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사업 마케터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콘텐츠 마케터라고 하면 다들 비슷한 이미지를 떠올린다. 알잘딱깔센한 카드뉴스, 트렌디한 브랜드 계정, 바이럴을 노린 드립 하나쯤은 기본 장착. 그런데 내가 했던 마케팅은 그거랑은 조금 달랐다. 나는 ‘국책 마케터’였다. 정확히 말하면, 나라에서 수주한 공공기관 SNS를 운영하는 일을 맡은 중소기업에서 일했다. 담당 채널은 블로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직함은 인턴이었는데 업무는 인턴이라고 하기엔 좀 과했다. 콘텐츠 기획은 기본이고, 카드뉴스 디자인도 내가 했고, 캡션 작성, 업로드, 해시태그 정리, 댓글 관리까지 전부 맡았다. 콘텐츠 하나를 올리기 위해 초안부터 최종 게시까지 모든 과정을 내가 다루는 구조였다. 처음엔 이 정도면 실무 경험으로 꽤 괜찮은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 보니, 문제는 콘텐츠 자체에 있었다.
국책 마케팅은 재미가 없어야 한다. 아니, 정확히는 재미있으면 안 되는 구조에 가깝다. 유행어는 쓰면 안 되고, 연예인 언급은 금지고, 특정 시기에는 민감한 키워드는 자동으로 필터링된다. 콘텐츠가 너무 광고처럼 보여도 바로 반려당했다. 드립은 기본적으로 금지, 표현은 정제, 분위기는 무해해야 한다. 그런데 동시에 조회수는 나와야 했다. 인지도를 높이는 게 1차 목표였고, 관련 정책 보고서를 다운로드하게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이다. 조회수, 좋아요, 클릭률, 다운로드 수… 다 지표로 남고, 매주 보고서에 들어갔다. 숫자가 안 나오면 무실이 조용해졌다. 심할 때는 직원들이 각자 개인 기기에서 보고서를 내려받기도 했다. 숫자 하나 채우려고 다 같이 클릭을 나눠 가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전통 같은 거였다.
아이디어는 넘치지만 표현은 조심해야 하고, 자극은 피해야 하는데 퍼져야 하는 콘텐츠. 말하자면 평범한 재료로 미슐랭 요리를 만들라는 식이었다. 차라리 내가 수석 셰프였으면 납득이라도 했을 텐데, 그땐 막 3학년 1학기를 마친 인턴이었다. 시즈닝도, 도마도, 불 조절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그럴듯한 접시를 내야 했다. 어쨌든 숫자는 나와야 하니까.
한 번은 정말로 조회수가 심각하게 안 나오던 시기가 있었다. 모두가 이유는 알지만 굳이 말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때 나는 하나의 아이디어를 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법안과 기관의 주요 업무를 연결해 콘텐츠를 기획하는 방식이었다. 연예인 실명은 언급하지 않았고 법률만 남겨 메시지를 구성했다. 나는 괜찮은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그 기획은 아무 말 없이 엎어졌다. 위험 부담 때문이라는 한 문장이 모든 설명이었다. 그럴 거면 왜 처음부터 고개를 끄덕였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만든 콘텐츠 중에 유난히 기억에 남는 결과물은 없다. 만들긴 내가 만들었지만, 늘 담당자 확인을 거쳐야 했다. 피드백에 따라 레이아웃도, 문장도, 심지어 의도도 바뀌는 구조. 인턴이 낸 결과물은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남의 것도 아니었다. 내 손으로 만든 콘텐츠를 내 콘텐츠라고 부르기는 어려웠다.
그 시기에 나는 내가 뭘 믿고 이 일을 시작했는지를 자꾸 까먹었다. ‘실무 경험이 중요하다’는 말, ‘경력이니까 버텨야 한다’는 말, 다 내가 나한테 했던 말이었다. 말은 경험이라는데 정작 매일 하고 있는 일은 ‘이건 빼고, 저건 바꾸고, 그건 위험하다’는 피드백에 맞춰 조금씩 줄어드는 작업이었다. 기획은 내가 하는데 결과물엔 내 흔적이 남지 않는 구조. 내가 만든 콘텐츠인데 내 콘텐츠가 아닌 걸 매일 만들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방향도 모르겠고 동기도 흐릿해진다. 말하자면 계속 뭔가를 쓰고 있는데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상태.
그래도 그 시기에 남은 건 있다. 자극을 걷어낸 콘텐츠를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말투와 어조, 문장의 결을 훨씬 더 세밀하게 보게 됐다. 재밌게 쓰는 건 금지였지만 매끄럽게 쓰는 건 의무였다. 메시지를 정리하고, 안전한 톤앤매너 안에서 분명한 구조를 만드는 연습. 그건 지금도 쓰인다. 그전까지 나는 다소 자극적인 카피에 집착하는 편이었는데, 그 경험을 거치고 나선 방향이 조금 달라졌다. 삼삼하지만 오래 남는 콘텐츠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이 일을 계속한 이유는 간단했다. 계약 기간이 남아 있었고, 당시 나는 휴학 중이었으며 복학을 하기에도 시기가 애매했다. 생각했던 마케터의 일과는 많이 달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경력이었다.
그 시기엔 늘 재미없는 걸 만들면서도, 어떻게든 지루하지 않게 만들기 위해 버텼다. 그래서 가끔 그때 만든 카드뉴스들을 열어보면 묘한 기분이 든다. 잘 만들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지금 만들라고 해도 저렇게는 못 만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던하고, 무난하고, 그래서 이상하게 기억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