 싶겠지만 누군가는 구매하기에... 저 자리에 저렇게 놓여 있을 것을 안다. 대체 누구냐.
답은 간단하다. 키덜트이다. kid와 adult를 합친 이 신조어는 꽤 옛날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다. 2005년 9월 10일 자의 동아일보에 언급이 되어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했다. 이는 현대 성인들이 추구하는 재미나 유치함, 판타지 등의 가지가 대중문화로 나타난 콘셉트이다. 다시 말해 애처럼 놀고 싶은 어른이라는 것이다.
현 20대의 유년기에도 결핍이 있었을까? 자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워딩이 등장한 2005년도의 성인들에게는 결핍이 필연적으로 존재했으리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의 유년 한가운데에는 IMF가 존재했고, 미처 선진국이 되지 못한 조국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갖지 못한 장난감, 그때 발생한 부러움. 미처 해소되지 못한 마음이 성인이 된다고 저절로 녹아 없어질 리 없다. 그러니 돈을 번 후에는 당연히, 돈을 쓴다. 즐거움을 향해.
처음에야 결핍으로 시작한 키덜트라면, 지금의 키덜트는 느낌이 다르다. 그건 취향과 개성의 영역에 놓여 있다. 바야흐로 개인주의의 시대가 아닌가. 1인 미디어와 네트워크가 발달하며 더 이상 대중문화는 찾아보기 힘들어졌고, 콘텐츠는 지나치게 많다. 입맛대로 골라 꾸리는 나의 삶, 누구도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없는 나만의 것. 그 사이에서 이들은 원하는 취미를 자유롭게 고를 수 있다. 장난감은 더 이상 아이들의 소유물이 아니게 된 것이다.
팝마트는 그 최대 수혜자이다. 사실 '팝마트' 자체는 중국의 캐릭터 IP 기업이다. IP는 21세기의 문화 산업을 끌어갈 핵심 요소이지만! 여기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하려면 글 하나가 통째로 필요하다.
캐릭터 IP 기업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 캐릭터 예쁘게 만들어서 여기저기 다 써먹는다는 뜻이다. 그 캐릭터는 웹툰이든, 웹소설이든, 하다못해 예능까지도 출연할 수 있다. 그리고 한 번 출연할 때마다 정해진 수입을 얻을 것이다. 팝마트는 이 돈으로 먹고 산다. 하지만 IP가 가장 많이 수익을 내는 건 바로 실물 굿즈이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인지도를 쌓던 캐릭터는 굿즈화 후 판매되는 것이다. 바로 팝마트의 몰리처럼 말이다.
'몰리'라는 이름은 어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사진은 어떨까?
커다란 눈과 뾰로통한 표정,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싶은 이 캐릭터가 바로 몰리이다. 홍콩의 유명한 토이 디자이너인 KENNY가 자선행사에서 만난 어린이들을 모델로 삼아 만들어졌다. 홍대에 자주 가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익숙한 캐릭터일 수 있다. 홍대 큰 골목에 팝마트 건물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피규어 파는 그곳 맞다.
팝마트에 들어가 보면 몰리 외에도 피노젤리라든가, 스컬판다와 같은 캐릭터들을 만날 수 있다. 하나같이 반짝이고 아기자기한 얼굴을 가진다. 손님의 약 70%가 여성인데, 간혹 여자친구에게 끌려와 어색한 미소를 짓는 남성들도 볼 수 있다.
이들은 원래 타사의 유명한 브랜드나 캐릭터와 제휴해 제작한 아트토이 및 피규어 산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IP 값이 한 두 푼도 아니고... 제휴 IP 자체로 큰 수익을 거두기 힘들어 자체 IP를 개발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피규어는 단순 장난감보다는 조금 더 디자인적인 완성도가 높은 아트토이(디자이너 토이)에 가깝다.
