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모두 쓰기만 하는
스물셋. 직업이 세 개다. PR 인턴, 마케팅 에세이 작가, 입시 컨설턴트.
겉으로는 달라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다. 모두 글 쓰는 일이다.
PR 인턴으로는 고객사 보도자료를 쓰고, 관련 뉴스를 모니터링하며, 미팅에 들어가 브랜드가 ‘하고 싶은 말’과 ‘해야만 하는 말’의 간극을 조율한다. 마케팅 에세이는 2주에 한 번, 프리랜서로 기고한다. 주제는 대개 브랜드가 잡지만, 문장은 내 몫이다. 입시 컨설팅은 고등학생들의 생기부를 보고 수행평가 흐름을 정리해주는 일이다. 알바처럼 시작했지만, 어느새 이 일에도 매뉴얼이 생겼다. 매일 조금씩 다르게 쓰지만, 하루 전체를 보면 결국 다 남의 말이다.
사람들은 ‘글 쓰는 걸 좋아하나 보다’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단지, 글이 일상이 되면 말버릇도, 생각의 구조도, 표현의 리듬도 직업적인 방식에 물든다. 결국 문제는, 그 방식이 너무 잘 먹힌다는 데 있다. 뭘 써도 일정 이상은 ‘괜찮아 보인다’. 읽는 사람도, 쓰는 나도 어지간하면 만족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나한테 쓰는 글에는 기준이 더 높아진다. 어설프면 아예 시작하지 않는다.
브런치에 글을 못 올린 이유도 그거였다. 글을 못 썼던 게 아니라 안 쓰는 쪽을 택했던 거다. 이 말투는 너무 PR스럽고, 저 문장은 브랜드 같고, 또 다른 표현은 고등학생 자기소개서에나 어울릴 것 같았다. 삭제하고, 다시 쓰고, 또 멈췄다. 문장은 있었지만, 그 안에 내가 없다고 느꼈다.
자기 목소리를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렵다. 지금 쓰고 있는 말이 정말 내 말투인지, 아니면 익숙한 작업 습관인지 구분이 안 간다. 반복해서 써온 방식은 늘 빠르고 편하다. 대신 정직하긴 어렵다. 그래도 계속 이렇게 가면, 진짜 아무것도 안 남을 것 같았다. 그래서 쓴다. 지금이 딱, 다시 쓰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 같아서.
이 글은 프롤로그다.
앞으로 몇 편에 걸쳐, 내가 했던 일들—마케팅에 잠깐 발을 들였던 이야기, 브랜드를 대신해 글을 썼던 순간들, 고등학생들의 진로를 붙잡고 들여다봤던 기억들—을 차근히 풀어보려고 한다. 어떤 건 자랑 같고, 어떤 건 변명 같을 테다. 그래도 다 내가 써온 시간들이고, 결국 내가 말할 수 있는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