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도 운영합니다, 인턴입니다.
처음엔 콘텐츠 마케터였다. 정확히는 콘텐츠 마케터라는 이름으로 채용된 인턴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나는 언론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언론사엔 기자가 나 하나였고 외부 기자라고 불리는 서포터즈 50명이 있었다. 시작은 50명이었지만 마지막까지 남아 수료한 건 절반도 되지 않았다. 경력증명서와 수료증이라는 두 개의 결과를 조건으로 그들은 매주 직접 취재한 기사를 한 편씩 써야 했다.
기사 발행 기준도 분명했다. 짜깁기나 정보 취합은 안 되고, 꼭 인터뷰나 현장 방문이 들어가야 했다. 대학생 입장에선 시간도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도 이 구조가 유지된 이유는 단 하나, 그게 ‘경력이 될 수도 있다’는 말 때문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 말이 얼마나 허망한지. 기사는 포털 노출도 되지 않는 자체 매체에만 올라갔고, 조회수는 대부분 100을 넘지 못했다. 나조차도 이걸 내 포트폴리오에 넣고 싶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아는 사람이, 그 구조를 돌리는 사람이 나였다. 기사를 관리하고, 퇴고하고, 마감 독촉 메일을 보내고, 수료 조건을 체크한 사람. 누구보다 그 시스템의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계속 사람을 굴리고 있었다. 처음엔 단순히 업무였고 내 일이니까 했다. 그런데 점점 내가 이 구조의 일원이 아니라 운영자가 되어 있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그 일이 기사 쓰는 일에만 그쳤다면 그래도 괜찮았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 바깥에 있었다. 회사에서 무언가 물량이 필요해지면 이미 수료한 서포터즈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공모전 참가자가 부족해도 불렀고 캠페인 홍보가 필요해도 불렀다. 공식적인 보상은 없었다. “혹시 시간 되면 도와줄 수 있을까요?” 같은 말투로 반복된 요청들. 나는 그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협조적인 상태’로 남아 있기를 바랐다. 떠나지 않고, 기사를 쓰고, 다시 호출에도 응해주기를.
나는 원래 그 서포터즈였다. 직접 겪어본 사람의 시선에서는 이 시스템이 얼마나 힘든지 너무 잘 보였다. 그런데 인턴으로 들어오고 나서 곧바로 이해하게 됐다. 이 회사가 굴러가기 위해선 아무것도 아닌 허울뿐인 서류들로 대학생을 묶어야 한다는 걸. 그 구조가 부당하다는 걸 알았지만 동시에 그 구조가 유지되어야 내 일이 폭발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바랐다. 그들이 버텨주기를. 마감일을 지켜주기를. 그만두지 않기를.
그게 제일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이제 서포터즈를 돕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을 버티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수료증과 경력증명서는 내가 직접 만들었다. 이름을 입력하고, 서명을 받고, 도장을 챙겼다. 나중에 다른 인턴십을 하면서야 알게 됐다. 그 문서들은 어디에도 내밀 수 없는 종이였고, 그 시간은 어디에도 기입할 수 없는 경력이었다. 구조를 바꾸려 한 적도 있었다. 기사 수를 줄이자고 했고 활동 기간도 단축하자고 제안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가 일이 늘어나잖아”라는 한 문장 때문이었다. 그 ‘우리’에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내 직함은 인턴이었고, 인턴의 말은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결국 나는 내 감각을 누른 채 시스템을 돌리는 사람으로 남았다. 책임을 졌다기보다는, 계속해서 다음 주의 기사를 정리했고, 마감일을 체크했고, 수료 인원을 집계했다. 구조는 유지됐고 나는 그 안에서 매끄럽게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게 옳았는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