특히 스컬판다 캐릭터에서 아트토이의 특성이 잘 보인다. 그라데이션 된 섀도우라든가, 컨셉추얼 한 비주얼. 도자기 인형 같은 생김새는 수집형 키덜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글리터, 무광 도색, 움직이는 파츠 등의 속성은 키덜트를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특히 미적인 요소에 예민한 여성 고객층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왔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 보자. 아트토이를 통한 키덜트 겨냥? 좋다. 예쁘고 섬세한 캐릭터에서 비롯된 여성 고객층? 이것도 좋다. 그렇지만 과연 그게 성장 비결의 전부일까?
아마 이들의 핵심적인 성장 요인은 '가챠'에 있을 것이다.
가챠는 일본어이다. がちゃ 또는 ガチャ, 우리 말로는 '철컥철컥'이라는 뜻이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뽑기이다. 뽑기 기계에 동전을 넣고 '철컥' 레버를 돌리면 상품이 나온다. 거기서 파생한 가챠이다.
팝마트 가게에 들러 보면 모든 캐릭터가 박스에 들어 있다. 아무도 원하는 캐릭터를 알고 뽑을 수 없다. 그저 저 1/12의 확률을 뚫고 예쁜 캐릭터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건 하나의 놀이가 된다.
떠올려 보라. 무더운 홍대거리, 친구와 터덜터덜 걷기. 그러다 예쁜 캐릭터가 세워진 가게에 들어가면 수많은 박스를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캐릭터 세트를 구경하다가 문득 내 취향을 저격하는 세트 앞에 선다. 그리고 친구와 하나씩 상자를 뽑아 구매한다. 박스당 대개 15,000원 선에서 가격이 측정되지만 괜찮다. 원래 피규어는 그보다 비싸면 비쌌지 싸진 않으니까. 그리고 그걸 딱 여는 순간! 친구와 나의 피규어를 바꿔 구경하기도 하고 원치 않은 캐릭터가 나와도 마냥 웃기기만 하다. 그렇게 팬이 아닌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세상은 나의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 순간이 더 많다. 원하는 길로 걸을 수 있었음에도 타의로 그러지 못하는 것은 불쾌하다. 하지만 완전히 운에 맡겨지는 순간 이름 모를 떨림과 설렘이 온몸을 감싼다. 도파민이 팡팡, 터지는 것이다. 몇 달 전 논란이 되었던 메이플스토리의 '확률 조작 사건'도, 사실은 이 도파민을 위해 생긴 확률형 아이템에서 비롯되었다.
놀이가, 게임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은 4가지이다. 경쟁을 의미하는 Agon, 우연을 의미하는 Alea, 모방의 Mimicry, 스릴의 Illinx. 가챠는 경쟁을 제외한 세 가지를 모두 지니고 있고(친구랑 뽑기 대결이라도 하면 네 가지 모두 성립시킬 수야 있겠다) 그건 이 단순한 행위를 하나의 유흥거리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한 박스에 중복 없이 다 다른 캐릭터가 있으니 이 유흥은 안전하다. 그 믿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돈을 조금 더 쓸 수는 있겠지만 어쨌든 키덜트는 즐거운 과정 속에서 예쁜 캐릭터를 손에 넣고, 만족스럽게 집에 간다. 어디 쓸 데야 없겠지만 사실 원래 피규어는 관상용이다. 친구랑 같이 샀으니 웬만해서는 버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팝마트는 돈을 벌었다.
문화에는 정말 많은 것이 얽혀 있다.
IP 산업과 자체 IP, 이를 통해 생성되는 실물 굿즈. 팝아트의 아트토이의 소비자가 되어 줄 어덜트에는 수집형 어덜트와 여성 어덜트가 있었으며, 그걸로 부족할 것 같으니 끌어오는 가챠 문화까지. 기업은 그렇게 먹고 산다.
그렇게 이리저리 다 찔러보고 나면 누군가는 캐릭터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손바닥만 한 피규어 말고 더 큰 피규어를 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면 신상위크에 참여하겠지. 가서 백만 원짜리 몰리를 살 수도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모든 과정과 상술을 알면서도 기꺼이 속아넘어가 카드를 내는 일?
이 멋진 키덜트들 사이에서 나는 우유에 제티나 잔뜩 타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